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정리정돈, 이방인, 갑인공방

1. 연휴가 시작되는 오늘, 날씨가 매우 좋았다. 아뿔사! 나는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계획해 두지 못했다. '오늘은 무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느라 20~30분을 보냈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자신의 약점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라지만, 나는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을 정돈했다. 오후엔 교보문고에 잠시 들렀다가 투썸 플레이스로 가서 (와우팀원에게 보내는) 중요한 메일을 하나 썼다. 시간관리에 대한 신간을 읽었는데 새로운 통찰은 없었다. 새롭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활력이 생겼다. 동기부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살다보면 시들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곤 하니까. 오전 내내 몸을 움직인 것, 점심식사 후라는 사실, 아주 흥미로운 책은 아니라는 점, 세 가지가 적절히 혼합하여 내..

범퍼 복구, 헤이리, 물건 버리기

1. 한 달 보름 전, 내 차의 앞범퍼가 찰과상을 입었다. 높이 20cm, 너비 40cm의 대형 기스다. 게다가 1cm 가량 안쪽으로 움푹 밀려들어갔다. 주차장에서 상처를 발견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이번엔 또 누구란 말인가! (음주 운전자가 주차된 내 차를 들이박아 범퍼를 죄다 교체한 게 아직 석달이 채 안 됐다.) 이번엔 쪽지 하나 남기지 않았다. 으악, 뺑소니라니! 보안팀에 연락했더니 보안팀장이 나를 알아본다.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단지 내에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나나요?" 놀랍게도 빈도가 잦았다. "다소 큰 단지이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일어나긴 하는데, 같은 입주자가 얼마 안 된 기간에 두번이나 당한 적은 저도 처음이네요." 그래, 드물어야지.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그가 너무 불쌍하..

누가 '동해병기'를 이끌었나?

1.4월 29일에 방영된 "누가 '동해병기'를 이끌었나?"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덕분에 휴일 밤의 내 가슴이 두근거렸고, 세월호 참사의 비통함을 조금은 달래어 잠들 수 있었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한 시비를 가리는 일이 아닌) 공익적 차원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애쓰는 미주 교포들의 노력! 그것은 애국심이고, 도전이었고, 용기였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의식 있는 저항이었다. 외국인들의 3/4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바다를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 부른다. 세계 지도의 90% 이상이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이제 일본의 초등학생은 독토를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무단 점거하고 있다고 배운다. 일본은 지금도 독토와 일본해에 관한 영유권 확보를 위해 국제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이곳에 오신 블로거 분들..

사소한 습관은 없다!

1.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을 때였다. 샤워를 하겠다던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 나왔다.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틀어 놓았기에, 물음을 던졌다. "물은 왜 틀어놨어?" "그러면 따뜻해지거든." 공기가 더워지면 옷을 벗어도 춥지 않다는 이유였다. 친구에겐 절수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3~4분 동안 뜨거운 물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나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추운 날, 내게 일어난 일이다. 샤워를 하려는데, 화장실 공기가 서늘하여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서 샤워 문을 닫고 나왔던 것! 거실에 나와서야 무얼 했는지 인식하며 기겁했다. 얼른 들어가 물을 끄고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맞으며..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은 어디에?

세월호 사건 이후, 줄곧 TV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일주일 내내 그리하다가, 궁금함과 의혹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얻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첫 반응은 허탈감이었다. 공중파 뉴스에서 다룬 내용과 현장의 목소리가 상당 부분 달랐기 때문이다. 블로거 방문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세 개의 동영상이 있다. 첫째로는, 흥분하셨지만(그럴 수 밖에 없으신 상황이다) 사고 당일과 이튿날 현장의 구조 실정을 알려주는 어느 학부모의 영상이다. (어제 포스팅에도 공개했던 영상이다.) 두번째 영상은 29일(화)에 공개된 자료다. 27일(일) JTBC 뉴스에서는 고 박수현 군 아버지가 보내온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손석희 앵커의 태도와 멘트는 적절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편집본을 내보냈었다. 시청하면서도 왜 ..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

