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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들을 조우하다

강연을 마치고 수강생 분들과 함께 와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와 음악 그리고 감각 넘치는 메뉴가 합작하여 연남동 특유의 분위기를 빚어냈다. 우리는 그윽한 와인을 음미하며 같은 관심사의 대화를 나눴다. 감정은 오묘하고 복합적이다. 불행의 시기에도 웃음이 찾아들 수 있고 행복한 시기에도 힘겨운 순간이 존재한다. '단일한 감정은 사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슴이 쓸쓸한 날들인데도, 잠시나마 평온함이 찾아왔다. 절로 튀어나온 말, "어이구, 내 새끼!"평온함, 낭만, 잔잔한 행복감은 나의 잃어버린 양이었다. 함께한 이들에게 고맙고, 잠시 새끼들을 만나 포근한 뒤풀이였다.

스스로를 기쁘게 하렴

영화 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골든글로브 74년 역사상 최연소로 감독상을 받았다. 신예 감독은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가족의 존재가 그의 기쁨을 더했으리라. 손흥민은 ‘토트넘 입단 500일’이 된 날(1월 9일), 시즌 8호 골로 스스로를 축하했다. 영국 BBC는 손흥민을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했다. 나에게도 두 가지 기쁨이 필요하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친밀함을 나누는 기쁨 그리고 (외부의 인정이나 수상과는 무관하게) 오직 나의 삶으로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기쁨! 최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도 누구나 어제보다 좀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만히 속삭인다. 간절한 주문을 외듯.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때면 너의 삶으로 스스로를 기쁘게 하렴!’

삶을 맑게 사유한 날들

힘겨운 연말을 보냈다. 눈물 없이 지낸 날이 없었다. '관계의 상실'로 아프도록 슬펐고, 앞으로 들이닥칠 '상실의 예감'으로 고통스러웠다. 며칠 밤은 불면으로 지새워야 했다. 시공간마저 내 편이 아니었다. 집에 머물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야 했고, 밖을 나돌면 불안해서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과거와 미래도 나를 옥죄어왔다. 이별한 연인과 사별한 인연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상실들! 세상 어디에도, 인생을 더 살아도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우울증인가 싶어 관련 책을 뒤적였다. “인간의 모든 지적 생산물은 ‘생각’의 결과이며, 우울증 환자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들은 우리가 평소 소홀히 넘겨 버리는 사소한 것들까지도 예민하게 짚어 내..

2017년 1주차 성찰일지

1. 회복의 기미를 느끼다 새해 첫 주를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보냈다. 3일은 눈물 없이 보냈다. 아직은 힘겨울 때가 많지만, 분명 11월보다는 좋아졌음을 느낀다. 이렇게 매주 서서히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혼자서도 행복감을 느끼고, 자주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 학습조직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다 J는 교육 회사의 CEO이고, 탁월한 강사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어쩌면 존경하게 될지 모를 분이기도 하다. 한 번 보자고 연락을 주셔서 일정을 조율해서 반갑게 달려갔다. 지난해, 처음 뵈었던 날에 4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며 고무적이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내게 프로젝트 하나를 함께 해 보자고 권하셨다. 스터디 진행 하나와 교육 프로그램 R&D 건 하나였다. 두 가..

어른이 되어야 할 때

공부를 위해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큼직한 글씨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한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홀린 듯이 “Grow up”이라는 말에 이끌려 기사를 읽었다. ‘성장하다’라는 뜻이지만, 남에게 말할 때에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두라는 뉘앙스의 어휘다. “철 좀 드세요, 트럼프. 어른이 될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대통령입니다.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세요. Grow up, Donald. Grow up. Time to be an adult. You’re president. You got to do something. Show us what you have.” 성장이든 철이 드는 문제든 나이는 중요치 않다. 바이든 부통령..

배고프다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1998년이었던가. 친구와 함께 유니텔 아이디를 만들던 때가 기억난다. PC통신 채팅을 통해 여자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에 둘의 마음이 통했던 것. 접속 화면에 들어서니 아이디를 만들란다. 친구의 아이디는 ‘옥계추억’으로 정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함께 여행을 다녀왔던 장소다. 우리 모임의 이름 ‘인스펙션’이 정해지기도 했던 곳. 내가 문제였다. 수많은 단어를 넣어도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란다. 20~30분이 흐른 뒤 우리는 지쳤다. 배가 고팠다. 무심결에 “배고프다”라고 쓰고서, 나도 모르게 덜컥 엔터키를 눌렀다.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등록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나의 유니텔 아이디는 ‘배고프다’가 되었다. 친구와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20대의 풋풋함과 웃음 그..

반복이 전문성의 비결이다

유투브로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김광석 편을 봤다. 2라운드 미션곡은 였다. 말린 대추를 씹으면서도 몇 번이 김광석의 노래인지 쉽게 맞췄다. 1번부터 4번까지 첫 소절만 듣고서도 확신했다. 다음 소절의 노래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너무 뻔했다. 이 노랠 백번은 들었을 테니 당연지사였다. 4라운드의 역시 김광석 찾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3라운드 는 너무 달라서 차마 끝까지 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렇구나, 듣고 듣고 또 들으면 익숙해지고 잘 알게 되는구나. 내가 공부할 책도 읽고 읽고 또 읽으면 그리 되겠구나. 어려운 책들도 반복적으로 다가서면 다르게 읽히겠구나.'

비라도 그치면 길을 나서야지

오늘 아침의 기분은 괜찮다. 며칠 동안 힘들었는데, 오늘은 나아졌다. 잠깐이더라도 고맙다. 장마철에도 하루 이틀은 맑게 갠다. 주부들이 분주해진다. 이불도 널어야 하고, 신발도 내다 말린다. 오늘은 나도 바쁘다. 정신의 장마철을 보내다가 마음이 갠 날이다. 고개 내민 영혼의 햇살에 화답하고 싶어진다. 일감 바구니를 들여다 본다.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르니 약간은 서두르게 된다. 생산성을 높이는 적당한 긴장감이라, 이마저 기분이 좋다. 바구니를 비우려면 몇 시간으로는 어림 없어 보인다. 아! 일하고 싶다. 새로운 글도 쓰고 싶다. 내일도 맑았으면 좋겠다. 화창하지는 않더라도, 비라도 그치면 길을 나서야지.

다시, 태백산행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성실하고도 매몰찬 세월이다. 365일 동안을 쉼없이 흐르더니 얄짤없이 내게 한 살을 얹어 놓았다. 나이 들어서 맞는 새해는 희망과 서글픔이 손을 맞잡고 오는 걸까? 서글픔에는 해학이 제격이다...

유익한 즐거움을 누리기

즐거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책읽기나 소중한 이와의 대화에도 즐거움이 존재하지만, 게임이나 흡연에도 즐거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즐거움의 양면적인 모습 때문에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을 뜻하는 ’쾌락‘이란 단어가 종종 오해를 받습니다. 쾌락, 참 달콤한 단어인데 말이죠. 저도 즐거움을 좋아합니다. 다만 즐거움이란 녀석이 분별력을 갖고 있지 않음을 주의합니다. 즐거움은 종종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더군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결국 나의 자기경영은 즐거우면서도 유익한 활동을 찾아내어 힘써 행하는 노력입니다. 플라톤이 말이 기막히게 옳습니다. "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가르치는 데에 있다." 올바른 것으로 즐거워할 수 있다면, ‘달콤한 과정과 유익한 결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