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집안일 3종 세트와 맞바꾼 것

“올해 안으로 독립하는 게 내 목표야.” 그녀가 말했다. 말은 또렷했지만 무언가를 실행한 눈치는 아니었다. 언제까지 부모님 댁에서 분가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본가와의 거리나 얼마나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지, 살려는 동네의 매물은 잘 나오는지, 요즘 시세는 얼마 쯤인지 등이 나는 궁금했다. 느긋하게 하나씩 물었다. 질문이나 생각은 속사포 같이 쏘아댈지라라도, 대화는 테니스의 긴 랠리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니까. 그녀는 내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음을 안다. “요즘 월세는 얼마나 해?”“동네마다 다르지. 어디에 살고 싶은데?”자신의 물음이 엉성하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이내 말을 받았다.“아직 그걸 결정 못했어.”“얼만큼 떨어져 살고 싶은 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네. 아예 가깝든지 아니면 좀 멀리..

연신 둘러보고 거듭 회상하고

벌써 한달 전의 일이다.  잠실 사무실을 동교동 삼거리로 옮겼다. 1층에 카페 꼼마를 품은 오피스텔 건물이다. 꼼마는 평범한 카페가 아니다. 문학동네에서 운영해서 책이 지천으로 깔렸고(그리 심한 과장은 아니다), 높은 천고까지 책으로 채워진 벽면이 예뻐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출현할 만큼 매혹적인 공간이다. 언제였을까. 홍대에서 신촌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본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엔 저기에서 살아야지!' 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인연이 됐다. 이사 전, 동네 탐방을 왔다가 카페 꼼마의 존재를 발견하고선 게임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이사'라는 삶의 골칫거리 게임 하나가 이리 수월하게 끝나다니! (돌이켜보니 끝은 아니었다. 결정도 골치 아프지만, 집을 싸고 옮기고 푸는 일도 만만찮았으니까...

피곤함, 인간관계 & 프루스트

1. 자주 피곤함을 느낀다. 행복을 요리하는 중이라면, 최고의 재료는 '건강'일 것이다. (재료가 있을 때엔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먹거리에 늘 신경 쓰는 편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아니, 문제는 없을지도! 체력이 부치는 건, 여름을 나는 중이거나 내가 5년 전보다 나이를 먹은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현상을 인지했으니,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삼계탕이라도 먹을까 보다. 피곤함의 증거 : 잠들기 전 하던 잠깐의 운동도 거르게 된다, 낮잠 시간이 길어졌다. 나름의 해결책 : 주 1회 보양식 먹기, 8월 동안 칼로리 섭취 늘리기, (실험삼아) 운동량도 늘리기. 2. '인간관계 너비를 늘리고, 깊이를 더하자.' 요즘의 화두다. 올 한 해 새롭게 만난 사람이 있나, 하고..

인간적이고 행복한 그리고...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읽다보니 종종 그가 떠올랐다. 서민들과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대통령 또는 가장 다양한 포즈를 취한 대통령을 꼽는다면 그가 1등이지 않을까? 어젯밤 그의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1시간은 족히 보는 동안, 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의롭고 따뜻하게,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멀리서라도 뵌 적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잠깐 뒷모습이라도 뵙고 싶다. 저토록 인간적인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너무나 인간적인 대통령] http://www.youtube.com/watch?v=UGZ74tUrR0w 내 감성 탓인지, 그리움 탓인지, 밤이어서인지... 그도 그립다. 근사한 목소리, 그윽한 눈빛, 행복한 미소를 3중주로 수업을 진행하던 모습도 떠올랐고, 함께 유럽으로, 뉴질랜드로..

친구는 내게 도움 되어야 하나

우정을 다룬 고대 그리스 로마의 중요한 저작은 세 권이다. 플라톤의 『뤼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키케로의 『우정에 대하여』. 그레일링은 키케로의 저작을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해 다른 사상가들의 저술에 기댄 면이 있지만, 우정을 폭넓게 조망한다는 점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고전적 논의”라고 평했다. 『우정에 대하여』의 화자는 가이우스 라일리우스다. 키케로에게 우정을 가르쳐 준 인물이다. “인생에서 우정을 앗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태양을 앗아가는 꼴 아닌가.” 라일리우스의 말이다. 그는 아타락시아(마음의 평화로 평온한 삶)보다 우정을 우선시했다. 권력, 쾌락, 부와 명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키케로는 충정을 우정의 버팀목이라 생각했다. 키케로에 앞서, 플라톤은 우정이 유용성을 토대로 ..

