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의 테헤란로는 아주 한산했다.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도 명절이면 인적 드문 거리가 된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열 명도 되지 않은 사실이 신기해서 한산한 거리를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외출 후 늦은 시각에 선릉역에 도착했다. 여전히 선릉역은 조용했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어느 여인과 나 뿐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둘 만이 어둔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에 둘만 있다는 게 그에겐 무서울 것 같아 내가 앞서 걸었다. 그러다가 골목 맞은편에서 3~4명의 남자가 걸어오는 걸 보고 내 속도로 걸었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 아니니 천천히 걷고 싶었던 게다.

다시 그 여인이 앞서나가는데, 두 손 가득 들고 있는 짐이 눈에 들어왔다. 무거워 보였다. 4~5m쯤 떨어진 거리에서도 약간 힘겨워함이 느껴졌다. 함께 들어 주고 싶었다. 아주머니나 할머니라면 진작에 말을 걸었을 터인데, 젊은 여성이니 말도 못 걸겠다. 갑자기 말을 걸면 깜짝 놀랄 게 분명하다. 나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 남자는 왜 계속 날 따라올까? 나쁜 사람 아닐까?'

"저기요"라고 말하면 아무래도 놀랄 듯 했다. 그래서 내가 걷던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길 끝까지 쭈욱 가는데,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짐을 좀 들어드릴께요." 놀라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다 긴장되네. ^^) 여인은 수줍은 듯 내게 짐을 건네지는 못했다. 극구 부인하지는 않아 짐 하나를 내 손에 옮겨 들었다.

남자에게 무거운 무게는 아녔지만 여성이 홀로 오래 들고 가기엔 무거울 듯했다. 걸으며 가볍게 몇 마디를 나눴다. 이내 여인의 집 앞에 이르렀다. 우리 집에서 1~2분 정도의 거리였다. 동네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 교대역에서 껌을 파는 할머니의 선한 눈매를 볼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 (이른 오전에 오랜 만에 교대역에 갔다. 늘 같은 계단에서 껌을 파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저녁에 나오시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할머니여서 자일리톨 하나를 샀는데 참 고우셔서 인상이 기억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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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이 동네에 5년을 살았단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계속 살 가능성이 높으니. ^^ 얼마 전 사귄 친구는 금방 이사를 떠나버렸다. 사실, 나는 동네 친구 한 명이 있었으면 했다.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 말이다. 지금 이 동네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친구하기에 퍽 유쾌한 분이신데 연세가 좀 많으시다. 31년생이시니 말이다. ^^ 우리 집이 29번지이고 친구 할머니는 33번지니 그야말로 지척이다. 이 분을 제외하곤 아는 사람이 없다. 바로 옆 호에 사시는 분과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몇 번 딱 마주쳤는데 한 두 번 건넨 인사가 어색해지는 걸 보고 '알고 지내는 걸 꺼려하시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 더 인사해 봐야지. ^^

할머니 친구, 얼마 전 이사 간 친구, 오늘 만난 친구(나 혼자 친구래~ ^^).
공교롭게도 모두 짐을 들어주다가 친구가 됐다. 할머니는 작년 봄,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오르막길을 오르셨는데 달걀이 든 그 봉지를 집까지 들어드리고 차 한 잔을 했다. 그 때,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얘길 나눴다. 얼마 전 이사간 친구는 밤에 동네 한 바퀴 조깅하러 나왔다가 만났는데 짐 가방 4~5개를 들고 낑낑 대고 있었다. 그 날이 이사 온 날이었고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이 안 난댄다. 짐을 우리 집에 잠깐 보관하고 함께 집을 찾았다. 다행히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짐도 옮겨 주었다. 이후 가끔 문자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됐다. 한 번 만나자, 하면서도 못 만난 게 어느 새 1년 2개월이 지났다. 얼마 전 이사갔다는 소식을 문자를 통해 알았다. 딱 한 번 만났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친구라 하기엔 멀고, 모르는 사람이라 하기엔 가깝고. ^^

오늘 만난 친구는 어둔 골목길에서 만나서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기억나는 건 선한 눈매다. 의심과 적개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호의를 선한 의도로 봐 주어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했다. '뭘 하는 분인지 모르지만 웃는 일들이 많기를 바래요. 때때로 힘들 땐 더욱 힘을 내어 전진하세요~'라고.
기분이 좋았다. 달빛 그윽한 호숫가가 아니라 어두침침한 골목길에서도 행복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마음 속에 선한 의도를 품으면 즐거워지고 선한 의도를 삶으로 행하면 행복해지나보다.

[덧붙임글 1]
경복아파트 부근에도 친구 한 명이 있다. '보보의 드림레터' 웹진을 읽은 분 중에 어느 분이 메일을 보내왔고 같은 동네에 산다고 말해 주었다. 먼저 '친구'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 분은 이름도 모르는 친구다. 그래도 한 동네에 나의 존재를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르도 좋다. 내 마음에 풍성한 기운이 조금 생겨난 기분이 든다. 친구, 라는 단어가 주는 기운이 있다.

