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부러움을 안긴 사람들

최근 들어 '아! 부럽고만' 하고 느낀 이들이 있다. 작가 장정일! 『장정일의 악서총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쁜 책들에 관한 총람이라니! 내용만 실하다면 매우 재밌겠는 걸. 제목 멋지네.' 책 표지에 병기된 한자어를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의 오해다. '악서총람'은 나쁜 책(惡書)들을 다룬 책이 아니라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에 관한 단상과 리뷰를 담은 책이다. 출판사는 책을 이리 소개했다. "장정일이 오로지 ‘음악’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독서일기 『장정일의 악서총람』으로 돌아왔다. 책은 음악·음악가를 다루거나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 174권에 대한 리뷰 11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형식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책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자유롭..

마음을 주고받은 만남

* 주말이다. (주중에 못 다한 일들이 침범한 주말!) 명절이 있던 주간임을 감안해도 이번 주말은 할 일이 많고, 여유는 없다. 원인은 간단하다. 토요일 점심에는 개인 면담과 와우들 저녁식사 모임이, 일요일에는 강연회 하나, 독서토론 미팅 하나, 그리고 식사 약속이 있다. 이만하면 올해 들어 제일 바쁜 주말이겠다. (이제 고작 2월 중순이긴 하지만.) * 이쯤되면 일정을 하나 정도는 취소하고 싶어진다. 다수의 약속 중에는 상대적으로 변경하기 쉬운 약속이 하나쯤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토요일 점심 약속이 1순위다. 개인 면담을 요청한 20대 청년과의 만남인데, 꼭 해야 하는 의무도 하고 싶은 소원도 아닌, 편안한 약속이다. 강렬한 유혹일지라도, 유혹은 유혹일 때 아름답다. 이런 이유로 약속을 취소하거나 변경..

겨울을 맞는 일상들

1.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나는 두터운 머플러를 꺼내어 목에 둘렀고, 올 겨울 들어 첫 난방을 가동했다. 기온은 영하로까지 떨어졌다. 이번 주부터는 캐롤을 듣고 있다. 어제가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이었고, 매년 이맘 때 즈음이면 캐롤과 연말이 다가온다는 설렘이 찾아든다. 한 해를 살면서 개인의 에너지도 부침을 거듭할 텐데, 나는 12월에 기운이 솟는다. 얼마간의 긴장 덕분인 것 같다. 한 해를 잘 갈무리하고 싶다는 건설적인 의지 말이다. 오늘 친구가 나를 보더니 묻는다. "좋은 일 있어?" 별일이 없었다. 그래서 대답도 "아니"였다. 녀석의 화답, "뭔가 밝아 보이는데..." 그런가 보다. 뭔가 생기가 도나 보다. 2. 겨울의 스타벅스는 특별하다. 여느 때도 좋지만, 스타벅스가 들려주는 겨울 음악은 더욱..

오전이 다 지나갔다

1. 적당한 포만감으로 마시는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글을 썼더니, 친구가 자기도 그렇단다. 그 이후로 카페에서 홀로 '적포진피'를 마실 때면, 종종 녀석이 떠오른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향도 맛도 좋네. 날씨마저 진한 가을이고. 일정이 많은 이번 주다. 가을을 누릴 여유가 없어 아쉬워하다가, 이 순간을 아쉬움에게 내어주기는 싫었다. 밖으로 나가 딱 5분 동안 하늘을 보았고 낙엽을 만졌네. 하루 5분의 여유는 언제든지 낼 수 있음이 느껴지면서 행복하더라. 연말에는 한 번 보자." 이런 메시지를 보내려고 적었다가, 오글거려서 관두었다. 2. 외출하는 길에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끊어야 했다. "아, 네. OO님. 제가 지금 엘리베이터 안인데, 잠시 후에 전화 드릴게요." 불과..

비 오는 날의 벤쿠버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즐겨 찾는 카페에 왔다. 추적추적,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자동차들, 우산 쓴 보행자, 차분한 쓸쓸함,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지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이루마의 이 어울리는 장면. 그날 아침, 나는 벤쿠버에 있었다. 가는 비가 약하게 내리는 날씨였다. 자동차가 오가는 길 건너편에 스타벅스가 보였고 내 등 뒤에 선 건물은 시립도서관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여행자였다. 비 올 때마다 종종 떠오르는 장면이다. 지금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카페에 앉아 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장면을, 나는 듣는다. 그리고 노란색 단풍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본다. 6년이 지나, 태평양 건너의 도시 서울에서 사는 내게 ..

