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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적인 단어들

1. 시애틀에서 출발하여 포틀랜드로 향하는 기차 여행은 네 시간의 ‘긴’ 여정이었다. 2004년 KTX가 개통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4시간 열차 여행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기차 안에서 졸거나 먹거나 생각했다. 의자가 편안하여 잘 졸았고, 열차에서 파는 도시락(터키 데리야키 라이스)을 맛있게 잘 먹었다. 생각만이 지지부진했다. 포틀랜드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 포틀랜드를 여행하는 5박 6일 동안, 나는 포틀랜드적인 것들에 대해 알아가기를 바랐다.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포틀랜드를 꼽았다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체험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 이것이 어느 날 문득, 포틀랜드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유다. 나는 포틀랜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태양이 빚어낸 예술처럼

부제 : 내가 일몰을 좋아하는 이유 주말을 외국의 한적한 섬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시애틀 여행 중인데, 근교에 사는 친구 부부와 함께 시애틀에서 100마일 떨어진 산후안 섬(San Juan Island)으로 주말여행을 떠났거든요.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 끼어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부르더군요. 산후안 여행은 시애틀 여행 속에 또 하나의 여행이 끼어든 액자여행인 셈입니다.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섬으로 향하는 동안, 태양은 수평선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갑판에 서서, 태양이 빚어낸 ‘일몰’이라는 예술을 만끽했지요. 솜사탕을 길게 늘어뜨린 모양의 구름이 살구빛 태양빛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습니다. 이국의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햇살 좋은 날의 일몰이, 나는 무척 감사하..

사진으로 보는 시애틀 여행

시애틀 여행 4일차, 12월 11일. 오전에는 호텔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썼다. 책을 들고 나갔지만, 글을 쓰고 나니 예정한 시간이 지났다. 서둘러 다운타운 1번가 파이크 스트리트로 이동했다. 친구를 만나 점심식사로 새우와 연어 요리를 먹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명소들, 이를테면 스타벅스 1호점(실제로는 4호점), 생선시장, 워터프론트 등을 둘러보면서 길거리 간식을 사 먹었다. 아침부터 줄곧 내리던 비가 오후에 잠시 그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가장 인상 깊었던 풍광 또는 명소는 아래의 세 가지! 뜻밖의 시간에 조우한 시애틀의 푸르른 하늘! (햇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시애틀 센터와 함께 시애틀의 대표 관광지, 파이크 플레이스! (이색 상점들) 시애틀 최고(the highest) ..

워싱턴대학교에서 보낸 하루

1. 12월 9일, 시애틀 여행 이틀째 날이다. 어제 그야말로 긴긴 하루를 보냈는데다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느라 꽤나 피곤했는데, 7시 30분에 눈을 떴다. 숙박 중인 Seattle University Travelodge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음식은 별로였지만 끼니로는 충분했다. 사과와 오렌지, 커피와 머핀, 삶은 계란과 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오렌지 껍질은 까기가 힘들었고, 사과는 푸석했다. 주스와 커피 그리고 계란은 맛났다. 식당에는 미국인 노부부들이 많았고, 동양인들도 두어 테이블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알아듣지 못한 영어 뉴스가 흘러나왔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가는 비가 내렸다. 숙소 앞 OFFICE DEPOT에 들러 전압 컨버터와 핸드워시용 소독제를 샀다. 가죽가방을 들고 오는 바람에 ..

이해가 깊어지는 여행

1. 12월 8일이 어두워졌을 때 한국을 떠났다. 9시간 넘게 날아서 도착한 시애틀은 여전히 12월 8일이었다. (시애틀과 한국의 시차는 15시간이다. 한국이 빠르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비행시간을 제외하더라도, 하루의 낮 시간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여행이라면,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하루씩 젊어지는 여행!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젊어지는 것이 과연 멋질까, 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그런 여행은 존재하지 않고, 게다가 하루씩 젊어지는 '인생'이나 '일상'이 아니라, 하루씩 젊어지는 '여행'이니, 선택은 자유다. 망상이지만, 정말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종종 여행을 떠날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정신없이 여행을 떠나다