[덧붙임글 2]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아직 유아적 우정을 꿈꾸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건 아닌지 말이다. 십대의 무조건적 우정을 꿈꾸는 것, 초등학생 때의 이기적이면서도 순수한 우정을 꿈꾸는 것, 이것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 있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나에 대한 소중한 정보 말이다. ^^ (골치가 아파지려 해서 그만 쓴다.) 호호.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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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우정은 행복이요 성공이다!


친구랑 근처 맛사지샵에 갔다. 중국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지난 번에 한 번 갔다가 참으로 몸이 시원하여 언제 다시 한 번 가자고 언약했던 걸 행하는 날이다.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아주 시원했었는데, 오늘은 아주머니가 한 분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남자 청년에게 받았다. 아쉬웠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빨리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맛사지는 이성에게 받아야 음양의 기를 주고 받아 더욱 편하다'는 마사지계의 속설을 부인했다. 그리고는 '남자가 해야 힘이 제대로 실리지'라고 합리화했다. 호호. 사람들은 늘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한다.

그런대로 시원했다. 발마사지만 받았는데 어깨 마사지까지 받을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오랜만의 만남을 맛사지샵에서만 보낼 순 없다고 결론을 내리며 우린 밖으로 나왔다. 둘은 괜찮은 재즈바로 향했다. 그곳에서 추억을 안주 삼아 칵테일 한 잔씩을 했다. 녀석의 칵테일 주문 덕분에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콜라보다는 칵테일이 더욱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니까 말이다.

노래방. 우리의 다음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우리는 전혀 술 취하지 않았다. 도수 5도가 되지 않는 칵테일 한 잔에 취할 남자는 거의 없을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래방에서 만취한 사람처럼 놀았다. 둘이서 고함을 질러가며 불러댔다. 둘은 마음이 통했고 노래가 통했다. 한 명이 열 곡을 예약해도 그 열 곡을 함께 열창한다. 결국 초반전에 오버하여 목소리가 쉰 우리는 중반 이후부터 겔겔거렸다. 그래도 신났고 즐거웠으며 유쾌했다. 참 오랜만에 함께한 노래방에서의 시간이었다.

노래방을 나왔더니 꽤 늦은 시각이었다. '집으로 가지 않기'는 이미 둘의 계획이었다. 마지막 코스는 DVD 방이었다. 제목도 기억 나지 않는 영화였고 결국 나는 도중에 잠들어 버렸다. 친구는 끝까지 보았고, 재미없었다고 투덜댔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밝아 있었다. 와! 정말 오랜만에 우리는 밤을 새며 놀았다. 이렇게 논 것은 최소한 2년은 된 것 같다. 와! 나도 다시 밤을 새며 놀 수 있구나! 감격이다. 하하하. 나는 그렇게 진지하고 재미 없는 놈이 아니라고 되내여본다. ^^ 호호.

세상 모든 남자들이 오늘 밤 우리가 놀았던 것처럼 논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는 의문이 문득 든다. 가정은 보다 화목해지고, 남자들의 건강은 더욱 좋아지겠지. 그리고.... 에이 모르겠다. 나는 지금 그저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즐거워 회상하고 있을 뿐인데, 뭘. ^^
나는 행복했다. 사랑받는다는 확신보다 더욱 진한 행복감이 또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남자들간의 이런 우정을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우정에도 애틋한 친밀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함께한 놈도 마찬가지일 게다.

친밀함. 누구나 친밀함을 갈망한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친밀함 앞에서 망설인다. 친밀함에는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강연에서 만난 어느 중년의 여성은 나와 처지가 비슷하다며 이런 얘기를 들려 주었다. "저도 중학교 때 어머니를 여의었지요. 그런데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말하고 도움을 청하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내 모든 이야기를 하면 그가 나를 무시하고 업신여길까 봐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어렸을 때의 저는 인생의 멘토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면 상대방에게 거절당하고 무시당할 수 있다는 본질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친밀함은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과하여 만나는 평안의 땅이다. 나에게는 친밀한 우정이 몇 있다. (많지는 않지만 만족한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모든 것들을 나눈다. 아주 더러운 부분까지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것까지 모두 얘기했다.
친구에게 나의 못된 행동들을 나눌 때,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인간의 본성이 참으로 약함에 대하여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친구는 나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고 애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같은 어려움을 겪는 한 인간임을 느끼며 친밀함 속으로 빠져든다. 비밀을 지켜주며 친밀함은 강화된다. ^^

