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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한 것

고대 그리스 세계를 조금은 안다. 머릿속에는 수세기에 걸친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황금빛 아테네의 지적 유산들을 꿰어 찬 지식 꾸러미가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호메로스와 비극 작가(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읽었다. 플라톤의 대화편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어설프게나마 공부했다. 고대 그리스는 내 독서 인생의 중요한 경유지다. (어쩌면 최종 목적지나 지적 고향이 될는지도….) 아테네 여행을 하다 보니, 첫 문장을 다시 써야겠다. “고대 그리스를 조금은 안다고 착각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모른 채로 그리스에 왔음을 여행 둘째 날부터 절감했다. 헬라어는 알파벳조차 몰랐고, 굿모닝에 해당하는 아침 인사 ‘칼리메라’조차 이곳에 와서야 외웠다. 지역어를 모르고 여행지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여행은 ..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부제 : 접붙임을 위한 독서 나에게 독서란, 이해되지 못했는데도 머리를 굴리기 싫어서 계속 책장을 넘기거나 또는 주의가 산만해져 의식하지 못한 채로 몇 줄을 눈으로만 읽었는데도, 무언가 노력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기만적 행위가 아니다. 독서를 진지하게 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지막 장까지 끝내야 하는 의무도 아니다. 독서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성취는 더더욱 아니다. 삶은 때때로 고되고 힘겹다. 그러니 자신만의 유희를 창조하면 좋다. 내게 독서는 즐거운 유희다. 또한 독서는 지적 생활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책 속에 거주한다. 나는 지혜를 찾고 싶을 때마다 책을 펼쳐 시간을 투자한다. 독서는 실용적인 유익도 제공한다. 자녀를 낳았지만 교육이 걱정인 이들에게, 리더가 되었지..

나이만 먹은 어른들

스무 살을 넘겼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어른들도 정서적, 사회적, 정신적 성장이 없다면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천 번을 흔들려도’ 어른이 되지 않는가 하면, ‘열 번의 흔들림’으로도 단단해지기도 한다. 해마다 똑같이 나이를 먹지만, 성숙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는 무엇으로 어른이 될까? 얼마 전, 친구와 그의 30개월 된 아들과 함께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 아이는 상황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 먹을 때에는 조용했고, 만화를 볼 때에는 즐거워했지만, 원하는 상황이 아니면 참지 못했다. 아이는 참을성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점잖다가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짜증을 내고 절제력을 잃는 어른들이 많다. 귀여운 아들 녀석이 빵을 먹다가 크림을..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부제 : 성과와 행복을 높이는 비결 1.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가능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책을 읽기는 불가능하다. 멀티태스킹은 신체적 활동과 정신의 작용 사이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의력을 요구하는 두 가지 일은 동시에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업무는 정신적 사고나 주의력을 요한다. 지식근로자들이 자신의 업무를 멀티태스킹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컴퓨터의 멀티태스킹 기능도 여러 창을 띄워 놓은 것에 불과하다. 작업을 하려면 해당 창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때 다른 창은 비활성화된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스위칭(재빠른 바꾸기)이라 불러야 한다. 나는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을 때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멀티태스킹이든 스위칭이든, 세 가지를 놓치기 ..

정말, 괴테처럼 살고 싶다

블랑은 커피 맛이 준수하다. 빵도 맛나다. 오늘도 마늘빵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빵 접시는 비워졌고, 커피는 남았다. 식어도 맛난 커피다. 아껴마시던 중 날파리 한 마리가 커피 잔 안으로 날아들어갔다. 얼른 잔을 들었지만, 날파리가 커피에 빠졌다. 이미 젖은 날개의 안간힘으로 작은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이 처량하기도 괘씸하기도 했다. 이런...!! 커피는 포기해야 했다. 아쉬움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책 한 자라도 더 읽거나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 하루를 오롯이 생산적으로 살지는 못하지만, 카페에 앉아 일하는 시간만큼은 불처럼 일하는 나다. 집중하여 일하다가 나도 모르게 커피를 마셨다. 두 모금째 마시다가 불현듯 날파리가 떠올랐다. '으악 날파리!' 나는 두 모금째 마셔 입 안..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1. 어디에도 삶의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가장 편하고 친했던 친구는 그리움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세상을 떠나셨고, 37살의 친구는 췌장암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말았다. 존경하던 스승은 폐암으로 예순이 되기 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움이 나를 외면한 느낌이 드는 내 삶의 실존들이다. 고통은 그치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내게 글쓰기는 일상이다. 메모와 기록은 습관이다. ‘노트북 데이터 유실’은 엄청난 불운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일이 내게 벌어졌다. 어제까지 쓰던 자기경영 일지와 십년 동안 기록해 왔던 와우스토리랩 수업 노트가 없어졌다. 스무 살 이후 매일같이 써 왔던,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었던 글들도 나를 떠났..