아카이브로 날아갈 책들

나의 장서는 양평 아카이브와 동교동 서재에 나뉘어져 있다. 장서의 90%가 아카이브에 있고, 내 생활의 중심은 90%가 동교동에서 이뤄진다. 읽을 책들을 실어오고 읽은 책들을 실어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내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일상의 일면을 들여다본다. 군더더기를 없애 효과성과 효율성 모두를 높이고 싶어서다. 일상과 몸매는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아름답다. 1. 여행서 두 권 올해 가을에 일본에 갈 뻔했다. 실행되었더라면, 오랜만에 둘이 떠나는 해외 여행이었다. 내겐 둘이 떠나는 여행이 가장 드물다. 연예인처럼 밀월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결혼한 친구랑 떠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이다. 실행한다면 아마 그의 아내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국내 여행을 둘이서 다녀 온 적은 네번이다. 친구 P와 포항,..

오늘 밤은 헤세가 친구다

1. 헤세의 시 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화려한 세계가 이별을 고한다. 내 설혹 목표를 놓쳤어도 나의 여행은 대담했나니." 2. 20대, 나는 스스로를 '행복유통업자'라 정의했다. 행복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의 곁에 있고, 그의 곁에 있고, 당신의 바로 곁에도 있다. 누구나 눈이 밝아지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리 믿었다. 행복유통업자로서 나는 행복을 제조하거나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개안(開眼)을 위한 지혜를 나누면 되었다. 한동안 나는 행복의 향유와 공유를 위해 살려고 노력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나의 일을 행복유통업이라 부르기가 힘들어졌다. 이제는 '불행예방업자'가 된 것 같다. 긍정성을 걷어찬 것은 아니었다. 행복유통업자로 지낼 때에도 밝음은 어두움을 이면으..

내가 만난 최고의 스승

1. 2005년도 연말의 추억이다. 나는 한국리더십센터 연말 행사를 준비하는 TFT팀의 일원으로 강사 섭외를 담당했다. 내게 주어진 예산은 2회 강연에 100만원이었다. TFT 회의에서는 김재동, 한비야 같은 유명 인사도 거론됐다. 젊음의 패기 덕분인지,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김재동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30분에 900만원이란다. 그 말에 기겁을 했는지, 협상을 시도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혀를 내두렀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다음 후보 분에게 연락을 했다. 유명한 작가였다. 그 분도 두 번의 강연에 '100만원'이라는 금액에 난색을 표하셨다. 나는 몇 차례 정성스러운 메일도 보내고, 행사의 취지도 말씀드렸다. 그 분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그대의 열정에 손을 듭니다. 그렇게 합..

머리 띵한 월요일의 풍경

월요일은 직장인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부담이 높아지는 날이다. 변화경영연구소 마음편지를 보내야 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수업이 세 개나 있다. 오전에 마음편지를 쓰고 점심을 먹자마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 마음편지 작성 시간이 길어지거나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탓에 종종 점심을 간단식으로 해결하는 날도 있다. 오후부터 시작된 수업은 밤까지 이어진다. 13:30 발터 벤야민 세미나, 16:00 『계몽의 변증법』 강독회, 그리고 19:30분 초급 라틴어 수업.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세상에는 즐기기 힘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즐기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능숙해지거나 깊어지고 나면, 즐기게 되는 경우도 많으리라. 월요일 수업들은 아직은 즐기지 못하는 대상들이다. 수업을 모두 듣고 난 후면, 나는 ..

강정호의 부상을 바라보며

관련 기사를 읽으니 목구멍이 뜨거워집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안타깝습니다. 강정호 선수의 부상 말입니다. 복귀까지 6~8개월이 걸린다는데, 부디 스프링 캠프때부터는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상을 입힌 상대 선수의 페이스북은 한국 팬들과 일부 미국 팬들의 테러를 당했더군요. 나 역시 속이 상합니다. 매일매일 그의 타석 주요 장면을 관람하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었거든요. 올해 그 기쁨이 물건너 갔기 때문에 속상한 것은 아닙니다. 강정호가 만난 불운이 아픔과 상실을 야기할 터이기에 안타까운 거지요. 신인왕 경쟁도, 포스트 시리즈 출전도 모두 물건너 갔습니다. 제게도 상실의 아픔이 많아서인지 그의 불운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정작 그는 덤덤히 자신에게 부상을 입힌 선수를 두둔하더군요. "코클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