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1. 어떤 예술은 생활의 고민뿐만 아니라 생존적 고통마저 이겨내도록 돕는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 말이다. 그러한 작품을 만나 치유 받고 싶어서 요즘 그림에 기웃거린다. 아름다운 가치나 비범한 철학은 생존을 돕는다. 내가 책장을 뒤적이는 이유도 위대한 사상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금 나는... 위.대.한.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2. 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오후 1시 58분, 전화가 왔다. "의뢰하신 SSD는 복구가 불가능하네요." 그래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가요?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마음 편하실 거예요." 통화는 짧게 끝났다. 무엇이 편하다는 걸까? 희망 고문에 시달리지 말라는 뜻이라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희망을 걸었었나 보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

어떤 고민은 생존을 위협한다

1. 고민의 종류는 두 가지다. 생활을 위한 고민과 생존을 위한 고민! 생활 고민이라고 해서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모든 고민은 저마다의 크기로 힘들고 괴롭다), 생존 고민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그래서 생활 고민은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적응(?)하여 사는 이들도 있다. 만성 고민이 되는 것이다. 생존 고민은 만성이 없다. 그리 되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병 (에서 송승헌의 연기한 대령을 보라. 어디 그런 고민을 안은 채로 살 수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후에 오는 감정 등은 도저히 만성이 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고민은... 그래서 고통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생존 고민은 말 그대로 생존을 고민하거나 근원적인 것들을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현대미술, 정리정돈, 가방끈

1. 어제 포스팅한 을 읽은 블로그 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기가 가득 전해져서 좋았단다. 친구와의 사별 이후 모처럼만에 기분 좋게 글을 쓴 것 같다고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정말 기분이 좋은 토요일 저녁이었고 7월 6일(친구의 사망일) 이후 최고의 기분이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야 그럭저럭 슬픔을 잊지만 홀로 있을 때 느낀 오래만의 즐거움이었음을 인식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욱 민감하게 변화를 캐치해 준 그 독자에게 고마웠다. 2.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현대미술을 다룬 책을 읽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 생겨났고, 현대미술을 둘러싼 미예술적인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감을 잡았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그림 하나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저녁 내내 기분이..

가을은 낭만의 계절

1. 가을은 내게 낭만의 계절이다. 가을이면 공연, 전시회, 콘서트를 찾고 싶어진다. 이상은 콘서트, 뭉크전, 20세기 화가전을 다녀왔고, 서태지 콘서트를 예매해 두었다. 처음엔 폼 한번 잡아보려고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는 것, 느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잖아 단풍이 산천을 찾아들면, 나 역시 단풍의 방문지를 찾아갈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매년 단풍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이고 매월의 삶을 기록하고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이고, 지난 달보다 조금 나아진 나를 보며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2. 동트기 직전의 동교동이다. 어찌하다 보니, 이번 주 내내 이른 아침 하늘을 보았다. 사진 몇 장을 찍었고, 가장 멋스런 것을 꼽았다. 석양이 저문 후의 하늘은 ..

미안한 일이 많은 요즘이다

1.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명절엔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외할아버지 묘소에, 다른 하루는 엄마 묘소에 다녀왔다. 경찰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동생과 장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상경하는 날, 무리한 일정은 아닌데 눈병이 도졌다. 요즘 조금만 피곤하면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난다. 편안하게 살라는 인생의 속삭임일까? 아니면, 마음의 고단함을 알리는 몸의 신호일까? 참 고맙고 애정어린 인생이다. 이리도 살갑게 자기 주인을 챙기다니! 2. 오랜만에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다. 핸드폰 없이 나왔음을 이내 알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달 쯤은 핸드폰 없이 살아도 되는데...' 새로운 생활 방식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잃어버린..