나는 이런 친밀함을 느끼는 친구 중 한 녀석과 마사지샵엘 가고, 재즈바에 가서 얘기를 나눴던 것이다.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댄 것이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나! 우리는 하나의 장소에서 나올 때 마다 "이제 뭘 하고 싶냐?"고 물었고, 정말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만을 했다. (DVD방 빼고 ^^)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음은 행복이요, 성공이다. 그 날이 행복한 날이었고, 성공적으로 보낸 하루였다. 고맙다. 친구야~! ^^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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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구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했다. 시합은 아니고 셋이서 공을 던지고 받거나 혹은 한 녀석이 배트로 공을 치면 두 놈이서 그 공을 잡으러 뛰어다니며 놀았다. 20년 전에 나는 이렇게 놀았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늦게까지 그렇게 학교 운동장에서 놀았다. 축구를 하거나 야구를 했고 반대항 야구 혹은 축구 시합도 자주 있었다. 그 때는 참 승부근성이 강했는데, 그래서 승리에 참 집착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악바리 같은 근성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는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 듯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네. 나는 강연을 줄이고 보다 많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강연 준비를 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 갑자기 이런 결론으로 흘러가 버리다니, 으악! 내가 요즘 게으르게 사나 보다. 20년 전의 놀이를 하던 모습에도 배울 것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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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의 야구였지만 즐거웠고 땀도 흠뻑 흘렸다. 곧바로 샤워를 하지는 못했지만 잠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쉬며 땀을 식힐 수 있었다. 잠시 휴식 후, 우리는 쌈밥 5인분을 먹고 다시 당구장으로 향했다. 이것은 이미 만나기 전부터 친구가 생각해 둔 코스였다. ^^ 오랜만에 당구를 쳤다. 살아가다가 가끔씩 고향에 올 때만 치는 당구지만 10년 전 즈음에는 나는 이렇게 당구를 치며 놀았다. 나는 친구들과 당구를 치는 이 시간이 재밌다. 평소에는 이런 여유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분 좋게 함께 당구를 칠 사람도 없다. 이 놈들과 당구를 칠 때는 당구만 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놀리고 농담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참 좋다. 당구가 더욱 재밌으려면 그날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한껏 발휘해야 한다. 한 녀석이 그날 공이 잘 맞지 않으면 무엇보다 그 자신이 재미가 사라지고 시합의 긴장감이 사라져 그날의 게임에서는 모두가 운동의 스릴을 맛보지 못한다. 자신의 실력을 한껏 발휘해야 즐겁고 신이 나는 것은 당구에서나 인생에서나 마찬가지다. 10년 전의 취미였던 당구를 통해 인생의 진리 한 가지를 되새긴다. 잘 하는 것에 재미가 깃든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삶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라도 재능은 발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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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을 나오니 꽤 늦은 시각이 되었다. 11시 경이었던 것 같다. 어디에 갈 것인지를 두고 우리는 한참을 고민했다. 노래방? 술 한잔? 10분을 주차장에 앉아 고민하다가 결국 집앞 치킨 집에서 맥주 한 잔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오랜만에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도 모른 채 결정하느라 시간을 보냈지만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나는 이 놈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편안하고 즐겁고 신이 났다. 치킨 집에서 치킨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우리는 함께 TV를 보기도 하고 지난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어젯밤의 느낌이 기억난다. '아, 이렇게 옛날 얘기 하니 참 좋다. 오늘은 이렇게 남자 셋이서 추억을 안주 삼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나는데, 지금은 아침이고 방에 놓여있는 상을 보니 맥주 6캔 중에 3개가 남아 있다. 내가 마셨던 맥주 캔을 들어보니 묵직하다. 두 모금 정도 마셨나 보다. 우리는 이야기를 제대로 풀기도 전에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아이고, 아쉬워라! 모처럼만의 만남인데 너무 일찍 잠든 것이 아쉽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나러 곧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플래너를 펼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날짜를 꼽아 본다.

아마도 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12시 즈음이 고비다. 그 때에 몰려드는 잠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잠자고 있는 친구 녀석이 깨면 어쩌다가 맥주를 저렇게 아무도 안 마셨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러면 아마 이런 답변이 돌아올테지. '이 자식, 니가 먼저 잤잖아.' 어제 낮에도 내게 물었었다.  12시에 자는 것 아니냐고.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맞았다. 일어나면 한 대 쥐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해야지. "조만간 또 한 번 내려올께."
이것이 장거리 우정을 나누며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서울에도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에서 학교를 함께 다니며 어린 시절을 함께 친구들은 이 놈들 밖에 없다. 열차 요금이 올라도, 먹고 살기에 바쁘고 힘들어도, 다시 만나러 오게 되는 친구들. 이들의 존재가 참 고맙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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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길... 하루를 마감하며 우린 종종 통화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집에 안 가냐?
방금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원에서 강연이 늦게 끝나서 이제 막 들어왔어.

이번 주에 베트남엔 안 가냐? 장사가 안 된다.
야!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장사가 참 잘 되었다며 다시 베트남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도 마구 웃었는데 이 녀석이 오늘 나를 또 웃긴다. 슬쩍 덧붙이는 그 녀석의 멘트에 나.. 쓰러진다.

올 여름 휴가는 베트남으로 갔다 오지.

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장사는 안 하고 개그 연구만 했나 보다. 웃다가 어찌하다보니 얘기가 배수경 선생님 이야기로 흘렀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아 글도 못 쓰고 있다. 전해드지리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내 책상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살짝 울컥해지려는 찰나, 이 놈의 멘트...

이제 그만 잊어라. 안 그러면 너까지 죽을지도 모르잖아.
너 죽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까지 죽고...
내가 죽으면 OO(자기 와이프)이도 죽고... 그럼 우리 모두 끝이다.