한가위 연휴를 어떻게 보냈나

1. 영화 를 보려고 극장에 갔다. 표를 사서 밥을 먹고 왔더니, 대기실에 90년대 가수 K가 앉아 있었다. (K가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일 확률이 높다.) 영화 입장을 알리는 안내를 따라, 그도 나도 함께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K와 나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곁에 앉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는 곧장 나갔고, 나도 따라갔다. “저기 가수 K 씨 아니세요? 제가 지금도 이 세 곡을 가사를 외워 끝까지 부릅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이렇게 할 말을 생각해 두었지만,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극장을 나와 교정을 걸어가는데, K의 자동차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는 차창을 열어 창턱에 왼팔을 걸친 채로 내게서 4~5m 떨어진 곳을 느린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

저를 도와주세요, 엄마

1.어제는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오후엔 더 많은 비가 올지 모르니 일찌감치 엄마 묘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식구들을 아침잠에 빠져 있었다. TV를 보시는 할머니를 넌지시 채근했다. 할머니 엄마에게 언제 출발할까요? 니 시간될 때 가자. '저는 지금 당장 가고 싶어요'라는 말은 못했다. 잠시 뒤, "전 아침을 안 먹어도 돼요. 어젯밤에 너무 많이 먹어서 한끼를 건너 뛰려고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나 혼자 먹으면 되나?"고 받으셨다. 할머니는 밥 생각이 없으시다며 라면을 끓여드셨고, 나는 송편 3개를 먹었다. 2.할머니와 나를 태운 자동차가 보슬비를 맞으며 출발했다. 아침 8시 남짓한 시각이었다. "할머니, 일단 한 번 가 봐요.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많이 오면 산에 올라가지 못하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2008년 개봉작 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이다.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평론가들도 있다. 추석 연휴 첫날, 히로카즈 감독의 세계를 음미하기 위해 홀로 KU시네마테크를 찾았다. 는 가족 드라마다. 특히 부모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부모 사랑 간의 온도차가 크게 다가왔다. 영화는 울림을 주었다. 가슴에 돌맹이 하나를 얹은 마냥 묵직한 먹먹함과 쓸쓸함을 안고 건대 교정을 거닐었다. 하늘은 흐렸다. 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영화의 여운은 내면에 고스란히 쌓였다. 1. 줄거리 15년 전에 죽은 장남의 기일에 온 가족이 모였다. (장남은 물에 빠진 아이 '요시오'를 구하다 목숨을 잃었다.) 제삿상에 모인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 큰 딸 가족 그리고 막내아들(차남) 가족이다. 딸네 식구는 저녁을 먹..

인생의 태풍이 지나가고

1.이 따뜻한 영화는 묻는다. "지금 당신은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감독은 희망과 위로와 함께 건넸지만, 이 질문은 내게 송곳이었다. 꽁꽁 묶어놓은 감정의 보따리를 찔러버린 송곳! 작은 구멍은 점점 커져 결국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쏟아져나왔다. 후회, 아쉬움, 자괴감... 그리고 눈물.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료타'는 과거에 문학상을 수상한 현직 사설탐정이다. (아쿠타가와 같은 저명한 문학상은 아니지만, 제법 팔린 소설이다.) 철들지 못한 캐릭터로 책임감이 빈약하고 자기경영에 서툴다. "결혼 생활에는 어울리지 않는" 료타는 이혼남이다. 아들을 좋아하지만, 매월 양육비를 미뤄 아내의 핀잔을 듣는다. 돈이 없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전당포에 맡기거나 어머니의 다락방을 뒤진다. 태풍이 몰아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