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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갈 곳을 잃어

1. 어떤 예술은 생활의 고민뿐만 아니라 생존적 고통마저 이겨내도록 돕는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 말이다. 그러한 작품을 만나 치유 받고 싶어서 요즘 그림에 기웃거린다. 아름다운 가치나 비범한 철학은 생존을 돕는다. 내가 책장을 뒤적이는 이유도 위대한 사상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금 나는... 위.대.한.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2. 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오후 1시 58분, 전화가 왔다. "의뢰하신 SSD는 복구가 불가능하네요." 그래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가요?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마음 편하실 거예요." 통화는 짧게 끝났다. 무엇이 편하다는 걸까? 희망 고문에 시달리지 말라는 뜻이라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희망을 걸었었나 보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

어떤 고민은 생존을 위협한다

1. 고민의 종류는 두 가지다. 생활을 위한 고민과 생존을 위한 고민! 생활 고민이라고 해서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모든 고민은 저마다의 크기로 힘들고 괴롭다), 생존 고민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그래서 생활 고민은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적응(?)하여 사는 이들도 있다. 만성 고민이 되는 것이다. 생존 고민은 만성이 없다. 그리 되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병 (에서 송승헌의 연기한 대령을 보라. 어디 그런 고민을 안은 채로 살 수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후에 오는 감정 등은 도저히 만성이 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고민은... 그래서 고통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생존 고민은 말 그대로 생존을 고민하거나 근원적인 것들을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현대미술, 정리정돈, 가방끈

1. 어제 포스팅한 을 읽은 블로그 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기가 가득 전해져서 좋았단다. 친구와의 사별 이후 모처럼만에 기분 좋게 글을 쓴 것 같다고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정말 기분이 좋은 토요일 저녁이었고 7월 6일(친구의 사망일) 이후 최고의 기분이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야 그럭저럭 슬픔을 잊지만 홀로 있을 때 느낀 오래만의 즐거움이었음을 인식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욱 민감하게 변화를 캐치해 준 그 독자에게 고마웠다. 2.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현대미술을 다룬 책을 읽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 생겨났고, 현대미술을 둘러싼 미예술적인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감을 잡았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그림 하나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저녁 내내 기분이..

가을은 낭만의 계절

1. 가을은 내게 낭만의 계절이다. 가을이면 공연, 전시회, 콘서트를 찾고 싶어진다. 이상은 콘서트, 뭉크전, 20세기 화가전을 다녀왔고, 서태지 콘서트를 예매해 두었다. 처음엔 폼 한번 잡아보려고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는 것, 느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잖아 단풍이 산천을 찾아들면, 나 역시 단풍의 방문지를 찾아갈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매년 단풍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이고 매월의 삶을 기록하고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이고, 지난 달보다 조금 나아진 나를 보며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2. 동트기 직전의 동교동이다. 어찌하다 보니, 이번 주 내내 이른 아침 하늘을 보았다. 사진 몇 장을 찍었고, 가장 멋스런 것을 꼽았다. 석양이 저문 후의 하늘은 ..

삶을 돕는 선율과 노랫말

나는 54일 동안의 유럽 배낭여행 중이었다. 행복한 50여 일을 보냈고, 2박 3일 파리 여행만을 남겨둔 때였다. 불상사가 발생했다. 줄곧 내 등에 달라붙어 유럽을 함께 여행했던 배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차역 보관함 앞에 내려놓고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처음 겪는 도난 사건이었다. 가방을 두고 5~6미터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관함에 넣을까?’ 잠시 고민했다. 2유로라도 아끼자며 ‘괜찮을거야’라고 속삭였다. 그것이 가방과의 마지막 눈맞춤이었다. 당장 저녁에 입을 외투조차 없었다. 지갑과 돈도 모두 가방 속에 들었다. 한동안 주변을 뛰어다니며 찾았다. 소용없었다. 역사 주변을 헤매는 나의 뜀박질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노력도 ..