나 또 미치는 줄 알았다. 웃겼다. 무지 웃었다. 정말 나까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우리의 감정적 교감과 친밀함이 뜬금없는 유머를 무례함에서 건져 주었고
그 녀석은 나의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슬펐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즈음에 전화로 만나 감정을 나누었고 몇 가지 일상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워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슬픈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지는 않지만 하루라는 시간의 그릇 안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함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슬픔의 크기가 크다면 시간의 그릇도 더욱 커져야 할 테지만 말이다.

친구야... 나 이렇게 산다. 너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도 이겨내면서 말야.
너에게 음악 한 곡 실어 보낸다. 'Only Love'라는 제목이 내 마음이다. 호호.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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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냈니? 나는 오랜만에 짧은 자유 시간을 가졌다. 오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된 교육이 끝나니, 저녁에는 이것을 할 수도, 저것을 할 수도 있는 나만의 자유 시간이 생겼어. 네가 알다시피 이번 주는 현대경제연구원 촬영 원고를 작성하느라 약간의 부담감을 안은 채 지냈잖우. 긴장이 풀려서인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내게 주어진 몇 시간의 자유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초여름의 햇살이 나를 반겼다. 내 곁에 그 사람이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어쩌니. 지금은 없는 걸.

와우팀원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몇 마디를 나누고 끊었다. 일찍 귀가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햇살이 나를 어딘가로 부르는 것 같더라. 그런데 그다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었어. 좋아하는 파리바게트의 소보루빵을 사려고 했는데, 다 팔려 모카빵과 치즈가 들어간 빵을 사서 집으로 향했지. 6시가 살짝 넘은 시각에 집에 도착! 혼자 누리는 자유가 나를 반겼다. 이런 시간을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잘 즐기는 편인데, 가끔씩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찾아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오늘이 그랬다.

 

세 시간 동안 뭐 했나 싶어 저녁 시간을 되돌아보려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나네. 오늘 같은 날, 너와 밤데이트를 하고 나면 싹 풀릴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보고 싶다. 친구야. 오늘 프로야구는 보았는지 궁금하고, 와이프는 서울에서 돌아왔는지 궁금하고 그리고... 네 목소리가 궁금하다. 어제 통화했는데, 나 왜 이러니? ^^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9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잠깐 나갔다 오려 한다. 우리 집 앞에 던킨도너츠가 하나 더 생겼는데 분위가 좋더라고. 거기서 5월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말야. 너랑 함께 하면 참 좋을 텐데...


얼마 전, 메가박스 코엑스점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함께 차 마셨던 거 기억나니? 그 때, 너랑 친구로 살아온 게 고마워서 눈물 날 뻔 했잖우. 네 존재 자체가 어찌 그리도 고마운지! 나의 10대를, 20대를 함께 해 준 친구야... 참 고맙다. 친구 덕분에 나는 지난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의 30대도 함께 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많아지길 희망해 본다. 소박한 바람인데도, 서울과 대구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예전처럼 자주 만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 괜히 벌써부터 아쉽다.

우연히 5년 전쯤 너에게 쓴 편지글을 발견했다. 너에게 전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아래에 옮겨 볼테니 한 번 읽어보렴.
 편지는 하나가 더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얘기가 많아 너에게 직접 건네야겠다. 조만간 고향으로 한 번 내려가마. 그 최고의 발마사지 샵에도 함께 가자. ^^

*

요즘 아무런 걱정도 없고, 그럭 저럭 일도 잘 풀린다.

그래서 그게 걱정이다.

내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지 않기에,

그저 어제처럼 살고 있기에...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저 푸른 초원 위에]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최수종(차태웅 역)이 여자 친구 어머니에게 엄청난 인격적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도적으로 반응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참고 최선의 반응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말이 우습지만, 뭔가 나에게 치욕과 고통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도 했다.

그런 치열함이 있을 때 더욱 성숙하고 보다 처절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차태웅은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함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나태함 속에서 보낸다는 것은 정말 싫다.

그래서 그런 나태함은 그저 생각만으로 끝내려고 한다.

절대 그런 일이 나의 삶 속에 실현되는 것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힘차게 뛴다.


치열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인으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려면

200%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치열함을 사랑한다.


길을 걷다가 "일병 이희석" 이라고 외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끓어오른다.

내 안에 군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군 생각만 하면 걸음이 빨라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이왕이면 내일은 이렇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소 지으며 반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 아니겠는가!

힘찬 걸음으로 담대하게 내일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면

다소 쓰라린 실패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배움을 건질 용기 정도는 가진 자가 아니겠는가!


나 그렇게 살 거다.

좀 더 치열하게... 좀 더 신실하게... 좀 더 치열하게...

좀 더 고생하며, 좀 더 열심으로 살아갈 거다.

내 생이 다하는 그 순간에는 내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되길 바라며~


어제는 코엑스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생각을 하다가,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금 내가 헛된 일로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느끼며

일초라도 더 아끼고 싶었다. 이런 열정으로 일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에게 전화하여

"우리 정말 정직하고 열심히, 성실한 자세로 살자"라고 했다.


오늘은 열정과 흥분으로 잠자리에 드니

정말 꿈나라에 다녀올 것만 같다.
환상적인 그 나라로 나 지금 떠나려 한다.


안녕!

