분류 전체보기 2068

피곤과 슬픔이 뒤범벅이 되어

1.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많았다. 밤새 준비하느라 새벽에 1시간 30분만을 자고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얼른 일을 끝내고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친구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지만,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는 친구지만, 그들에겐 타인이다. 어느 정도 배려는 해 주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두 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니 저녁 여섯 시였다. 대구행 7시 열차를 기다리며 기차역에서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사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지만, 요즘엔 어쩔 수 없다.) 안도감도 잠시, 열차 안에서는 ‘마음편지’를 써야 했다. 잠이 몰려왔지만, 퇴고까지 마음을 기울였다. 2.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넋을 잃었다. ..

뜻밖이라고 당황하지 말고

1. 아뿔싸! 여느 때 같으면, 이 시각에 이동할 리가 없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각없이 나섰다가, 정체에 걸리고 말았다. 서울과 양평을 오갈려면 6번 국도 경강로를 거쳐야 한다. 주말 교통량이 많은 도로다. 토요일엔 양평 방면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 특히 하남에서 팔당대교를 건너 경강로에 진입하는 구간의 정체가 심하다. 일요일 오후부터는 서울 방면이 막히기 시작해 저녁 시간이 지나야 뚫린다. 일요일 오후 4시 30분이면 서울 방면 경강로가 한창 막히는 시간대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나, 잠실 사무실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급한 마음에 하루 일정을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미리 출발했거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하고서 좀 늦게 출발했어야 했다. 차를 세워 실시간 도로 검색을 했더니..

자기돌봄이 진실한 섬김을 낳는다

1. 일주일 만에 집에 왔다. 전국(全國)까진 아니어도 나라의 반(半)은 돌아다닌 느낌이다. 쏘다닌 거리도 만만찮지만, 그보다는 이곳저곳을 잇달아 다닌 탓이다. 교육과 병문안이 뒤섞인 일정이었다. 즐거운 여행만으로 채워진 일주일이면 얼마나 좋았으랴. 지금 나는, 평범한 날들이 어찌나 그리운지! 가족과 친구들 중 아픈 이들이 없고, 큰 성취가 없더라도 큰 상실이나 실패도 없는 보통의 날들! 내 몸 아프지도 않고 마음이 어지럽지도 않은 날들! 시간은 흐른다. 머잖아 다시 그런 날이 찾아들면 힘껏 안아줘야지. 2. 짬날 때마다 이병주 선생의 소설 『정도전』을 읽었다. (선생은 『정도전』『정몽주』『허균』 등의 역사소설을 남겼다.) 틈나는 시간에 밀린 일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에너지는 없었다. 독서는 에너..

병세도 우정도 깊어진 주말

심경은 복잡하고, 마음은 분주했던 어제. 1. 1박 2일로 다녀온 MT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는 긍정적 뉘앙스지만, Good이나 Great의 수준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충분히 좋은 MT 였을 테지만, 2년 교육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MT로서는 미흡했다. 그간의 수고를 서로 격려하고, 교육 수료를 축하하는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 마지막 MT를 빛낼 프로그램을 준비치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해도, 신경써서 정성껏 피날레 행사를 마련했어야 했다. 2. MT에 대해 반성하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20분 만에 다시 나서야 했다. 샤워를 하고 며칠짜리 짐을 챙기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짐을 제대로 챙기긴 했는지 모르겠다. 대구에 다녀올 생각이다. ..

심란한 날을 사는 법

1. 동대구행 열차에 앉아 있으려니 눈물이 난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힘겨움이 있을 터, 나도 마찬가지다. 자기 힘겨움을 넘어설 노하우를 갖지 못한 이의 삶은 고달파진다. 나의 위로자는 글쓰기다. 글을 써야만 넘어설 정도의 아픔은 아닐지라도, 오늘은 열차 안에서 노트북을 열어야 했다. 몸이 피곤했지만, 뭐라도 써야 했다. 2. 힘듦을 토로할지라도 도와달라는 뜻은 아니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글쓰기’라는 치유자에게 손길을 내민 것뿐이다. 글을 시작할 때에는 복잡하던 심경이 글을 맺을 때에는 한결 나아질 때가 많으니, ‘심경복잡’을 두고 나를 걱정할 일도 아니다. 살다가 잠시 힘들었음을 기록하고 싶을 뿐. 3. 좋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말벗이 되는 이들이 있기에 인생이라는 여행이 ..

