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별일은 없어. 그냥, 슬퍼서.

슬퍼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카페에 잘 앉아 있다가, 동생에게 용돈을 보내고서, 운전 하다 만난 석양에, 울컥 치미는 슬픔 불쑥 쏟아지는 눈물 홀로 가눌 길 없어 전화로 친구를 찾는다. “……” 석아, 석아! 무슨 일 있나? “슬퍼서.” 힘겹게 대답하고서 다시 흐느낀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또한 삶이 한없이 슬픈 까닭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 슬픔에도 익숙해지겠지. 그 날이 너무 멀지 않기를. 억지로 앞당기지도 말기를. #. 친구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6월 이전의 날들이 떠올랐다. 6월엔 정말 최선과 정성을 다했지만, 그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가 온전히 말을 할 수 있었던 그 때, 그럭저럭 함께 다닐 ..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다

#. 7월 5일 토요일 17시 정각, 병원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 친구는 진정제를 맞았다. 금요일부터 꼬박 하루 동안 의식이 깨어 있었던 친구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서부터 고통이 심해졌다. 그럴 때엔 진정제 없이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 친구가 진정제를 맞는다는 것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대신에 사람들과 대면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친구 아내는 최대한 진정제를 늦게 맞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자기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대면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친구는 이제 막 진정제를 맞고 잠들었다. 의식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수씨가 말했다. “미안해요. 5시에 오는 줄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깨어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실로 아쉬웠지만, ..

친구야, 내 마지막 부탁이다

오전에 사무실 정리를 하고, 시간절약을 위해 짜파게티를 끓여먹고서 오후 2시 열차를 탔다. (짜파게티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먹는 별미다.) 열차에서 오늘 친구에게 전할 말을 생각했다. 어제 의식이 돌아왔고, 오늘 면회를 온 이들도 알아본단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셈. (이미 5일 전, 병원 측에서는 이제 의식이 못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었다.) 무슨 말을 하나? 가장 행복했던 추억과 사랑한다는 말은 이미 아산병원에서 했다. 대구의료원에 와서는 고맙다는 말도 했다. (그때 친구는 “내가 더 고맙지”라고 했었다.) 녀석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나? 생각하고 옛일들을 떠올려도, 없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 녀석에게 잘못한 일이 없고, 병을 앓은 동안에는 정성을 기울였다. 최근 2년 동안, 친구는 자신의 불찰이 ..

눈물 바다

눈물 바다 바닷가 벼랑 끝 끼욱끼욱 갈매기 울음 니도 우나 나도 운다 삶의 끝자락에 선 내 친구도 운다 백두산 눈물샘이 그다지도 크더니 사람들 눈물 모여 바다가 되었구나 #. 슬픔이 시가 되었다. 언젠가 친구가 떠나면, 그 바다에 갈 때마다 친구가 생각날 것이다. 그리움과 슬픔이 일상을 불쑥 불쑥 침투할 것이다. 이미 겪어봐서 안다. 사별이란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일상을 어떻게 침투하고 슬픔이 어떻게 나를 감싸는지 안다. 알아도 대책은 없다. 그래서 두렵다. 그렇게 될 날들이.

소소한 일상 들여다보기

1. 롯데마트 입구에 진열된 행사 매대 앞을 지날 때였다. “좋은 행사에 참여하는 거라 저희가 싼 가격에 내어드리는 거예요”라는 말이 들렸다. 약장사 같지 않은 점잖은 목소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진정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정말 몰라서 한 소리다. 말투만으로도 진실과 과장을 잡아채는 감각이 생긴 것인지 혹은 오늘따라 내가 회의적이어서인지. 그게 아니라면, 그가 유달리 들통 날 법한 어조였는지 혹은 좋은 행사와 싼 가격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나는 그가 판매하는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다. 행여 내게 필요한 물품이어다고 해도, 오늘만큼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판단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산물이리라.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거짓된 선전도 어떤 기능을 해낸다..