2003년 3월, 친구 석이가


*

나, 저 때 왜 저렇게 비장하대니? 하하하. 편지를 읽다 보니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방금 전화를 했다. 10분 넘게 우리는 수다를 떨었고 유쾌해했다. 너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잖아도 화창한 오늘 햇살을 보며 내 생각을 했다는 얘기, 대학교 시절 함께 수업 듣고 혹은 함께 땡땡이 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얘기. 그리고 지난 해 하루 일을 마치고서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 새벽 2시에 서울에 나타났던 얘기. 이것 모두가 언제 이야기해도 즐거운 우리들의 추억이구나. 
사실, 너에게 전화할 때부터 그냥 모든 것 제쳐 두고 확 내려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일 오전부터 있을 교육을 생각하며 부드럽게 만류한 네 속 깊은 마음이 고맙다. 그리고 보고 싶다.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와 프로야구를 보았고, 내일 있을 와우모임을 위해 방정리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났다. 이제 2008년 5월이 3시간 남은 셈이다. 한 달이 지나가는 이 시간에, 너는 뭐 하고 있니? 하루 매출을 돌아보는 시각이지만, 월말이니 한달을 돌아보며 월 매출을 헤아리고 있겠구나. 헤아리는 손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네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으면 좋겠다. 혹 원했던 만큼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방식을 통하여 너의 꿈을 이뤄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졸립기 전에 나도 어서 나의 한 달을 돌아보련다. 

오늘 글은 옮겨 쓴 내용도 있어서 지금 쓴 글은 많지도 않은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런 저런 네 생각을 하며 쓰느라 그랬나보다. 에공. 던킨도너츠에는 못 가겠네. 한 달 돌아보기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삶이 우정에 의해서도 충만해질 수 있음을 너로 인해 느꼈기 때문이다. 시드니 스미스라는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의 말로 글을 맺는다.

"삶은 우정에 의해서 풍성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건 살아가는 최대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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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50분에 눈을 떠서 바쁜 아침을 보냈다. 한국리더십센터 웹진 <보보의 독서노트>를 작성하고 메일 두 통을 보낸 후 집을 나섰다. 용산역으로 향하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다. 경부선이 아닌 호남선을 탄 것은 작년 여름 순천으로의 강연 여행 이후 처음이다. 오늘 향하는 곳은 광주의 전남대학교이다. 광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내게는 민주화항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조금은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광주. 대학생일 때에는 매년 5월 18일마다 광주에서 피고 진 영혼들의 넋을 기렸다. 마음속에 언젠가 꼭 망월동에 가 봐야지, 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따스하고 포근하다. 며칠 전, 베이징에서의 둔탁한 하늘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봄날은 무척이나 화창하다. 호남의 산세는 여성스럽다. 작고 부드럽다. 험준하고 웅장한 영남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오늘 나는 꼭 호남의 산세 같은 벗 한 명을 만난다. 나는 그를 참 좋아했다. 2년을 함께 살면서 나는 그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에 대한 첫인상이 떠오른다. 그는 썩 영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무척 어리숙하게 보였다. 그는 늘 실수 연발이었고, 태도는 엉성했으며 말은 어눌했다. 나중에 내가 그를 존경하게 될 줄은 귀신도 몰랐을 만큼 그는 어.리.숙.한 이등병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 인연이란 것이 참 귀한가 보다. 선임병과 후임병으로 만나 전역 후에도 종종 연락하며 소식을 주고 받고 있으니 말이다. 한 달 차이로 입대한 우리는 같은 내무반이었으며, 같은 군수과에 속하여 2년을 복무했다. 우리는 군생활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전역 후, 한 번 꼭 보자며 기약을 거듭한 것이 어느 새 3년이 지났고, 이번에 전남대학교에서의 강연 의뢰가 들어와 만나게 되었다. 이 놈이 광주에 산다는 것이 강연 의뢰에 응한 이유였다. 지금 나는 3년 만에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열차 안이다. 오늘은 2008년 5월 2일이다. 놀랍게도 내가 전역한 날이 2005년 5월 2일이고, 그래서 꼭 3년 만에 이 녀석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 시각이 오전 10시, 3년 전 오늘 바로 이 시각 즈음에 이 놈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어리숙한 이 놈은 상병이 되면서부터 군대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였고, 부드럽고 관대한 리더십으로 후임들의 신임과 애정을 얻었다. 내가 갖지 못한 그의 성품은 더없이 훌륭하게 보였으며, 성실하게 근무하고 신중하게 내무반의 문제들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에게 매료되었다. 늘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에게 어려움을 느꼈던 후임들도 이 녀석과는 친하게 잘 지냈다. 나는 그런 이 녀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못났더라면, 열등감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놈은 나에게 가장 큰 전역 선물을 안겨 주었다. 전역하기 전날, 군수과 회식 때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처음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읽고 있던 책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존경하게 된 사람 5명을 적으라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그 다섯 명 안에 내가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았고, 놀랄 만큼 기뻤다.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냐고 물었다. 그 녀석의 신뢰를 얻고 있는 줄 알았더면 나는 조금 더 자신 있게 군생활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녀석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나는 그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이라는 답을 들었다. 전역하기 전, 나는 그 녀석의 책을 펼쳐 녀석 특유의 귀여운 글씨체로 또박또박 적힌 내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믿어졌다. 그만큼 그 녀석의 존경은 내게 아주 큰 선물이었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오늘 3년 만의 만남을 가질 것이다. 나는 선물로 준비한 한 권의 책을 건네고, 그간 보고 싶었던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간의 생활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아! 기쁨을 감출 수가 없어 방금 통화를 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 “글쎄요...”
“3년 전 오늘을 생각해 봐라.” “아.. 이거 축하할 일인가요 아닌가요?”
“하하하... 우리 오늘 꼭 3년 만에 만나는 거야.”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것 생각해 두라며 전화를 끊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가슴 속에는 군생활의 추억이 피어오른다. 보고 싶다. 현구야!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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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는 말 속에 만나자는 속마음이 묻어난다.
강연은 8시가 넘으면 끝날 것이다. 그 이후에 보자고 약속을 했다.

