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068

탁월한 해석의 첫걸음

세상 끝에서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른 독수리는 지구의 중심에서 다시 만났다. 그곳이 델포이다. 사람들은 델포이를 옴파로스라 불렀다. 배꼽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를 지구의 중심, 델포이를 지구의 배꼽이라 생각했다. 옴파로스에 아폴론 신을 모시는 신전이 세워졌다. 신의 뜻을 알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신이 아닌 ‘피티아’라고 부르는 무녀와 사제들이 신전에서 그들을 맞았다. 피티아는 신과의 매개자였다. 신의 말씀은 그녀를 통해 인간 언어로 전환된다. 피티아가 중얼거리면 곁에 있던 사제들이 피티아의 말을 모호한 해석을 덧붙여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신도 피티아도 만나지 못한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다. 의뢰인도 해석을 덧붙일 ..

카테고리 없음 2015.01.19

2015년 성찰일지 (1)

2015년이 보름 남짓 지났다. 사람의 생애 첫 한 두 해가 비슷하듯이 누구나 새해 첫 한 두 주는 비슷하게 보낼 것이다. 새해 결심을 그런대로 지켜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는 2주를 그런대로 잘 살았다. 헤르페스 각막염이 살짝 재발했지만 이내 가라앉았고, 힘든 일이 있었지만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소통에 임했다. 철학 수업 준비에도 성실히 임했고, 날려버린 원고의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난해보다 성장한 나로 올해를 살고 싶었기에. 1. 고트프리트 마르틴 『진리의 현관 플라톤』, 미하엘 보르트 『철학자 플라톤』. 플라톤 이해에 도움을 얻은 두 권의 책이다. 남경태 선생의 『개념어 사전』은 읽다가 너무 쉬워서 내려놓았다. 『문학비평의 이해와 활용』이라는 책은 교과서적인 책인데, 비평은 혼자..

멍하게 TV를 시청하고서

어젯밤 열두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2박 3일 동안 많이 돌아다녔다. 공주에서 강연이, 진주에서 4기 와우의 결혼식이 있었다. 목요일에는 모기업 연수원에서, 금요일에는 대전 대림호텔에서 잤다. (베니키아 호텔인데도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예약했는데 후지긴 했다.) 여행은 좋지만, 장시간 운전은 고달프다. 그래서 하행길에서 대전에서 숙박했었다. 오는 길에도 중간에서 하루 더 숙박할까 고민했지만 숙박비도 아끼고 업무도 밀려서 서울행을 택했다. 상행길은 진주 - 양평 집 - 서울 작업실로 이어지는 먼 거리였다. 도착하여 잠시 누워서 '씻어야 하는데... 씻어야 하는데...'를 반복하여 중얼거리다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휴일이어서인지, 며칠 떠돌이 생활을 해서인지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했다. TV를 틀었..

너무나 인간적인 허삼관

인간적인 허삼관, 사랑스러운 일락이. 영화 을 관람한 간단 소감이다. 그러니 나의 소감을 늘이면, 무엇이 인간적인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기회가 되겠고, 일락이를 향한 애정 표현을 쏟아내는 장(場)이 되리라.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고, 사랑을 표현해서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세상에 글 하나를 보내는 민망함을 달랜다.) 1. 허삼관(하정우)은 허옥란(하지원)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마음앓이 하던 허삼관은 삼촌(주진우)에게 물었다. “삼촌, 어떡해야 결혼해요?” “결혼하려면 네가 가진 것을 모두 주어야지.” 가난한 허삼관은 피를 팔아 번 돈으로 허옥란에게 냉면, 만두, 불고기, 향수를 선물했다. 돼지고기 한 덩이도 사주었다.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오늘 제가 쓴 돈이 2천원예요...

