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68

음악이 위로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을 검토해 보아도, 바그너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내 유년 시절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음악이 위로다. 음악은 종종 사람의 영혼을 치유한다. 나는 과장과 기만 없이 말할 수 있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을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고, 노래 한 곡이 나를 깊이 위로했다고 말이다. 상실의 아픔을 겪을 때마다 이 노래를 수백 번 들었다. 니체는 자신의 치유자에 대한 요구도 밝혔다. "나는 음악이 10월의 오후처럼 청명하고 깊이 있기를 바란다." 나 또한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향한 기대와 바람이 있다. 나는 유미주의를 좋아하지만, 유미주의자를 지지하진 않는다. 예술이 삶의 지혜와 인류의 비전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에게 바란다. "당신이..

깨달음이 위로다

"고통에 사로잡혀 의미를 찾기 시작하는 소수가 인류의 의미를 결정 짓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힐데 쟁어에게 보낸 편지(1931)에 담긴 말이다. 고통 속을 헤매던 나는 이 말에 깊은 위로를 얻었다. 깨달음이 위로다. 나는 삶이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무 책이나 읽었던 건 아니다. 선별은 하되, 읽고 또 읽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견디려는 안간힘이었다. 헤세는 1920년의 일기에 이런 글도 썼다. "훗날에 돌아보니, 겉보기에 순조로웠던 시기보다 힘들고 어리석었던 시기가 내게 더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성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자라나는 가지만 건드리지 말고 더 깊이 뿌리 내려야 한다."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리라. 내게 필요한 것은 인내, 용기..

11기 와우 모집을 어떡할까

1.11기 와우팀원을 어찌 할까? 오랫동안 나의 고민이었습니다. 새로운 와우팀원을 모집할까 말까를 두고 몇달 동안 갈등했지요. 어떤 날에는 '10기를 끝으로 그만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며칠 후에는 '아니지, 새 기수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11기까지는 하겠다고 말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자'며 나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4/4분기가 되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급기야 그리스 여행을 떠나면서 "와우 11기를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고 돌아오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미코노스 섬에서 잠시 나만의 시간이 주어져 와우에 관한 여러 가지를 곰곰히 생각했습니다만, 확고한 결정 없이 귀국하고 말았네요. 우유부단은 저의 취약점입니다. 2.내면에 존재하는 11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렇습니다. - 와우는 부담이 되는 프..

사진으로 보는 제주여행(2)

비 오는 날의 금능으뜸원해변이다. 날씨가 잔뜩 흐린데도 바다가 에머랄드 빛을 띄어서 단숨에 반한 곳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에는 차에 머물다가 잠시 비가 그치면 나가서 잠시 바다를 관조했다. 바다 너머 보이는 비양도는 정말 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다. 이 해변을 5박 6일을 머무는 동안 세 번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은 밤이었다. 나는 어둔 해변 속을 거닐며 인생을 생각했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한 시간짜리 소요(逍遙)학파 철학자였다. 생각의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리 되겠다. 단순한 삶! 단순함이 간단한 건 아니다. 단순함이 쉬운 것도 아니다. (단순한 명제의 모습을 띠는 지혜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2016년 11월 초에 오픈한 한림읍네의 콩나물국밥..

사진으로 보는 제주여행(1)

제주 바다의 따뜻한 첫 인상이다. 공천포 앞바다가 나를 반겼는데,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얼마 전 이런 얘길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 진실 여부야 알 수가 없지만, 우리 가족도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기에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던 말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공천포 앞바다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우리 집에서 16년을 살았던 푸들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듯이 햇빛을 머금고 나를 안아 주었다. 남원큰엉해안경승지는 황홀한 해안산책로다. 신영영화박물관과 금호리조트 뒷쪽 산책로가 특히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걷다보면 절경에 감탄하고 마음까지 후련해진다. 한반도 모양을 빚어내는 산책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혼자 해가 질 무렵에 들렀다...