어떤 퇴원은 고통 어린 슬픔이다

오늘 친구가 아산병원을 떠났다. 고향인 대구로 간다. 건강하게 퇴원하여 집으로 가는 것이면 더없이 좋으련만, 녀석은 상황이 악화되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 형의 차를 타고 병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했다. 1층 로비 접수대 앞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멍했다. 지나간 3주 동안의 병원 생활이 스쳐지나갔다. 퇴원하는 과정도 떠올랐다. 친구는 건강을 회복하여 웃으며 걸어 나가는 게 아니라,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녀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착잡함에 두려움과 절망이 버무러진 어떠한 느낌일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휠체어를 밀고 가던 나는 간호대 앞에서 잠시 멈춰야 했다. 친구가 나를 세우더니, 간호사들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간호사들이 밝게 인사했지만..

열심으로 살았던 어느 하루

12시 취침은 일상경영의 원칙 중 하나다. 렉티오 리딩 강연을 마치고 귀가한 11시 45분. 얼른 씻고 자면 원칙을 사수할 수 있는데, 고민했다. 원칙을 지켜 동그라미 하나를 채울까, 아니면 동그라미 하나를 포기하고 일을 할까? 후자를 택했다. 일이 좀 밀리기도 했거니와 오늘을 기록하고 싶기도 해서다. 이런저런 단상들과 주고 받은 연락들(문자 메시지) 그리고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1. 일상경영의 나머지 원칙을 궁금해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그것부터 적어둔다. 매일 행하려고 애쓰는 7가지 일들이다. 글을 썼는가, 와우들과 소통했는가, 지식을 습득했나, 운동했는가, 건강 3식을 먹었나, 21시 이후 금식했는가 그리고 24시 전으로 잠자리에 들었는가. 2. 아침,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러시아가 한국..

인생 무상의 세 가지 결말

4월에 스무 명 남짓 되는 지인들과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섯 대의 차량에 삼삼오오 나눠 탑승했더니 오가는 길에서도 즐거운 대화가 가득하더군요. 제가 운전한 차에는 이십대 청년 셋이 탔습니다. 안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이 묻더군요. 어떻게 하면 그리 멋지게 살아갈 수 있냐고 말이죠. 쑥쓰럽지만, 제가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누구나 다른 이의 일면만을 볼 뿐이고, 젊음은 종종 사람을 서둘러 판단하기도 하지요. 여튼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인생을 각성 상태로 사는 것 같습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깨어있음의 상태라고 할까요. 저는 인생이 정말 좋고, 한날 한시가 정말 소중하여 시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어요. 치열하게 살려는 마음이 가득한 겁니다. 각박한 삶..

참 좋은 말, 진인사 대천명

열흘하고도 이틀 만의 블로그 포스팅이다. 6.4 선거일 즈음부터 어제까지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특히 최근 일주일은 잠도 못자고 일손도 흐지부지했다. 친구의 병세가 깊어진 탓인데, 여느 때보다 일상을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병 문안에 힘쓸 수 있을 테니까. 일주일간 미뤄 온 일부터 챙겨야겠다. 마침 일주일의 시작이다. 지난 주와는 다르게 살자. 지난 주간은 어떠했나? 4일 저녁엔 브라질에서 오신 귀한 손님을 만났다. 3년 만의 만남이고 연배 차가 적지 않는데도 반갑고 정겨웠다. 이번 방한 일정 중 단 한 번의 만남이라는 게 아쉬웠다. 5일엔 친하게 지내는 형님 내외를 만났다. 한참 손아랫사람이라 더욱 예를 다해야 하는데,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했다. 아산병원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했지..

지적 욕망이 독서를 방해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왕성하게 책과 정보를 읽어 들입니다. 독서 목적을 세우지 않고서도 말입니다. 왕성한 지적 욕망에 걸맞게 날로 지성이 깊어지면 좋으련만, 끊임없는 지식 습득에 비하면 지적 성장이 더딘 경우를 봅니다. 책 선택이 눈먼 골동품 수집가의 모양마냥 체계도 우선순위도 없기 때문일 겁니다. 지적 성장을 이루려면, 목적을 욕망에 앞세워야 합니다. 욕망이 무분별하게 뻗어가는 것을 제어해야 합니다. 욕망을 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목적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욕망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니까요. 욕망의 한계를 인식하여, 때로는 고삐를 풀어주고 때로는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까요. 목적 없는 공부는 구슬만 만드는 셈입니다. 목적이 구슬을 꿰어줍니다. 인문학만 감안하더라도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