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책의 초고를 마무리한 날

1. 8월 31일까지 『인문주의를 권함』(가제) 초고를 마무리하는 게 목표였다. 30, 31일이 주말이니 무리없이 달성하리라 생각했다. 이틀 동안 두 꼭지의 글을 쓰면 마무리되었으니까. 인생은 종종 예측불허로 전개된다. 주말 내내 시들하게 보냈다. 이틀 연속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피곤했다. 토요일엔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로 보냈고, 일요일도 비슷했다. 몸을 일으켜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고 싶었다. 뿌듯할 테지만 욕심이리라 생각했다. 욕심을 부려서 풀리는 게 인생이라면, 나는 일어나 글을 썼을 것이다. 욕심쟁이가 되는 것은 쉬우니까. 길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과감하게 쉬었다.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틀이 지나 오늘 아침 10시에 ..

그림 앞에서 물끄러미

[미술 감상의 첫걸음] 그림 앞에서 물끄러미 절친한 친구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른일곱이 되던 해, 그는 여러 점의 그림을 구입했다. 인사동 갤러리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에 값을 치르거나, 밝은 채색감이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며 고흐의 대형 유화를 침실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와 나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닌 단짝이다. 서로의 성격과 취향을 잘 안다. 그림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그는 갑자기 무엇 때문에 돈과 시간을 그림에 투자한 걸까? 죽음이 다가오면 오감이 민감해진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작은 소리도 민감하게 잡아내고 짙어진 감수성으로 세상을 세심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친구를 통해 알았다. 친구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췌장암..

이런 사람 어디 없을까?

오늘 아침, 샤워하다 떠오른 생각들. 1. 이런 사람 어디 없을까? 자신에게 시간을 주기만 한다면, 뚝딱 자기 작품, 크고 작은 성취,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이들. (다시 말해 자기 세계를 만드는 데 오직 시간만이 부족한 이들) 그렇게 타인의 조력 없이도 삶을 잘 살아내면서도 나에게 듬뿍 시간과 애정을 주는 이들, 어디 없을까? 그런 사람들은 시간을 자신의 일과 소중한 누군가에게만 준다. 2.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주관적인 세계 속에서 사는지 모른다. 생각하는 패턴이 늘 비슷하고 비슷한 사람들만을 만나면서 깊은 자기 이해에 이르기란, 힘들다. 청담동 주민들은 그들끼리 대화하면서 옆집 부유함과 비교하며 자신은 서민적이라 생각하고 자기계발 강사들은 자기들끼리 만나면서 자기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 미숙하다..

나는 다시 이상주의자!

서른 일곱, 나는 아직 젊다. '아직'마저 빼 버리자. 마치 젊음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 아닌가. 나는 젊다. 언제까지나 젊고 싶다.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헤집고 다니고, 시도해보지 않은 일들에 도전하면서 살다보면, 나이는 들어도 여전히 나는 청춘일 것이다. 늘 새로운 방식의 삶을 상상하자. 어른이 되어서도 꿈을 추구하는 삶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느끼고(!) 체험한다(!). 몸은 이미, 도전하려는 노력보다는 안주의 편안함을 알아버렸다. "이 나이 되어 빡빡하게 살고 싶지 않다"던 어느 중년의 말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모하지 않고 현실적이 된다는 건,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지혜로 간주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이십 대 청춘은 자기만 추스르면 되지만, 누..

고맙다, 광화문!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일상 (2014년 8월) 8월 13일 밤, 수업을 마치고, 함께한 분들과 함께 봉구비어 종로점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처음 가본 봉구비어는 시끄러운 분위기였지만 맥주와 안주가 저렴하고 맛났다. 밤 11시가 넘어 우리는 귀가하기 위해 종각역으로 향했다. 종로 밤거리 어디에선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가 들렸다. 양해를 구하고 일행과 헤어진 나는, 노래의 근원지 앞에 서서 연달아 세곡의 노래를 들었다. 8090 노래들...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녀석도 떠올랐다. 그리운 친구... 8월 18일 오후, 광화문점 교보문고에 들렀다. 이런저런 책을 살피던 중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과 『트루 포틀랜드』. 나는 사진 속의 저 책을 보자마자, 창조적..

따뜻하게 보낸 어느 주말

주말을 고향에서 보냈다. 친구의 49재를 지냈고 가족들과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눴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섬으로 시작된 주말 일정은, 일요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만남과 대화로 채워진 주말,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찬 주말이었다. 1. 토요일이 친구의 49재였다. 대구 시외의 어느 절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였다. 산 자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죽은 이와의 이별이 슬펐다. 49개가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건 아니다. 눈물은 낯선 의식에서보다는 익숙한 일상에서 더욱 자주 나는 법. 참석한 이들은 스님과 함께 기도문을 읽기도 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 안위 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도로 도로 ..

일상경영을 위한 3가지 원칙

1. 버려야 하는 물건들을 안고 사는 것은 게으름이다. 제때 정리정돈을 하지 않거나, 버리기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물건 버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일에도 게으르다. 물건 정리정돈과 삶의 성찰 사이에는 비례관계는 아닐지라도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그렇듯이 공간 또한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보다 크고 폭넓게. 그러니 버릴 물건을 안고 사는 건 어리석음이다. 중요한 영향력을 무시하는 어리석음. 사람들은 어리석다는 말에 발끈하지만, 나는 그런 반응이 놀랍다. 그럼 자기가 어리석지 않다는 말인가. 누구나 어리석음과 지혜를 모두 가졌음을 감안하면, 놀랄 필요까지야. 누구나 제한적인 지식과 치우친 ..

의지할 지혜, 의욕상실 & 우정들

1.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문득 기억났다. 어제 교보문고에서 책 한 권을 지나치듯 펼쳤었고, 거기에 스치듯 보았던 구절이다. 내용은 가물가물. 화보집에 가까울 만큼 사진이 많은 책이었는데, 제목도 가물가물. 교황 관련서가 봇물처럼 쏟아졌으니 머잖아 반값 할인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구입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도서 구매욕을 자제하지 않으면 몇달 새 아니 몇 주 만에라도 나는 거덜나고 말 것이다. 교황의 책을 뒤적였던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붙잡고 살아갈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물했던 말씀이 기억났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따르지만 일반 사람들은 양심을 따릅니다" 그 분의 관용이 느껴진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의로운 삶..

나의 초상 (8)

1. 외눈박이 거인족 퀴클롭스의 나라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일행은 폴리페모스라는 거인의 동굴에 갇힌다.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발휘해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 부상을 입히고 동굴을 탈출한다. 배를 타고 떠나면서 오디세우스는 눈을 잃은 거인을 향해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왜 눈이 멀게 되었는지 누군가가 묻거든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카에 살고 있는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하시오." '도시의 파괴자'라는 말을 오디세우스는 좋아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를 파괴한 것이야말로 그의 삶의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파괴자'야말로 그를 그답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를 제대로 소개해 주는 말은 무엇일까? - 나의 사명은 실용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하고 ..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후배가 아내의 산후 우울증에 대한 고민을 털어왔다. 그와 아내 모두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셋이서 만났다. 그녀는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루 24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나는 이것저것 물으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속내를 털어놓음으로 또는 누군가의 경청으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걸까. 그녀는 다른 분위기로 말했다. "그래도 좋을 때도 많아요." 힘들다고 말하다 보니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좋을 때가 많은 게 사실이라 꺼낸 말인지도. 앞으로도 힘든 게 있으면 더욱 털어놓기를 바라는 마음, 털어놓고서 괜히 후회스러우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적절하기를 바라며. "네가 힘들다고 말해도 그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셔.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