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삼백 육십 오일이 지나도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삼백 육십 오일이 지났다. 친구 형님께도, 친구 아내에게도 전화 한 통 없이 오늘을 보냈다. 형님이 괜찮냐고 물으면 나는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괜찮지 않으니까. 형님은 어떻게 오늘을 보내셨을까. 제수씨는 무얼 하며 지냈을까. 음력 기일을 지내는지 만이라도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지금 나에게는 '꼭 한 번 만'이라는 말이 절절하다. 식사 한 번 하고 싶다.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마음이 아무리 절절해도 그럴 수가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으니, 소원은 목 메는 애통함이 되고 만다. 눈물이 흐른다. 요즘 내내 몸무게가 조금씩 늘어나던 참인데, 어제 오늘 1kg이 줄었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죽은 이들 저마다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있..

독서, 짧은 소설 & 5.18

1. 어제는 5월 18일 35주년 기념일이었다. 나는 궁금하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호기심이기도 하고, 역사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매년 이 날을 기념했다. 5월 18일 전날부터 덩어리 시간을 내어 5.18 자료를 찾기도 했고, 관련 영상을 보기도 했다. (기억이 맞다면) 강준만 선생의 『리영희』에서 기술된 설명이 내가 읽은 가장 충격적인 묘사들이었다. 언젠가부터 5월 18일이 되어도 나는 다른 일들로 바빴다. 홀로 묵념하는 것으로 간.단.히. 지나치고 만다. 이것이 나만의 모습이면 좋겠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생들과 시민적 지식인들은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불러들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

모든 순간은 연결되어 있다

1. 어제는 여유를 만끽했다. 2월을 바쁘게 보냈고 3월에도 강연이 많으니 커피 한잔의 여유가 절실할 때 찾아온 행복한 하루였다. 아침에 마음편지를 보내고 나서는 느긋하게 독서했다. 스퀴즈빌리지 홍대점에서 착즙주스를 사와 간식으로 먹으면서 독서와 업무를 즐겼다. 오후에는 낮잠을 잤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낮잠 타이밍을 놓쳤던 것 같다. 저녁에는 홀로 티박스라는 카페에서 보이차를 즐기며 책을 읽었다. 2. 모처럼만의 독서는 맛난 음식처럼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교양과 무질서』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제법 읽었다. 매슈 아널드의 비평관이 정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내 나름으로 보완하여 글로 적기도 했다. 이택광 선생이 말하는 문화비평은 문화 속에 숨은 정치적 구조 해석..

제외하면, 한가로운 하루

1. 저녁식사 약속과 GLA START 수업을 제외하면 일정이 없는 하루다. 두 개의 일정이나 제외하고서 일정이 없다고 말하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저녁에 일정이 두 개나 있고, 수업 준비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눈 앞의 여유가 증발해버리는 느낌이다. 반면 무엇무엇을 제외하면 한가한 하루라는 표현은 마법 같다. 찰나지만, 여유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찰나의 여유와 감정을 주무르는 언어의 마법에 열광한다. 열광이라고 쓰니, 춤이라도 추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내 감정이 과연 '열광'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내 감정을 회의적으로 들여다보는 맛도 일품이다. 열광, 맞다! 2. 나를 보자마자 김밥 아주머니가 외쳤다. "어머 어떡..

일상을 끼적이는 순간마다

일상을 끼적이는 순간마다 펄떡이는 심장 가슴에 품고 내가 살아 있음을 사지를 힘차게 놀리며 지금 여기에 살고 있음을 오감으로 확인한다 충만히 느껴지는 생동감은 끼적임 덕분일까 성찰의 저력일까 1. 길었던 설 연휴가 끝났으니, 이제 긴 업무시간을 즐길 때가 되었구나. 오늘을 맞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나는 월요일 오전에 서울에 도착했고, 이후에도 약속이 두 개나 있었다. 오늘(화요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용한 일상이 시작된 셈. 아! 얼마나 고대했던 혼자만의 시간인가. (고대함은 내가 홀로 있기를 즐기는 성향 탓이기도 하겠지만, 근 일주일 동안 홀로 보낸 시간이 극히 적었던 탓이 더 크다.) 하루 종일 일했다. 미뤄왔던 GLA START 일정을 공지하고, 몇 개의 메일에 회신했다. 글쓰기 3월 수업을 위한 ..

