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세월호 참사, 침통한 주말

1. 눈만 뜨면 TV를 켠다. 밤새 한 명이라도 구조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나흘 연속으로 실망뿐이다. ‘1초가 시급하다’는 뉴스 자막의 말에 화가 치민다. 1초? 1초라고! 벌써 72시간도 더 지났는데 1초라니, 현실을 모르는 뜬구름 같은 말이라 허망하다.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소식에 울음이 차오르더니 눈물이 뺨을 흐른다. “선실이 더 안전합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아, 빌어먹을 안내방송!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참담한 안내를 했단 말인가. 아이히만처럼 끔찍이도 순응적인 선원의 무지 탓일까. 상황파악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선장의 무능한 판단력 때문일까. 공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인 리더십의 소산일까. 답답하다, 정말. 2. 오늘은 지인들과 와인박람회에 갔다가 저녁에는 와인 시음회를 하려던..

무엇이 암을 이겨내게 하는 걸까?

1. 어제는 친구가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몸이 아파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기차를 놓친 친구를 20분 정도 기다렸다. 홀로 병원을 둘러보았다. 낯설어서가 아니다. (그간 많이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이른 아침과 야간 시간을 제외하면, 아산병원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곳엔 환자와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우리는 자신이 머무는 곳만 인식하며 산다. 회사에 있으면 평일날에도 롯데월드와 남이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지를 모른다. 나도 유럽여행을 하면서야 배낭여행자들이 참으로 많음을 깨달았다. 당연했다. 유럽 배낭여행자들을 한국에서는 만날 순 없을 테니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의 실체가 아니다. 저마다의 인식..

어느 새벽에 맞은 '삶의 비평'

1.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이를 따지며 찾아오는 건 아닐 것이다. 아직은 젊은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맞이한다. (내 마음이 강인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한 해가 저물어갈 때나 여자 친구랑 심하게 다퉜을 때가 그렇다. 이건 예전의 일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영화의 제목은 . 콩가루 집안의 지극히 불행한 모습을 담은 영화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우리 집안이 영화 속의 가족과 비슷해서가 아니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 공기 좋은 산 속에서 심호흡을 하여 산소를 폐 속으로 흠뻑 빨아들인 것처럼, 영화의 메시지가 내 몸 속 깊숙이 들어찬 느낌이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사람이 좋으면서 혼자이고 싶다

창경궁 돈화문 건너편에는 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 값이 다소 비싼데도 정갈하고 예쁘게 나오는 차림을 보고서 매료된 곳입니다. 생맥주에 곁들여 마른 안주를 차려놓은 모양새, 와인에 과일을 절여 만든 음료의 예쁜 빛깔 등 주문했던 모든 메뉴가 제 값에 걸맞는 위용을 뽐내었습니다. 지난 주, '서양문학사'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과 함께 에 갔습니다. '세계사' 수업도 들으셨던 분들이고, 와우도 있어서 제겐 무척 편안한 자리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지금 여기에 혼자 있으면 참 좋겠다.' 말없이 가만히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신뢰해 주는 분들이라 그윽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요.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였습니..

봄바람과 함께한 문학 수업

1. GLA 강좌를 수강하는 이들과 함께 봄 나들이를 떠났다. 봄꽃도 구경하고 수업도 진행하는 세나절 동안의 여행이었다. 출발지는 안국역 1번 출구 앞 스타벅스. 우리는 다섯 동네(순서대로 안국동, 소격동, 삼청동, 가회동, 계동까지의 동네)를 거닐었다. 윤보선길을 따라 정독도서관까지(삼청동), 정독도서관 맞은 편에 있는 아트선재(소격동), 정독도서관 좌측 골목길에서 삼청동 카페 골목 가는 길(삼청동), 삼청동 주민센터로 맞은 편 골목 사이로 난 오르막을 올라 북촌 한옥마을(가회동)을 걸어다녔다. 마무리는 서울중앙고등학교 정문 앞 계동길(계동). 2. 인사동, 삼청동, 계동에는 볼거리와 맛집이 많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명소다. 추천하는 맛집을 꼽아 두자면, 백년이 넘는 전통의 '이문설렁탕'(인사동네거..