1. 여행 준비도 일이다. 그것도 이중의 일이다. 숙박 예약, 동선 파악, 여행지 조사 등 여행 자체를 위한 준비도 해야 하고, 부재 중일 때를 대비한 일상의 업무도 몇 가지는 처리해 두어야 한다. 여행이 설레임과 함께 얼마간의 부담감으로도 다가오는 까닭이다. 12월 8일부터 22일까지의 미국 여행은 내게 설레임보다는 부담감이 컸다. 여행 직전의 일정이 다소 빡빡했고, 지난 9월에 벌어진 데이터 유실 사고의 후유증으로부터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했기에 해야 할 업무도 많았다. 왜 이럴 때 여행을 떠나냐고? 내가 그 말이다. 나는 7월 이후, 줄곧 슬프거나 힘겨웠다. 여행이라도 떠나야지, 했던 때가 10월 초였다. 그때 계획한 여행이 이번 미국 여행이다. 계획된 일정을 피하다보니, 출발일이 12월 8일이 되..

뛰어난 학습자가 되는 길

수잔 손택은 제게, 비평이 얼마나 멋진 작업이고 에세이가 얼마나 지적이고 유려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를 읽으며 명료함에 감탄했고, 『우울한 열정』에 실린 롤랑 바르트 추모글에 무릎을 쳤습니다. 그녀가 ‘존 굿맨’을 사모했던 에세이는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감수성과 지성을 겸비한 탁월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손택의 사망 3주년 기념 평론집 『문학은 자유다』 프롤로그에서,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를 이리 표현했습니다. “어머니는 찬미에 뛰어났다. 숭배는 어머니의 제2의 천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숭배의 달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존 굿맨’에 관한 글에는, 오랫동안 한 작가(굿맨)의 모든 글을 읽어 온 충실한 독자(손택)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숭배한다는 것은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

나의 초상 (9)

1. 사랑하는 후배의 아내가 어제 첫 아이를 출산했다. 소식이 담긴 카톡창에 아가의 사진이 올라왔다. '왜 모든 태아는 못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증발했고, 나는 그 사진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책상에서 일어나 작업실을 서성이며 울었다. 기쁨과 처연함의 눈물이었다.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잘난 녀석이니, 당연히 처자식 잘 챙기고 가장 역할을 잘 해낼 텐데, 나는 그 당연한 일이 천금처럼 감사했다. 순간적이지만 정말 천금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왜 울까? 기쁨만은 아닌 것 같아, 이유가 궁금하여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눈물을 머금은 사내가 보였다. 태아처럼 못 생긴 얼굴, 낯설다. 눈물이 기쁨 뿐만 아니라, 처연함으로부터도 온 것이란 것을 알았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구나,..

자기다움을 위한 마지막 부탁

여전히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기다움은 소원과 의무를 조화시켜가는 노력에서 발견되는 과정일 뿐 완성은 없다.” 자기다워지려면 마음 속 '소원'과 관계 속 '의무'를 생각하고 실천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용기’를 내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사랑’을 발휘하여 해야 하는 일을 완수하다 보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하나씩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시도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성찰, 실천, 공부입니다. 1) 올해가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성찰’하세요. 2) 성찰꺼리를 하나씩 ‘실천’하세요. 이것이 자기다움의 여정입니다. 3) 자기다움에 필요한 가치, 용기와 사랑을 ‘공부’하세요. 용기는 주체적 자아를, 사랑은 관계적 자아를 완성하..

봄꽃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

어제 받은 두 통의 메일이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금 울먹이기도 했다. 전자우편을 보내신 분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셨지만, 메일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이틀 전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친구 잃은 상실감을 담은 글을 썼다. 두 분은 나의 상실감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셨다. 비결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셨다. 한 분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내 친구"를 사고로 떠나보냈다. 다른 한 분 역시 "마음에 늘 첫째였고 유일함이었던, 많이 사랑했던 친구"와 어느 날 갑자기 사별하셨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사람은 두 문장을 읽고서 울컥하거나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우정의 상실이 얼마나 크고 어떠한 고통인지 잘 알기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