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 13

3분 36초의 시간 있으세요

여유, 향유, 자유, 공유!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어제는 한 곡의 팝송을 통해 네 가지 단어들을 모두 누렸다. 카카오톡 단체창에서 조지 이즈라(George Ezra)의 가 링크되었다. 음악 감상은 3분 36초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들어볼까? 하던 일이나 할까?' 여유가 없으면 후자로 귀결된다. 휴식이나 예술을 향유하려면 잠깐의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만이 아니다. 때때로 마음의 여유가 더욱 중요하다. 하루 중 3분 36초를 내지 못할 만큼 바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그리 믿는다. 3~4분은 엉뚱한 활동으로 쉽사리 소비되는 짧은 시간이다. 시시콜콜한 카톡으로, 전화 통화로, 인터넷 서핑으로, 물건을 찾는 일로, 딴 생각이나 멍 때림으로 수십 분을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5분을 내지 못하는 여..

부러움을 안긴 사람들

최근 들어 '아! 부럽고만' 하고 느낀 이들이 있다. 작가 장정일! 『장정일의 악서총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쁜 책들에 관한 총람이라니! 내용만 실하다면 매우 재밌겠는 걸. 제목 멋지네.' 책 표지에 병기된 한자어를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의 오해다. '악서총람'은 나쁜 책(惡書)들을 다룬 책이 아니라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에 관한 단상과 리뷰를 담은 책이다. 출판사는 책을 이리 소개했다. "장정일이 오로지 ‘음악’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독서일기 『장정일의 악서총람』으로 돌아왔다. 책은 음악·음악가를 다루거나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 174권에 대한 리뷰 11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형식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책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자유롭..

관리

[짧은 소설] 남자는 여자를 떠나려 했다. 여자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놀랐지만, 인생사는 갑자기 일어나는 법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달랬다. 아버지는 예정된 날이 아닌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회사에서는 한 마디의 언질도 없이 갑자기 그녀를 해고했다. '갑자기'는 인생사의 본질이었다. 이번이 두번째 통보였다. 일년 전에도 남자는 이별을 고했었다. 그때는 붙잡았지만 이번에는 안 되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여자는 부탁했다. "내게 조금만 시간을 줘. 마음 정리할 시간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그의 눈빛에서 사랑이 아닌 동정을 본 것 같아 슬퍼졌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튿날 오전 10시 20분에 여자는 카카오톡을 보냈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11시 3분이 되어..

나도 한때 농구를 좀 했다

나도 한때 농구를 좀 했다 - 무엇이 실력을 만드는가 농구는 90년대 중고등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체육 시간, 축구공을 차는 학생보다 농구공을 던지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배리 본즈나 마크 맥과이어보다 마이클 조단, 허재, 이상민, 전희철이 학생들의 영웅이었다. 길거리 농구대회도 자주 개최되었다. 스물 세살 장동건이 주연한 16부작 미니시리즈 (1994)는 당시의 농구 인기를 실감케 했다. (동민(손지창)의 180도 터닝슛은 어설펐지만, 다슬이(심은하)는 남심을 저격했다.) 90년 초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도 농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매일같이 즐겼던 축구는 중학생이 되면서 농구로 바뀌었다. 나는 농구를 곧잘 했다. 친구들과 점심 시간, 체육 시간마다 농구를 했다. 오후 수업 시작을 알..

올해를 잘 살고 싶은 이유

나는 향유하는 독서가다 - 올해를 잘 살고 싶은 이유 나는 언제나 머무는 여행자였다. "거기 다녀왔다"는 결말보다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한 변화와 성장을 추구했다.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내 영혼을 붙잡는 도시에서는 예정보다 많은 날들을 보냈다.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독일 바이마르에서 7일씩 머물렀던 까닭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괴테 하우스에서는 여섯 시간을 머물렀다. 3층 괴테의 방에서 네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동안,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괴테와의 대화』를 읽었고, 가구들을 살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관광객이 아무도 없을 때에는 나무 의자에 슬쩍 앉아 쉬기도 했다. 괴테가 공부하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인터넷 서핑은 시간도둑이다

당신의 인터넷 서핑, 이대로 괜찮으세요? 시간활용 차원이나 유용한 정보의 습득 면에서 효과적인지, 낭비적 요소는 없는지 묻는 겁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마저 대한민국으로 전달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뉴욕 지하철에서 일어난 이색 뉴스가 인터넷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저는 수년 전, 뉴욕의 노 팬츠의 날(No Pants Subway Ride, 노 팬티의 날이 아님)에 관한 기사를 클릭한 적이 있습니다. 무료한 일상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취지로 바지를 벗고 지하철에 탑승하는 날입니다. 여섯 명에서 시작된 이색 이벤트가 유럽 국가들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지성이나 의미를 채워주는 정보는 아닙니다. 이런 기사를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주고받은 만남

* 주말이다. (주중에 못 다한 일들이 침범한 주말!) 명절이 있던 주간임을 감안해도 이번 주말은 할 일이 많고, 여유는 없다. 원인은 간단하다. 토요일 점심에는 개인 면담과 와우들 저녁식사 모임이, 일요일에는 강연회 하나, 독서토론 미팅 하나, 그리고 식사 약속이 있다. 이만하면 올해 들어 제일 바쁜 주말이겠다. (이제 고작 2월 중순이긴 하지만.) * 이쯤되면 일정을 하나 정도는 취소하고 싶어진다. 다수의 약속 중에는 상대적으로 변경하기 쉬운 약속이 하나쯤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토요일 점심 약속이 1순위다. 개인 면담을 요청한 20대 청년과의 만남인데, 꼭 해야 하는 의무도 하고 싶은 소원도 아닌, 편안한 약속이다. 강렬한 유혹일지라도, 유혹은 유혹일 때 아름답다. 이런 이유로 약속을 취소하거나 변경..

수업공지 <황금빛 아테네>

그리스는 매혹적인 이름입니다. 여행객들은 산토리니, 크레타섬 등 매혹적인 관광지로서 현대의 그리스를 동경하고, 지성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지적 유산을 예찬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산은 교양교육과 인문학 공부에서 필수적인 영역입니다. 화이트헤드는 “플라톤 이후의 모든 철학은 그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지성인 매튜 아놀드는 “세계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두 축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리스 정신과 기독교 정신의 두축이 세계 문화를 이끌었다는 겁니다. 영국의 고전학자 키토의 말도 인용해 보죠. “소설을 제외한 모든 학문 형식은 그리스인에 의해 창조되고 완성되었다.” 소설은 르네상스 이후에 등장했지만, 서사시, 서정시, 비극과 희극 등의 모든 문..

우선적으로 읽을 교양 고전들

시카고대학교 총장이었던 로버트 허친스와 같은 학교의 교수였던 모티머 애들러는 각각 편집장과 부편집장을 맡아 많은 학자들과 8년간 협업하여 54권의 『서양의 위대한 책들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1952년, 이하『Great books』)을 출간했습니다. 호메로스부터 프로이트까지 2,800년을 가로지르는 저자 74명의 443 편의 저작 목록입니다. 20세기 후반에는 6권이 늘어나 60권이 되었으니 수록된 저작 목록은 좀 더 많아졌습니다. 1권과 2권은 60권의 주요 개념을 소개하는 색인(신토피콘)이고 3권부터 서양의 고전이 실렸습니다. 3권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3권에는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전편(각 7편)이 수록되었으니 각 권마다 분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