유쾌한 아침, 독서계획, 변경연 여행

1. 기분 좋은 아침이다. 무엇 때문일까.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것, 간단하게나마 보일러실을 정돈한 것 그리고 와우들의 GLA (인문 강좌) 독서 과제를 읽은 것이 유쾌한 아침을 만들었다.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룬 덕분이지만, 특히나 수강생의 독서 과제가 준 즐거움이 컸다. 기한을 놓친 이들도 있지만, 제출한 과제들이 충실했다. 학생들의 성실한 학습 태도는 선생의 기쁨이다. 4월의 과제 주제는 르네상스 문학이다. 수강생들은 4주 동안 셰익스피어의 희곡 3편과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야 한다. 지난 주엔 『햄릿』을 읽었다. 저마다의 독서 리뷰를 읽으며 즐거웠던 것은 질문이 살아있는 리뷰가 많았고 특히나 한 분은 수업 내용 중 특정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회의하는 태도야말로 인..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1. 낚시질 마종기 낚시질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中年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2. 시인은 찌에 지렁이를 끼우며 그 찌를 집어삼킬 물고기를 생각하며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물었으리라. 당신이 시인의 곁에 있었더라면, 그가 직접 묻진 않더라도 (수줍은 일이니) 당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3. "먼저 자신에게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 이야기하십시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 에픽테토스 세네카와..

자유로운 삶에 관한 7가지 단상

1. 나는 정신적인 자유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진정한 자유는 드문 가치다. 한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어놓은 마음의 한계를 이겨내야 할 뿐만 아니라, 환경과 상황의 구속에서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2.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자유를 구현할 힘을 깨닫게 하고 강화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사람에게 맞서 삶의 자유를 늘려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로마의 노예로 태어나 자유민이 되었던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 16세기 종교전쟁의 광풍 속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지켜냈던 몽테뉴. 3.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이 슬로건으로 삼을 만한 문구다. "아무것도 바라..

가슴이 섬뜩했던 날의 깨달음

"KU 시네마파크에서 롯데시네마 거리가 가깝나요?" 친하게 지내는 지인 K로부터 카톡이 왔다. KU 시네마파크에선 이, 롯데시네마에선 이 상영되던 날이었다. 며칠 전에 추천드렸던 영화들이다. 상영관까지 알려 드렸더니, 직접 관람하러 가시려나 싶었다. "두 편 다 보고 싶어서 시간을 확인했는데, 가능하겠더라고요." 그 분의 말에, 두 상영관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려 드렸다. (하나는 건국대 안에, 하나는 건대 바로 앞에 위한 영화관들이다.) 이틀이 지나, 어제 K를 만났다. 늘 만나는 J와 함께 셋이서 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K에게 물었다. "영화 보셨어요?" 웃으면서 말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어제도 J를 만났어요. 오랫만에 명동을 구경하고 집에 들어와 집안 정리를 좀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

어느 봄날의 오후

나는 뜻밖의 개인 시간을 사랑한다. 어느 봄날, 오후 일정 하나가 갑작스럽게 취소되어 내게 덩어리 시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내게 불쑥 5만원을 쥐어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약속한 이와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지만, 뜻밖의 자유 시간을 누리는 맛은 무척 달콤하다. 내 마음엔 두 개의 방이 존재한다. 아쉬움은 이곳, 설렘은 저곳, 이렇게 서로 다른 감정을 담아두기에 좋다. 하나의 병 속에 든 물과 기름처럼, 마음 속 두 감정을 모두 느끼면서도, 서로 다른 방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 하나다. 여느 때 같으면 불쑥 주어진 시간에 연구실로 돌아가거나 인근 카페에 앉아서 일에 빠져든다.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포근한 봄 햇살과 알싸한 꽃내음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