근로는 미덕이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것이다. (p.18)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 다수의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일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 사회는 기술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p.21)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동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고, 축구 시합을 관전하고, 라디오를 듣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적극적인 에너지들이 모조리 일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그리움의 크기

그리움을 만나는 곳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내었는지 얼마나 자주 서로에게 전화했는지 그 빈도가 그리움의 크기다. 그와 함께 걸었던 길 그와 함께 차를 마셨던 카페 그와 맛나게 식사했던 음식점 그 공간이 그리움의 탄생지다. 자주 전화를 걸었던 장소도 있고 자주 전화했던 시간대도 있다. 살다가 그 시간, 그 공간을 지나칠 때 나는 그리움과 만난다. 그리움을 만나는 곳은 많다, 슬프다. 2014년 7월이 슬픈 건, 아직은 무심히 지나치지 못해서다. 오늘 잠실역에 갔더니, 그가 떠올랐다. #. 1기 유니컨 수업 장소로 가려고, 석촌 호숫가를 걷다가 느낌 감상이다. 수업 후, 올 봄에 친구와 걸었던 석촌동 골목길을 찾아 갔다. ‘우리가 왜 그곳에 갔지?’ 길을 걸어도 기억나지 않았다...

여섯 빼기 하나는 다섯

여섯 빼기 하나는 다섯 인스펙션! ‘검사’라는 뜻의 영어. 초등학교 때 만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결성된 친구들 모임 이름이다. 1994년 여름, 강릉 옥계 계곡으로 피서 갔다가, 우리 이름 하나 짓자 하여 만든 것. 그때 가져갔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밑면에 흰색 딱지가 붙어 있었다. 검사필, INSPECTION 등의 단어가 보였고, 우리는 영어를 선택했다. 명명의 이유가 유치한데, 그것으로도 여섯은 한껏 웃었다. 대학교 때까지 우리는 숱하게 만났다. 술값 저렴한 민속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였고, 노래방에서 러닝셔츠를 찢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여름이면 비진도로, 거제도로, 남해로, 김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께 빌린 승용차 하나에 여섯 명이 끼어 탄 적도 있었다. 바짝 붙어 앉았던 만큼이나 우리들의 ..

슬픈 귀갓길

슬픈 귀갓길 새벽 두 시 반 늦은 귀갓길 또, 친구 생각에 깨버린 술기운 밤하늘 별빛마냥 그리움 초롱초롱 불야성 거리 따라 서글픈 터벅터벅 홍대 앞 밤거리엔 휘청대는 젊음들 저들 속에 뒤섞였던 젊은 날의 추억들 추억마다 함께했던 그 친구는 저 세상에 추억 나눌 사람 없어 내 마음도 저 세상에 #. 연일 술이다. 어젯밤엔 오랜만에 만난 연구원들과의 술자리였다. 대화를 듣던 중에도 불쑥 불쑥 친구 생각이 찾아오더니, 헤어지고서 집으로 가는 내내 친구가 그리웠다. 문득 데미안의 가 떠올랐다. 친구가 좋아했던 노래, 우리 인스펙션 모두가 자주 불렀던 노래!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술에서 깼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www.youtube.com/watch?v=OwZUvIP2LZI #. 문득 자살충동을 느꼈다. ..

오늘은 한(恨)이었다

극한의 슬픔은 변덕이 심하다.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변모하여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어떤 날엔 슬프더니, 다른 날엔 고통스럽다. 또 다른 날엔 억울하거나 두렵다. 오늘의 주된 정서는 ‘한(恨)’이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풀리지 못하고 응어리져 맺힌 마음”이 한(恨)이다. 스스로를 달랜다. “무엇이 그리 원통하니?” #. 친구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친구가 진료차 서울에 올 때마다 무조건 만난다는 생각은 잘 지켰지만, 녀석이 대구에서 지낼 때엔 많이 못 갔다. 우울하다고 했을 때, 심심하다고 했을 때 자주 만났어야 했는데... 어제 평택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운전하다가 이렇게 울부짖었다. “상욱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상욱아, 미안. 그 때 내가 내려갔으면 함께 시간도 보내고 이야기도 나누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