책의 초고를 마무리한 날

1. 8월 31일까지 『인문주의를 권함』(가제) 초고를 마무리하는 게 목표였다. 30, 31일이 주말이니 무리없이 달성하리라 생각했다. 이틀 동안 두 꼭지의 글을 쓰면 마무리되었으니까. 인생은 종종 예측불허로 전개된다. 주말 내내 시들하게 보냈다. 이틀 연속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피곤했다. 토요일엔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로 보냈고, 일요일도 비슷했다. 몸을 일으켜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고 싶었다. 뿌듯할 테지만 욕심이리라 생각했다. 욕심을 부려서 풀리는 게 인생이라면, 나는 일어나 글을 썼을 것이다. 욕심쟁이가 되는 것은 쉬우니까. 길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과감하게 쉬었다.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틀이 지나 오늘 아침 10시에 ..

고맙다, 광화문!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일상 (2014년 8월) 8월 13일 밤, 수업을 마치고, 함께한 분들과 함께 봉구비어 종로점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처음 가본 봉구비어는 시끄러운 분위기였지만 맥주와 안주가 저렴하고 맛났다. 밤 11시가 넘어 우리는 귀가하기 위해 종각역으로 향했다. 종로 밤거리 어디에선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가 들렸다. 양해를 구하고 일행과 헤어진 나는, 노래의 근원지 앞에 서서 연달아 세곡의 노래를 들었다. 8090 노래들...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녀석도 떠올랐다. 그리운 친구... 8월 18일 오후, 광화문점 교보문고에 들렀다. 이런저런 책을 살피던 중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과 『트루 포틀랜드』. 나는 사진 속의 저 책을 보자마자, 창조적..

의지할 지혜, 의욕상실 & 우정들

1.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문득 기억났다. 어제 교보문고에서 책 한 권을 지나치듯 펼쳤었고, 거기에 스치듯 보았던 구절이다. 내용은 가물가물. 화보집에 가까울 만큼 사진이 많은 책이었는데, 제목도 가물가물. 교황 관련서가 봇물처럼 쏟아졌으니 머잖아 반값 할인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구입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도서 구매욕을 자제하지 않으면 몇달 새 아니 몇 주 만에라도 나는 거덜나고 말 것이다. 교황의 책을 뒤적였던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붙잡고 살아갈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물했던 말씀이 기억났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따르지만 일반 사람들은 양심을 따릅니다" 그 분의 관용이 느껴진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의로운 삶..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1. 후배가 아내의 산후 우울증에 대한 고민을 털어왔다. 그와 아내 모두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셋이서 만났다. 나는 이것저것을 물었고, 그녀는 아이 키우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루 24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이야기의 마무리는 다른 분위기로 맺었다. "그래도 좋을 때도 많아요." 힘들다고 말하다 보니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좋을 때가 많은 게 사실이기도 해서 꺼낸 말일 터. "이해인 수녀님셨나. 이런 말을 하셨어.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행복하다고 해서 힘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네가 그리 말해도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셔." 힘든 게 있으면 더욱 털어놓기를 바라는 마음, 털어놓고서 괜히 후회스러우면 그럴 필요가 ..

집안일 3종 세트와 맞바꾼 것

올해 안으로 독립하는 게 내 목표야. 그녀가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무언가를 실행한 눈치는 아니었다. 언제까지 부모님 댁에서 분가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부모님 댁과의 거리나 얼마나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지, 살려는 동네의 매물은 잘 나오는지, 요즘 시세는 얼마인지 등에 대해서 궁금했다. 나는 느긋하게 하나씩 물었다. 생각은 속사포 같더라도, 대화는 테니스 랠리를 펼치듯 질문과 답변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니까. 그녀는 내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음을 안다. 요즘 월세는 얼마나 해? 대답하기 힘든 물음이었다. 그거야 동네마다 다르지. 어디에 살고 싶은데? 친구는 내 답변 속에서 자신의 물음이 엉성하다는 것을 눈치 채 바로 말을 받았다. 아직 그걸 결정 못했어. 얼마큼 떨어져 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