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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때다 좋을 때야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면서 선물로 챙겨 온 시집을 펼쳤다. 몇 편의 시로부터 미소와 깨달음을 건네 받았다. 그 중 한 편이 정희성의 이다. 시는 한 폭의 그림이요, 한 소절의 노래인가 보다. 시집..

어느 그윽한 만남

지난 주말이었다. 양평 다녀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 점심 때 시간 되세요? 진석 오빠도 휴가라서요.” 머릿속으로 다음 주 일정을 떠올려보았다. 화요일은 모 건축회사 인사팀과의 회의가 있는 날이다. “민지야 아마도 월요일이 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운전 중이라 10~20분이면 도착하거든. 확인해서 연락할게.” 전화를 끊으면서 고마움에 젖어들었다. 휴가 때, 신랑 신부가 함께 선생을 찾아준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돌아와서 깜빡 잊었다가 저녁에 메시지를 보냈다. “월요일 점심을 함께 먹자. 장소는 너희 가족이 움직이기에 편한 곳으로 하시게. 내가 움직일게.” 30개월 남짓의 딸이 있는 데다 몸도 무거운 그녀였다. 반면 나는 몸 하나가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신랑과 상의하더니 회신..

올 겨울의 반려 음악

운명처럼 만난 앨범이다. 속주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에서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첫 곡에서부터 평온을 느꼈다. 은 우아하고 경쾌하다. 베이스와 심벌즈라는 부드러운 대지가 곡을 받쳐주고, 색소폰과 트럼펫이라는 두 유쾌한 인생이 행진한다. 에서는 두 인생이 길의 방향을 살짝 바꾸어 새로운 스텝을 구사한다. 춤마저 가미된 느낌이다. 이번 겨울은 내게 혹독하다. 내면의 고통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추운 날씨는 안중에도 없다. 불면의 날들이 이어졌고 식욕이 떨어졌다. 그래도 산다. 밥을 거르지 않았고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덕분에 집안이 조금씩 깔끔해졌다. 얼굴 살이 부쩍 빠졌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는 ‘얼른 회복해야지’ 다짐한다. 나는 요즘 내면의 짙은 상실감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창원, 길들여짐 & 구원의 책

1.10분 넘게 택시를 잡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열차에 올라탔다. 창원행 새벽 기차다. 졸린 눈, 어두운 창밖. 26장을 몇 장 읽다가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잠들기 전에 읽었던 "우리의 이별은 칼로 벤 듯이 깨끗했다"는 말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객실을 나와 출입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갔다. 우리네 인생처럼! 시선을 먼 산 쪽으로 던졌더니 풍광이 서서히 지나간다. 하루하루의 시간 같다! 어제 오늘의 하루는 눈으로 그려볼 수 있지만, 지나간 10년의 세월은 몇 조각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가?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 봐."(이상은, 삶은 여행) 마산역에 도착했더니, 아침 햇살이 나를 반겼다. 2.열차 안에..

다가오는 것들의 아름다움

* 1) 예술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대중영화와는 다르니,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르게 감상해야 하나, 저도 고민 중입니다. 2)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하는 법이죠. 마법을 부린다면 또 모르겠지만! 깊은 외로움과 희망도 잘 섞이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의식과 사유로는 말이죠. 지혜와 예술은 그 일을 해냅니다. 예술과 지혜가 삶의 마법인 셈입니다. 3) 9월말에 개봉한 영화라, 전국에서 세 극장(부산, 광주, 서울)에서만 상영 중입니다. 1. 인생 영화를 보았다. 가 ‘올해의 영화’라면 은 ‘인생 영화’가 될 것 같다. 잔잔한데, 강력하다. 괴로운데, 희망적이다. 분명히 잃었는데, 새로운 걸 발견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결론적 사건은 없는데, 이 영화를 본 것이 하나의 사건이었다. 엔딩 크레딧..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이란

'국민과의 대화'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아닐까. 따뜻하면서도 질문의 핵심을 빗겨가지 않는 대화! 국민(이준기)의 말을 끝까지 듣고 의견을 내어놓는 대화! 조심스럽고 겸손하면서도 당신의 입장을 확실히 전하는 대화! 우리나라를 향한 대통령의 자부심과 우리가 더 나은 국가가 되리라는 확신을 볼 수 있는 영상이다. 가슴을 따뜻하게, 영혼을 뭉클하게 만드는 영상! 스크린쿼터제에 대한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내부 경쟁력을 키워서 문 열어 봅시다. 밀고 나갑시다. 영화인들 자신 없어요? 나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 "미국한테 꿀리지 않는 대한민국 될 수 있습니다. 자주 국가로써 부끄럽지 않게 준비하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지인이 보내 준 영상도 보았다. 도입부가 아름다운..

플로라이팅(특강) 공지

플로라이팅(특강) 공지- 작가 역량을 키우는 글쓰기 수업 - 10주차로 진행되던 글쓰기 수업의 핵심을 추려 4시간 특강으로 기획된 수업입니다. 연습은 참가자 분들의 개인의 몫으로 넘기고, 핵심 원칙을 사례와 함께 전달하겠습니다. 5기까지 진행되었던 과정이라 글을 처음 쓰는 분들에 대한 이해도 있고, 더욱 잘 쓰기 위한 노하우도 풍성하다고 자평합니다. 제 글이 별로라고요? 염려 마세요. 저는 거스 히딩크 과에 속하는 선생이거든요. 선수일 때보다 선생일 때 더 강력해진다는 말입니다. 일시 : 2016년 12월 18일(일) 09:00~13:00 장소 : 토즈 홍대점 (홍대입구역 2번 출구 도보 1분)교재 : 유인물 제공 수업료 : 5만원 (원격수업 4만원)F-up : 수업 때 제시된 과제 글 작성하시면, 개인..

마음 한 조각을 덜어내니

드물지만, 강연을 진행하고서 손해보는 경우가 있다. 수강료는 적은데 교재를 그럴듯하게 제작하거나 공지를 느지막이 올리는 바람에 참가자가 적은 경우다. 한 번은 교재비가 비싸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손해가 커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와우가 답답해했다. '꽤 괜찮은 콘텐츠인데, 선생이 왜 이러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 염려가 고마웠다. "이번만 이런 거야. 나도 생각이 있지." 그때만 그랬던 건 아니다(아마 그도 알리라). 전략이라 부를 법한 대비책 같은 것도 없었다. 내 마음을 따랐을 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 1) 가끔씩 내 수업을 찾아준 이들이 가슴 시리도록 고마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작은 보답 차원의 수업을 기획한다. 2) 누군가가 내 수업을 원하면, 머릿속 계산기를 ..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화분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이병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p. 125, 문학동네 *소망하여 만나자 했으면서도만남 이후 겪을 격정적 슬픔이 두려운 그 날.그런데도 만남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인연집을 나서면서도 만나지 않길 바라는 슬..

노래 한 곡 들었을 뿐인데

왜 이리 기분이 좋지? 노래 한 곡 들었을 뿐인데…. 첫 소절의 기타 연주만으로도 사람을 홀리더니 연주하는 내내, 노래하는 줄곧, 전율을 안긴다. 당장 기타를 안고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저이처럼 부르고 연주할 순 없으니,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본다. 황홀이다! 심사위원들은 뭐라 평했을까, 궁금하지만 훌륭한 예술은 비평 없이도 우뚝 존재한다. 신들린 한 소녀가 글망을 불러일으킨다. * 글망 = 글을 잘 쓰고픈 열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