아직 나는 실감이 안 난다

1. 7시에 눈을 떴다. 숙모는 어젯밤부터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시는 눈치다. 아무래도 아침 식사는 집에서 해야 할 것 같아 둘러가는 동선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갔다. 피곤한 내게는 밥보다 잠이 필요했지만, 숙모의 애정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집에 가서 밥상을 받으니 ‘잘 왔구나’ 싶었다. 나를 위해 몇 가지 반찬을 마련하신 것. 난 숙모가 좋다. (요즘 나답지 않게, 다시 말해 연락을 좀처럼 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이겨내며 매주 연락을 해서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숙모를 생각하면... 효도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고,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올해 안으로 용돈 100만원을 안겨 드리겠다는 바람은 꼭 실천해야겠다. 돈이 전부가 아니지만,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 성경, 마..

피곤과 슬픔이 뒤범벅이 되어

1.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많았다. 밤새 준비하느라 새벽에 1시간 30분만을 자고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얼른 일을 끝내고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친구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지만,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는 친구지만, 그들에겐 타인이다. 어느 정도 배려는 해 주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두 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니 저녁 여섯 시였다. 대구행 7시 열차를 기다리며 기차역에서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사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지만, 요즘엔 어쩔 수 없다.) 안도감도 잠시, 열차 안에서는 ‘마음편지’를 써야 했다. 잠이 몰려왔지만, 퇴고까지 마음을 기울였다. 2.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넋을 잃었다. ..

뜻밖이라고 당황하지 말고

1. 아뿔싸! 여느 때 같으면, 이 시각에 이동할 리가 없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각없이 나섰다가, 정체에 걸리고 말았다. 서울과 양평을 오갈려면 6번 국도 경강로를 거쳐야 한다. 주말 교통량이 많은 도로다. 토요일엔 양평 방면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 특히 하남에서 팔당대교를 건너 경강로에 진입하는 구간의 정체가 심하다. 일요일 오후부터는 서울 방면이 막히기 시작해 저녁 시간이 지나야 뚫린다. 일요일 오후 4시 30분이면 서울 방면 경강로가 한창 막히는 시간대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나, 잠실 사무실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급한 마음에 하루 일정을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미리 출발했거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하고서 좀 늦게 출발했어야 했다. 차를 세워 실시간 도로 검색을 했더니..

병세도 우정도 깊어진 주말

심경은 복잡하고, 마음은 분주했던 어제. 1. 1박 2일로 다녀온 MT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는 긍정적 뉘앙스지만, Good이나 Great의 수준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충분히 좋은 MT 였을 테지만, 2년 교육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MT로서는 미흡했다. 그간의 수고를 서로 격려하고, 교육 수료를 축하하는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 마지막 MT를 빛낼 프로그램을 준비치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해도, 신경써서 정성껏 피날레 행사를 마련했어야 했다. 2. MT에 대해 반성하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20분 만에 다시 나서야 했다. 샤워를 하고 며칠짜리 짐을 챙기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짐을 제대로 챙기긴 했는지 모르겠다. 대구에 다녀올 생각이다. ..

어떤 퇴원은 고통 어린 슬픔이다

오늘 친구가 아산병원을 떠났다. 고향인 대구로 간다. 건강하게 퇴원하여 집으로 가는 것이면 더없이 좋으련만, 녀석은 상황이 악화되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 형의 차를 타고 병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했다. 1층 로비 접수대 앞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멍했다. 지나간 3주 동안의 병원 생활이 스쳐지나갔다. 퇴원하는 과정도 떠올랐다. 친구는 건강을 회복하여 웃으며 걸어 나가는 게 아니라,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녀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착잡함에 두려움과 절망이 버무러진 어떠한 느낌일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휠체어를 밀고 가던 나는 간호대 앞에서 잠시 멈춰야 했다. 친구가 나를 세우더니, 간호사들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간호사들이 밝게 인사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