GLA'S' 과정을 마치고

4주에 걸친 인문수업 START 과정을, 어제 마쳤습니다. 를 부제로 한 수업이었죠. 2년 동안 음지에서 진행하던 수업을, 올해는 블로그에 공지한 것이 제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열정적인 참가자 분들을 만난 덕분에 4주 동안 즐겁게 수업을 했네요. "선생님, 행복하게 강연하는 모습, 오랜만이네요"라고 말했던 와우들도 여럿이었고요. (4주 동안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마지막 수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둡니다. 1. 어떻게 사고력을 키울까. 이것이 인문 소양에 대해 강의하는 선생으로서의 가장 큰 화두였다. 실용적 독서에 대해 강연할 때, 어떻게 실천력을 키울까를 고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도약은 실천하는 독자와 실용서의 만남으로 탄생하고, 깊이는 사유하는 독자와 인문서의 만남으로 창조되..

독서, 낮잠 & 길거리 풍경

1. 집에서 푸욱 쉬었다. 2월 1일부터 헤르페스 각막염이 찾아와 간간이 나를 괴롭혔기에 녀석을 잠재우고 싶었다. (괴로움은 크지 않다. 눈이 뻑뻑하고 눈물을 흘리는 정도다.) 2015년을 시작하며 헤르페스에 대해 목표를 세워 둔 것이 있다. 분기별로 1회씩, 딱 네 번만 아프자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목표를 지켜가고 있다. 1월에 3번 아팠고, 2월에 한 번 아팠으니 남은 11개월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으면 된다. 하하. (사실 1월에 발병 주기를 보며 좀 놀랐다. 역시 측정하고 나면 보다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수정된 계획은 월 1회가 목표다.) 2. 하루 동안 한 일이라고는 독서와 식사 그리고 낮잠 밖에 없다. 뒹굴 거리며 책을 읽었고, 조금만 졸리면 내 몸을 졸음에 맡겼다. 저녁이 되니,..

멍하게 TV를 시청하고서

어젯밤 열두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2박 3일 동안 많이 돌아다녔다. 공주에서 강연이, 진주에서 4기 와우의 결혼식이 있었다. 목요일에는 모기업 연수원에서, 금요일에는 대전 대림호텔에서 잤다. (베니키아 호텔인데도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예약했는데 후지긴 했다.) 여행은 좋지만, 장시간 운전은 고달프다. 그래서 하행길에서 대전에서 숙박했었다. 오는 길에도 중간에서 하루 더 숙박할까 고민했지만 숙박비도 아끼고 업무도 밀려서 서울행을 택했다. 상행길은 진주 - 양평 집 - 서울 작업실로 이어지는 먼 거리였다. 도착하여 잠시 누워서 '씻어야 하는데... 씻어야 하는데...'를 반복하여 중얼거리다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휴일이어서인지, 며칠 떠돌이 생활을 해서인지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했다. TV를 틀었..

새벽에 문득 애도 한 움큼

1. 새벽 한 시가 넘었으니, 이성이 쫑알거리기 시작한다. '어서 자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일 헤르페스 각막염이 재발할지 몰라.' 머리가 마음을 두드렸지만 마음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머릿 속 자야 한다는 생각은 오른쪽 눈에 느껴지는 옅은 이물감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성의 목소리보다 감성의 끌림에 나의 밤을 맡겼다. 넬, 허각, 에픽하이가 내 방에 선율을 채워 주고 있다. 오늘 배송된 책 하나를 펼쳤다. 『소설이 필요할 때』. 표지에는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라는 문구가 적혔다. 목차가 간단하다.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목차가 하나 뿐이다. "세상 모든 증상에 대한 소설치료법 A to Z". 삶의 상황별로, 무려 751권의 소설을 화끈하게, 제안하는 책이다. 이런 식이다. - ..

나의 초상 (9)

1. 사랑하는 후배의 아내가 어제 첫 아이를 출산했다. 소식이 담긴 카톡창에 아가의 사진이 올라왔다. '왜 모든 태아는 못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증발했고, 나는 그 사진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책상에서 일어나 작업실을 서성이며 울었다. 기쁨과 처연함의 눈물이었다.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잘난 녀석이니, 당연히 처자식 잘 챙기고 가장 역할을 잘 해낼 텐데, 나는 그 당연한 일이 천금처럼 감사했다. 순간적이지만 정말 천금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왜 울까? 기쁨만은 아닌 것 같아, 이유가 궁금하여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눈물을 머금은 사내가 보였다. 태아처럼 못 생긴 얼굴, 낯설다. 눈물이 기쁨 뿐만 아니라, 처연함으로부터도 온 것이란 것을 알았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