미안한 일이 많은 요즘이다

1.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명절엔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외할아버지 묘소에, 다른 하루는 엄마 묘소에 다녀왔다. 경찰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동생과 장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상경하는 날, 무리한 일정은 아닌데 눈병이 도졌다. 요즘 조금만 피곤하면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난다. 편안하게 살라는 인생의 속삭임일까? 아니면, 마음의 고단함을 알리는 몸의 신호일까? 참 고맙고 애정어린 인생이다. 이리도 살갑게 자기 주인을 챙기다니! 2. 오랜만에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다. 핸드폰 없이 나왔음을 이내 알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달 쯤은 핸드폰 없이 살아도 되는데...' 새로운 생활 방식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잃어버린..

책의 초고를 마무리한 날

1. 8월 31일까지 『인문주의를 권함』(가제) 초고를 마무리하는 게 목표였다. 30, 31일이 주말이니 무리없이 달성하리라 생각했다. 이틀 동안 두 꼭지의 글을 쓰면 마무리되었으니까. 인생은 종종 예측불허로 전개된다. 주말 내내 시들하게 보냈다. 이틀 연속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피곤했다. 토요일엔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로 보냈고, 일요일도 비슷했다. 몸을 일으켜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고 싶었다. 뿌듯할 테지만 욕심이리라 생각했다. 욕심을 부려서 풀리는 게 인생이라면, 나는 일어나 글을 썼을 것이다. 욕심쟁이가 되는 것은 쉬우니까. 길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과감하게 쉬었다.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틀이 지나 오늘 아침 10시에 ..

그림 앞에서 물끄러미

[미술 감상의 첫걸음] 그림 앞에서 물끄러미 절친한 친구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른일곱이 되던 해, 그는 여러 점의 그림을 구입했다. 인사동 갤러리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에 값을 치르거나, 밝은 채색감이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며 고흐의 대형 유화를 침실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와 나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닌 단짝이다. 서로의 성격과 취향을 잘 안다. 그림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그는 갑자기 무엇 때문에 돈과 시간을 그림에 투자한 걸까? 죽음이 다가오면 오감이 민감해진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작은 소리도 민감하게 잡아내고 짙어진 감수성으로 세상을 세심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친구를 통해 알았다. 친구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췌장암..

이런 사람 어디 없을까?

오늘 아침, 샤워하다 떠오른 생각들. 1. 이런 사람 어디 없을까? 자신에게 시간을 주기만 한다면, 뚝딱 자기 작품, 크고 작은 성취,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이들. (다시 말해 자기 세계를 만드는 데 오직 시간만이 부족한 이들) 그렇게 타인의 조력 없이도 삶을 잘 살아내면서도 나에게 듬뿍 시간과 애정을 주는 이들, 어디 없을까? 그런 사람들은 시간을 자신의 일과 소중한 누군가에게만 준다. 2.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주관적인 세계 속에서 사는지 모른다. 생각하는 패턴이 늘 비슷하고 비슷한 사람들만을 만나면서 깊은 자기 이해에 이르기란, 힘들다. 청담동 주민들은 그들끼리 대화하면서 옆집 부유함과 비교하며 자신은 서민적이라 생각하고 자기계발 강사들은 자기들끼리 만나면서 자기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 미숙하다..

나는 다시 이상주의자!

서른 일곱, 나는 아직 젊다. '아직'마저 빼 버리자. 마치 젊음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 아닌가. 나는 젊다. 언제까지나 젊고 싶다.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헤집고 다니고, 시도해보지 않은 일들에 도전하면서 살다보면, 나이는 들어도 여전히 나는 청춘일 것이다. 늘 새로운 방식의 삶을 상상하자. 어른이 되어서도 꿈을 추구하는 삶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느끼고(!) 체험한다(!). 몸은 이미, 도전하려는 노력보다는 안주의 편안함을 알아버렸다. "이 나이 되어 빡빡하게 살고 싶지 않다"던 어느 중년의 말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모하지 않고 현실적이 된다는 건,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지혜로 간주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이십 대 청춘은 자기만 추스르면 되지만,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