두 번의 강연이 있는 날이라 피곤했지만 친구이기에 약속을 할 수 있었다.
좋은 친구들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말이다.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가 바로 우정인 것 같다.

함께 찜질방에 갈까 했었는데, 친구는 집에 가 있으라 했다.
집으로 들어와 청소를 시작하려는데 친구가 도착했다.
9시에 다 되어가는 시각인데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친구는 BBQ를 시켜 먹었다.

개콘을 보다가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자다 보니 침대 곁에서 자는 친구가 느껴졌다.
둘이서도 잘 자는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친한 친구라 잠자리를 함께 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

아침에 눈을 떴다.
어떤 여인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일어나자 마자 영화를 본다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았다. 녀석 참...

아침을 간단히 먹고... 점심은 함께 장을 보았다.
친구 차가 있으니 생수 등 무거운 것들 위주로 장을 봤다. ^^
점심은 없는 살림(^^)이지만 친구를 위해 모든 반찬을 준비했다.

고등어구이, 계란후라이, 김, 김치, 멸치조림, 생식용 두부, 야채 샐러드, 검은콩조림
그리고.. 햇반~!
국이 없다는 것을 슬쩍 제쳐둔다면 반찬이 꽤 많네.. ^^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만드는 법만 배워두면 잔칫상이네. 하하하.

친구놈은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웠다. 기분이 좋았다.
이마트에서 장 볼 때 디저트라고 하여 친구놈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보카도를 골랐는데
친구는 자기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먹지 못하고 귤을 먹었다.
(아보카도는 조리법이 복잡했다.)

밥 먹고 조금 쉬다가 오후 2시가 넘어 친구 놈과 함께 나와서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우정이구나 싶었다.

집으로 찾아오면 반갑고, 자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고 싶은 것,
집으로 간 친구가 남은 주말을 (외롭지 않고) 의미있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
좋아하는 그녀와 정말 정말 잘 되어 이 놈도 곧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
이런 것들을 진솔하게 바라는 것이 우정이구나 싶은 게다.


이런 친구 몇 놈이랑 자주 만나서 삶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웃음도 나누고 싶다.
만나면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는 친구 다섯 놈만 있으면 참 좋겠다.

좋은 친구를 찾는 최고의 방법은 먼저 내가 만나고픈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정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임이 분명하다.

세상살이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기끼어 함께 져 주는 사람이라면
사랑과 우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의 곁에 다가와 줄 것이다.

친구가 나에게 살짝 말한 개인적인 문제를 퍼뜨리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받을 만한 사람으로 알려질 것이고,
약속들을 성실히 지켜나간다면 진솔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듣는다면
사람들이 어려움을 나누려고 나를 찾아올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나를 친구로 삼아줄 것이다.

*

오늘은 이마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역에서
중학교 동창을 두 명이나 만난 날이다. 문득, 우정에 대하여 이것 저것 생각하게 되는 날...

보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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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우정, 친구
새벽에 눈을 떠졌다. 역시 일찍 잠드니 일찍 일어나기가 쉽다. ^^
문득 몇 놈의 얼굴이 떠오른다.

#1. 구미 인동 GUESS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별다른 일이 없어도, 별달리 할 말이 없어도 우리는 종종 전화를 주고 받는다.
어제 저녁에도 전화가 왔었는데, 무슨 얘길 나눴는지 생각해 보면 별 얘기도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일하다가 문득 내가 그리워서 전화를 했겠지...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1월 14일, 15일 이틀동안 대구에서 강연이 있다.
대구는 나의 본가가 있고, 친구와 와이프가 사는 곳이다.
보름 전에 친구놈에게는 15일에만 강연이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이틀 강연이라고 하면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할까봐서. ^^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부담이 될 것 같으면 말 못하는 나다. 친구놈이 들으면 섭섭할테지...
사실 친구 집에 가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부담이지만, 친구 입장에서는 반가움일 게다.
이 놈이 서울에 온다고 해도 나는 우리 집에서 자라고 성화할 테니깐 말이다.