나는 왜 호텔에서 잘까

여행 첫날, 와우들과 헤어진 후, 숙소부터 잡아야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 다른 여행자들과 잠시 어울릴 가능성이 있잖아.' 머릿속에는 얼마전 제주를 다녀온 지인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이튿날에는 차를 얻어 타고 한라산에 갔다. 나는 바로 그 이유, 다시 말해 사람들과 엮일(^^)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라는 옵션을 지웠다. 이번 제주 여행도 날마다 호텔에서 잤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귀찮게 여기는 폐쇄족일까? 아니다. 귀찮게 느끼는 쪽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에는 혼자만의 시간만을 고집하는 고독파도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삶의 행..

공감이 깃든 친절을 만나다

제주 여행의 첫 목적지는 공천포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두 명의 와우팀원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차를 몰아갔다. 공천포는 지도에서 서귀포 시 우측에 있는 남원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서귀포시청 제1청사와 남원읍내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식당을 300~400 미터 앞둔 때였다.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서행하는데 물비늘로 출렁이는 바다가 나를 반겼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에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 바다야. 이번에는 자주 만나자." 공천포 식당에선 세 사람 (아이까지 하면 네 사람) 모두 모듬물회를 먹었다. 벌써 십여년 전 일이지만,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라는 '자리물회'를 먹느라 고생한 적이 있었다. 치아가 고른 편이 아니라 가시가 ..

더 나은 하루를 위한 여행

여행이 끝났다. 편도 항공권을 예약하여 제주에 와서 5박 6일을 지냈다. 어떤 여행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소비된 비용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더 아깝다. 세월은 다시 벌어들일 수도 없으니까. 삶이 소중하다면, 하루야말로 삶의 소중함을 실현하는 장(場)이다. 나는 더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여행한다. 제주에서 꼬박 다섯 날을 보내고 나니 시간의 대차대조표를 생각하게 된다. 여행에서 얻은 의미와 배움을 헤아리며 시간을 들일 만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1.가장 커다란 결실은 ‘금능으뜸원해변에서의 다짐’이다. 11월 18일, 시간은 저녁이지만 해가 저물어 캄캄한 바닷가를 걸었다. 나는 의식을 떼어내어 해변을 거니는 삼십 대 후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내면도 들여다보았다. 그는 슬픔에 빠진 표정이었고, 자신의 ..

서른여덟 살의 유언장

슬퍼 마세요. 나는 고통과 슬픔, 외로움이 없는 곳으로 갑니다. 다만 행복을 누릴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나의 죽음이 여러분께 슬픔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떠나니까요. 제가 조금 일찍 간다고 생각하시면서, 나의 죽음을 통해 삶의 진실과 비밀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회한과 원통함 속에서 한 줄기 평온이라도 누리기 위해 평생동안 나를 위로했던 노래 '삶은 여행'을 들으며 이 글을 씁니다. 삼촌과 숙모의 은혜가 바다처럼 깊어요. 내 어린 시절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의 배려가 없었다면 제 삶에는 또 다른 그늘이 드리워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을 했더라면 두 분께서 저를 키운 보람을 더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에 늘 죄송했어요. 이를 생각할 때면 눈..

내가 꿈꾸는 죽음

60세까지는 살고 싶다. (물론 더 오래 살면 좋지만, 일차적 바람이 60세까지는 사는 것이다. 희망 최고령은 87세다. 삶의 후반부를 함께 살아온 여인과 함께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과 87이라는 숫자는 너무 이상적이어서 이렇게 괄호 안에다 묶어둔다.) 화장을 하여 가루가 된 유골은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뿌려졌으면 좋겠다. 그 날, 낙동강변에는 비발디의 곡을 재해석한 막스 리히터의 이 흘렀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준 이들이 열 명은 되었으면 좋겠다. 죽은 후 영혼의 눈으로 강을 따라 안동, 김천, 대구를 둘러보고 싶다. 바다에 이르면 영혼의 눈도 감았으면 좋겠다. 단 하루도 아프지 않고 죽으면 좋으련만, 그런 축복이 나를 찾아줄지는 미지수다. 외할머니는 딸의 묘에 갈 때마다 이리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