나는 해양이나 선박 전문가도 아니고, 평소에 정부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열흘이 넘는 동안, 틈만 나면 세월호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본 일개 국민입니다. 뉴스를 보며 들었던 생각 중 일부를 적었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런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세월호의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입니다. 1.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니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세월호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JTBC에서는 드라마 가 방영 중이었다. 다른 방송 채널로 돌렸지만 세월호 소식을 전하는 곳은 없었다. MBC에서는 , EBS에서는 라는 화해 상담 프로그램, TV 조선에서는 을 내보내고 있었다. 먹먹했다. 세월호 참사도 이렇게 서서히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구나, 싶었다. 물론..

어느 유쾌한 승무원의 눈물

"지금 배가 많이 기울었다. 아이를 구하러 가야 한다.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 세월호 승무원 양대홍 사무장이 아내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내용이다. 그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직감한 듯 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을 구하기 전에는 배를 버릴 생각이 없다고 결심이라도 하는 듯 하다. 양대홍 사무장의 생존 당시 방송 출연 영상을 보고 나는 펑펑 울었다. 세월호에는 또 한 명의 영웅이 있었다. "승무원은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며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배에 남았던 박지영 양! 미국의 한 언론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버릇없음이 아니라 모범없음이다

일요일 저녁, 중요한 일정을 마친 터라 피곤한 몸으로 귀가했습니다. TV를 켜고 세월호 소식부터 챙겼습니다. 뉴스 방송을 찾아 채널을 돌리는 동안, 내 안의 이성이 말합니다. '벌써 열흘하고도 삼일이나 지났으니 생존자는 없을거야.' 이성의 목소리에 뒤이어 희망도 말합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났을지도 몰라.' 체념합니다. 구조자 수가 174명 그대로입니다. 사고 이후 내내 (정부의 집계 오류를 제외하면) 구조자 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고 당일을 제외하면 사망자만 늘었을 뿐입니다. 참사 때마다 드러났던 관료주의와 대충주의 그리고 무책임한 리더십도 그대로입니다. 이번엔 탐욕적인 기업인의 부정부패까지 결들어졌고요. 오늘 JTBC 9시 뉴스는 팽목항 현장에서 진행했습니다. 손석희 앵커 뒤로 보이는 컴컴한 팽목항..

어느 평범한 날의 7가지 일상

1. 미뤄왔던 몇 가지의 일을 처리했다. 처리한 일은 빙산의 일각이고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았다. 일감 바구니의 넘침은 최근 일주일 동안,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탓도 있지만, 평소의 게으름과 미루는 습관 탓이 더 크다. 이번 주 내내 박차를 가해야겠다. 2. 아픈 친구에게 전화했다. 목소리에서 아픔이 묻어났다. "목소리가 안 좋네, 아프냐?"가 나의 첫 인사였고, "잘 쉬셔" 가 끝인사였다. 통화 내용은 뻔했다. 기력이 없어서 누워 있다는 얘기, 언제가 특히 아팠다는 얘기 등등. 또 하나의 뻔한 사실 : 내가 해 줄 말이 거의 없다는 것. 3. 헤어컷 할 시기를 또 미루고 있다. 구렛나루 머리칼이 엄지손가락 길이가 될 정도다. 이번엔 짧게 잘라볼 생각이다. 진행 중인 탈..

타이타닉호 선장은 정말 영웅인가?

5일 동안 날마다, 슬프고 답답한 마음으로 세월호 침몰 현장 속보를 접했습니다. 뉴스 시청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존자들의 구조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엿새째인 오늘까지 무소식입니다. 침통한 감정에 잠겼다가 가끔 이런저런 생각도 했습니다. 3가지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1.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뱃사람의 자랑스런 전통을 져버린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 뉴욕타임스는 그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언론은 일제히 이 소식을 전하며 영웅적 리더십을 보인 '스미스 선장'을 덧붙여 소개했다. 1912년 타이타닉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침몰한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 당시 선장과 선원들은 어린이들과 여성을 먼저 탈출시켰다. (남성 생존율이 20%에 불과했지만, 여성 생존율은 74%에 달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