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그리운 유머

#. 내 친구 박상욱은 배우 현빈을 좋아했다. 어느 날, 일곱 살배기 큰 딸에게 말했다. “아빤 이제 현빈 할란다.” “응? 현빈이 누구야?” “진짜 멋있는 배우, 현빈이라고 있어.” “그럼, 아빠는 박현빈이야?” 딸아이가 성을 붙일 줄이야! 현빈과 박현빈을 모르는 딸 앞에서, 친구는 한참을 웃었다. 얘기를 전해들은 나도 폭소를 터트렸고. #. 그 날, 나는 소개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와 통화했다. “어땠냐?” “응. 말은 조금 통했는데 전반적으로 별로였어. 다시 만나고 싶진 않네. 외모가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니까 됐고, 다른 점은?” 나는 웃음보가 터졌다. 밤이 깊어가는 골목길에서, 매우 유쾌하게 웃었다. 녀석의 유모는 종종 내 하루를 위무했다. #. ..

친구 생각에 잠 깨어

불면(不眠) 친구 생각에 잠 깨어 꿈이냐 생시냐 따져 묻고 사별이 행여 꿈이 아닐까 희망하다 슬퍼지고 새벽 세 시 눈을 뜬 게 일주일 새 벌써 세 번 오늘 꿈엔 생각 말고 친구 한 번 만났으면. #. 거짓말처럼, 일주일 동안 세 번째로, 새벽 3시 정각에 잠을 깼다. 친구 ‘생각’을 하다가 깼다. 아마도 꿈이겠지만, 나는 ‘생각’인 것만 같다. 매우 사실적이라, 몽중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꿈 속 등장인물이 나 뿐이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나 홀로 주인공이 되어 친구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다. ‘이건 꿈에서 깬 게 아니다. 생각하다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모든 현실이 꿈은 아닐까?’ 잠시 현실과 꿈을 가려내기 위해 며칠을 되돌아보았다. 이내 현실을 인식..

휴식 같은 친구

김민우 내 좋은 여자 친구는 가끔씩 나를 보며 얘길 해 달라 졸라대고는 하지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며 말해 달라지 그럴 땐 난 가만히 혼자서 웃고 있다가 너의 얼굴 떠올라 또 한 번 웃지 언젠지 난 어둔 밤길을 달려 불이 꺼진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는 들어가 네 옆에 그냥 누워만 있었지 아무 말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어 한참 후에 일어나 너에게 얘길 했었지 너의 얼굴을 보면 편해진다고 나의 취한 두 눈은 기쁘게 웃고 있었지 그런 나를 보면서 너도 웃었지 너는 언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준 친구였고 또 괴로웠을 때면 나에게 해답을 보여줬어 나 한 번도 말은 안 했지만 너 혹시 알고 있니 너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걸 * 들어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zG0..

친구가 세상을 떠난다는 건

독백 친구야, 너를 추억하며 눈물짓고 슬픔을 달래려 시를 짓는다. 네가 떠난 후에 쓴 글들과 너를 그리워하는 시들이, 어제는 나를 위무했는데... 오늘은 허망하게 느껴진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네가 읽지도 못하는데... 친구야, 마음속엔 여전히 네가 존재하지만, 그 역시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 홀로 묻고 대답할 뿐인데... 아!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눈을 보며 나누던 대화가 끝나고 독백이 시작되는 것이로구나. #. “네 딸들에게 남길 동영상을 하나 찍자.” 생전의 친구에게 부탁했던 말이다. 오늘에야 깨달았다. 내게도 그러한 동영상이 필요함을. 왜 그때 나는, “친구야, 네가 그리워질 때마다 볼 수 있는 동영상 하나를 찍자”고 부탁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22년 전에 돌아가..

별일은 없어. 그냥, 슬퍼서.