그런데 친구 놈이 블로그의 강연일정을 보았나 보다. 블로그를 생각 못했네.
어제 전화 통화에서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강의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다.
어디서 자냐고 물으며 자기네 집에서 자라고 한다. 딴 소릴 했더니 헛소리 말라고 한다. ^^
주고 받는 얘기 속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 이 글도 GUESS 구미 인동점에서 볼 테지... ^^
고맙다~ 친구야. 곁에 있어줘서. 언젠가는 네가 서울에 올라와서 장사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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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군수송사령부 시설과

며칠 전 또 다른 한 친구 놈이 저녁에 우리 집에서 보자고 한다.
몇 시에 집에 들어갈 거냐고 묻는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10시가 조금 넘어 우리집 앞에서 만났다.
손에는 햇반 두 개를 들고서... ^^ 집으로 가서 밥을 해 달란다. 하하하~
계란후라이를 하고 베이컨을 굽고
김과 김치, 멸치조림과 깻잎 그리고 옥수수통조림으로 상을 차렸다.
친구놈이 "오.. 생각보다 잘 먹고 사네" 그런다. 뿌듯~ ^^

친구놈은 큰 햇반을 홀로 뚝딱 먹어치웠다. 저녁을 안 먹었다더니 배가 고팠나 보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쵸콜릿과 메달을 주었다.
메달은 2007.11.12~17일까지 특새 전출자에게 주는 메달이다.
이 때, 나를 위해 많이 기도했다고 하면서 내게 기념으로 준 것이다.
짜식... 올해는 나더러 새벽기도 많이 하라고 한 것 같았다. ^^
고마운 놈이다. 자고 가면 좋은데 집에 가야 한단다. (사실 전날 밤 우리집에서 잤었다.)
직업군인인 이 놈도 자주 그리워지게 만드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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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우팀원들

1월 2일, 몸이 피곤하여 오후에 잠깐 누웠는데 3시간 가까이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저녁 9시가 다 되어 간다. 헉! 저녁에 장을 보려 했던 계획이 깨졌다.
집 앞 마트는 9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반찬도 없는데, 뭘 먹지... 라고 고민하다가 '에이 그냥 있는 걸로 먹자' 하며 밥을 데웠다.
그런데, 와우팀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시냐고? 지나가는 길인데 생각나서 무슨 간식 사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오잉? 이렇게 반가울 수가... 막 밥을 먹으려던 참이라고 했더니
찌개와 내가 좋아하는 호떡 그리고 던킨 도너츠를 사다 주었다.
츄리닝 차림으로 나가서 길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그냥 헤어졌다. 고마웠다.
덕분에 이 날의 저녁 식사 메뉴가 풍성해졌다.

다른 와우팀원 한 놈은 급한 돈이 필요했던 내게 수업료를 선지불하여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또 다른 한 놈은 성실한 과제로 나에게 놀람과 기쁨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도 나는 와우팀원들과 함께 했고
2008년 새해의 첫날에도 만나 함께 2008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와우팀은 내 삶의 아주 중요한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앞으로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질까? 그들은 얼마나 멋진 삶을 살아갈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한 놈, 두 놈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

새해들어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놈들이 많다. 며칠 새 3명이 자고 갔다.
2008년의 8일 중에 3일은 누군가가 우리 집에서 묵고 간 게다. 내일 또 누군가가 온단다. ^^
약간 부담이 되더라도 부탁하고 그래야 정도 들기 마련인데 나는 도무지 이걸 못한다.
근데, 이 놈은 왜 또 온다냐? 요즘 밤에도 할 일이 많은데... 오해들 하실라...!

1월은 보보의 강연이 가장 많은 달이다.
지지난 해에도, 지난 해에도 그렇더지만 올해도 그렇네.
내년에는 미리 조절을 좀 하든지 해야지... ^^
아니다, 1월에 많이 챙겨서 일년을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는 건가?

암튼 어서 1월이 지나고 사랑하는 친구놈들과 여행이나 떠나고 싶다.
에고... 여행을 이놈들과 갈 계획을 하다니... 청승맞아진다. 글을 맺을 때가 됐나 보다.

총총....
Posted by 보보


"별 일 없지?" 누군가가 제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아니, 있어. 어제 오늘 TV를 봤어. 그런데 되게 재밌더라." 어제, 오늘 한 시간씩 TV를 보았습니다. TV를 보는 일이 많지 않은 제게는 이런 일이 별 일입니다. 그런데, TV 보기가 참 유쾌하게 재밌더군요. ^^

어제 보았던 상상플러스에는 개그우먼 이영자가 나왔습니다. 그의 대단한 입담으로 엄청 웃었습니다. 오늘 본 여걸식스에서는 조혜련의 개그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죠. 두 프로그램을 신나게 웃으면서 보았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TV 평균 시청시간이 하루 3시간이라는 말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걸식스>에서는 '부표 밀어내기'라는 코너가 있더군요. 수영장 풀 한 가운데 떠 있는  지름 약 2.5m 정도의 부표 위에서 물 속으로 상대방을 밀어내는 게임입니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경기가 시작되지요. 음악이 아주 흥겨웠습니다. 엄정화의 페스티발, UP의 뿌요뿌요, DJ DOC의 RUN TO YOU.

TV는 꺼지고, 지금은 인터넷에서 찾은 뿌요뿌요를 듣고 있습니다. 10여년 전의 유행곡을 듣고 있으니, 왠지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추었습니다.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뻣뻣한 몸을 마음껏 흐느적거렸습니다. 뻣뻣함과 흐느적, 이 부조리한 동작이 제가 출 수 있는 춤이었습니다. 문득 이 곡은 십대와 이십 대에 걸맞는 곡이라는 청승맞은 생각이 들더군요.

오랫 동안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영적 실어증에 걸려 기도를 시작해도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억지로 하면 중언 부언 하게 되지요. 마음 속에서 끌어올릴 수 없는 경건함이 없으니 경건한 언어도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아가들이 알고 있는 단어만을 되풀이하는 듯한 기도만 하게 됩니다. "엄마마마..." "암빠빠빠.." 제가 추는 춤이 꼭 그 모양이었습니다. 

고작 몇 분 동안 춤을 추었는데 몇 가지 동작만을 반복하고 있더군요. 다양한 동작을 구사하고 싶었지만, 박자와 몸이 엇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아가들의 옹알거림처럼, 억지로 기도하는 이들의 중언부언처럼.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신명나게 추었기 때문일 겁니다. 보기는 민망해도 진정으로 추었으니까요. 

가끔씩 길거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춤을 추는 십대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들은 전문 댄서가 아님에도 시선을 끌어잡습니다. 춤을 정말 잘 추지 못하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춤을 출 때 그렇습니다. 나의 눈은 학생들의 춤을 보고 있지만, 실은 그네들의 열정, 몰입, 자유에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냅니다. 저들의 열정과 자유를 카메라폰 안에 담아 두기 위해서 말이죠. 찰
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 속에도 담았습니다. 2년 전에 담은 어떤 학생들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저들은 내게 물음 하나를 가지게 했습니다. '아! 나는 저들처럼 무언가에 미쳐 본 적이 있었던가?'

음악은 계속 방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뿌요뿌요는
스무 살 무렵에 친구들과 떠났던 여름 바캉스를 떠올려 주었습니다. 음악에는 당시의 기억이 묻어 있으니까요. 그 해 우리는 푸른 바다 위 배를 타고 바캉스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진도였습니다. 친구 두 녀석이 유피의 "바다"를 부르며 댄스를 흉내내었습니다. 함께 신바람이 났던 추억입니다.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서 그렇게 잠들면 돼.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언제나 나의 결테 있는 널.
왜 넌 내게만 자꾸자꾸 커져만 가는거야
왜 넌 내게만 자꾸자꾸 멀게만 느낀걸까?"

그네들이 보여준 춤은 학교의 춤짱 녀석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가 유쾌하게 웃기엔 충분했습니다.  그 바다, 그 하늘, 그 휴가, 그 여름이 그립습니다. 매해 여름마다 우리는 남해 상주해수욕장, 울산 진하해수욕장, 영덕 옥계, 거제 소금강, 김천 직지사 등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군대도 우리의 우정과 여행 열망을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군대 간 친구들의 휴가에 맞춰 떠나기도 했으니까요. 

녀석들이 이젠
모두 직장 생활을 하고 있네요. 지금은 함께 휴가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수년 간 제대로 여행 한 번 못 갔습니다. 20대 초반의 그 자유와 에너지를 누리기에는 서로 자신이 걸어야 할 인생길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어깨 위에 짊어진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힘겨워하는 친구들이 없다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다들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갔거든요.

어쩌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정도 조금씩 퇴색해져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군대의 막강한 힘도 갈라놓지 못한 일을 세월은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우정의 퇴색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추억의 책 위에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먼지가 조금 쌓여 있을 뿐이지요. 만나서 악수 한 번 하면 그 먼지는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다시 말해 추억의 책장이 넘겨지면 우리는 곧 우정을 느낍니다. 

지금, 그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친구야, 지금 뭐하고 있니? 난 널 생각하고 있는데... 가끔 뜬금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정말 열심히 살자. 우리 인생은 너무 소중한 것 같아. 나 정말 잘 살꺼야.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 너의 삶도 행복하길 기도하라는 뜻인가 봐."

오늘이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보낼 날인가 봅니다. 자꾸 보고 싶습니다. 얼른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감상에 젖기에는 일들이 많네요. 오늘 해야 할 일은 해야죠. 의무감은 아닙니다. 나는 나의 일이 좋습니다. 그 일을 마무리하면 친구에게 전화를 하렵니다.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에 친구와의 전화 한 통화, 그 소통은 '행복'의 다른 이름일 겁니다.

각자의 일이 있어 자주 못 만나기도 하지만, 자기 일이 있기에 서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고 일 덕분에 친구가 더욱 그리워지고 만남이 더욱 달콤한 것이겠지요. 그래도 가끔씩은 할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라도 용기있게 던져 버리고 친구를 찾아가기도 할 것입니다. 글을 쓰며 잠시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 여행도 다녀오고, 공간을 초월하여 친구도 만나고 왔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겠습니다.

행복한 상상은 조금은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최선을 다한 일상은 상상을 행복한 현실로 만들어줍니다. 최선, 이라는 한 단어를 움켜쥐며 일상으로 걸어들어갑니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행복하고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일을 하다 지칠 때, 아름다웠던 추억을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그것도 아니면 춤을 한 번 춰 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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