슬퍼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카페에 잘 앉아 있다가, 동생에게 용돈을 보내고서, 운전 하다 만난 석양에, 울컥 치미는 슬픔 불쑥 쏟아지는 눈물 홀로 가눌 길 없어 전화로 친구를 찾는다. “……” 석아, 석아! 무슨 일 있나? “슬퍼서.” 힘겹게 대답하고서 다시 흐느낀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또한 삶이 한없이 슬픈 까닭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 슬픔에도 익숙해지겠지. 그 날이 너무 멀지 않기를. 억지로 앞당기지도 말기를. #. 친구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6월 이전의 날들이 떠올랐다. 6월엔 정말 최선과 정성을 다했지만, 그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가 온전히 말을 할 수 있었던 그 때, 그럭저럭 함께 다닐 ..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다

#. 7월 5일 토요일 17시 정각, 병원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 친구는 진정제를 맞았다. 금요일부터 꼬박 하루 동안 의식이 깨어 있었던 친구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서부터 고통이 심해졌다. 그럴 때엔 진정제 없이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 친구가 진정제를 맞는다는 것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대신에 사람들과 대면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친구 아내는 최대한 진정제를 늦게 맞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자기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대면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친구는 이제 막 진정제를 맞고 잠들었다. 의식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수씨가 말했다. “미안해요. 5시에 오는 줄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깨어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실로 아쉬웠지만, ..

아산병원 주요 면회일지

6월 9일(월) 비보(悲報)는 불청객처럼 찾아든다. 석촌호수 어느 카페에서 와우팀원과의 미팅 중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 아내였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길어야 두 달! 그녀가 흐느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눈앞에서 친구와 함께 보냈던 25년의 주요 장면들로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주변을 밝히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나만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세상엔, 할 말을 잃은 한 남자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병원에 갔다. 친구 아내는 의사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녀는 이라고 쓰인 간호 차트도 보았단다. CPR은 심폐소생술을 뜻한다. 이젠 위급해도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좀 더 연장하는 것이 환자의 고통을 더할 뿐 더 이상 의미가 없단다. ‘아! 올 것..

친구야, 내 마지막 부탁이다

오전에 사무실 정리를 하고, 시간절약을 위해 짜파게티를 끓여먹고서 오후 2시 열차를 탔다. (짜파게티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먹는 별미다.) 열차에서 오늘 친구에게 전할 말을 생각했다. 어제 의식이 돌아왔고, 오늘 면회를 온 이들도 알아본단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셈. (이미 5일 전, 병원 측에서는 이제 의식이 못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었다.) 무슨 말을 하나? 가장 행복했던 추억과 사랑한다는 말은 이미 아산병원에서 했다. 대구의료원에 와서는 고맙다는 말도 했다. (그때 친구는 “내가 더 고맙지”라고 했었다.) 녀석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나? 생각하고 옛일들을 떠올려도, 없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 녀석에게 잘못한 일이 없고, 병을 앓은 동안에는 정성을 기울였다. 최근 2년 동안, 친구는 자신의 불찰이 ..

눈물 바다

눈물 바다 바닷가 벼랑 끝 끼욱끼욱 갈매기 울음 니도 우나 나도 운다 삶의 끝자락에 선 내 친구도 운다 백두산 눈물샘이 그다지도 크더니 사람들 눈물 모여 바다가 되었구나 #. 슬픔이 시가 되었다. 언젠가 친구가 떠나면, 그 바다에 갈 때마다 친구가 생각날 것이다. 그리움과 슬픔이 일상을 불쑥 불쑥 침투할 것이다. 이미 겪어봐서 안다. 사별이란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일상을 어떻게 침투하고 슬픔이 어떻게 나를 감싸는지 안다. 알아도 대책은 없다. 그래서 두렵다. 그렇게 될 날들이.

면회에 관하여

몇 번이나 아산병원을 다녀왔을까? 얼추 계산해도 60~70회다. 한번 면회에 길게는 대여섯 시간 이상 있기도 했으니, 참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셈이다. 배우고 느낀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며 사는 이들에겐 체험하는 시간 자체가 선생이니까. #. 면회 목적도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위로파)과 체면 때문에 발걸음 하는 사람들(체면파). 위로파들은 다시 안절부절형와 실속형으로 나눠진다. 안절부절형은 무언가 돕고 싶은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느껴진다. 실속형은 도움을 주기 위해 미리 조사하고 준비하여 환자나 보호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 체면파, 다시 말해 체면을 위해 병원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