Great Legacy Academy

Great Legacy Academy (Start) 와우스토리연구소 인문학 강좌안내 Great Legacy Academy는 인문학 과정입니다. 인문학 공부는 인문 지식과 교양을 쌓는 것, 그 이상이지요.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목적이요, 그것이 인문주의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이 중요한 것은 고전이 많아서가 아니라 인간 이해를 가장 잘 돕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GLA는 인문주의자를 꿈꾸며 문학적 인간, 역사적 인간, 철학적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이미 2년 동안 인문주의 - 문학 - 역사 - 철학, 을 한 차례 돌고와서, 올해 첫 과정(Start)을 다시 시작합니다. START 과정은 '인문학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명실상부가 나를 위로하다

1. 명실상부한 삶은 오랫동안 나의 바람이었다. 명실상부의 적은 내면에 존재한다. 허영심, 불성실, 자기기만은 대표적인 적이다. 필요 이상의 겉치레를 자주 하거나 실제보다 많이 아는 척하는 허영심. 필수적 노력마저 기울이지 않는 불성실. 타인의 부정확한 칭찬을 듣고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닌 줄 알면서도 제3자에게 퍼트리는 자기기만. 나는 3가지를 명실상부를 방해하는 악덕으로 여기고, 이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외부에도 강력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착각도 명실상부를 위협한다. 사실 누구나 종종 착각한다. 헷갈리게 기억하거나 사물을 혼동한다. 때로는 사람에 대해서도 착각하는데, 실제보다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한다. 과소평가는 그럭저럭 괜찮다. 인생살이에서 오해는 불가피하니까.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토토가>로 떠난 추억여행

1. 나흘에 걸쳐 무한도전 를 시청했다. 나흘이나 걸린 것은 의도적 '노력'이었다. 아껴보고 싶었고, 그래서 하루에 두 세 가수만을 만끽했다. 정말 행복한 시청이었기에, 다음 가수의 공연을 더 시청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을 극대화하고 싶었고, 내일도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만족지연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인내가 즐겁기도 했다. ‘행복’과 ‘좀 더 짙은 행복’ 사이의 선택이었으니까. 2. 90년대의 음악을 사랑‘한다’. 최초로 좋아했던 가요는 이선희의 (1986)이었고, 이후에도 이정석의 (1987), 등을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가요에 빠져든 것은 1990년이었다. 변진섭의 를 운명적으로 들었고, 90년대 초반부터는 조정현, O15B, 김원준, 푸른하늘, 김건모,..

오늘 나는 아르키메데스다

1. 나는 배움을 즐긴다. 즐길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주, 많이, 부지런히 배운다. 배움은 나의 일상이다. 신형철은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썼다. 그 말을 부러움이나 절망감 없이 멋지다고 여겨왔다. 정말 그의 삶이 부럽지는 않았다. 읽고 쓰는 즐거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는 여행, 만남, 와인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철의 푯대를 향한 듯한 헌신적 모습을 갈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오롯히 하나의 우물을 파는 느낌이라면, 나는 산만하게 들쑤시고 다닌다. 2. 엊그제 (2014년 1월 5일자) 신문을 읽다가 '울리히 벡'의 부음 기사를 읽었다. 『위험사회』라는 저서로 유명한 사회학의 거장 벡은(1944~2015)은 산업사회를 성찰..

애호가로 산다는 것

나는 애호가다. 애호가와 전문가는 다르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애호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호가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다. 지식은 위대한 애호가가 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보통 수준 이상의 애호가가 되는 데에는 좋아하는 열렬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대체 무엇을 만나는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듯하나 실제로는 숱한 사물과 풍경을 만난다. 사전의 정의로도 만남은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눈앞에 대하다’는 뜻도 가졌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안경부터 만난다. 이후엔 방안의 풍경을 만나고, 곧이어 한 잔의 컵과 그 속에 든 물을 만난다. 곧이어 음식을 만난다. 출근하기 위해 옷을 만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다큐멘터리 영화다. 주인공은 에도 출연했던 노부부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는 영화 관람이지, 다큐멘터리 시청은 아닐 것이다. 대자연을 찍은 다큐멘터리라면 모를까 TV 시청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 시골 배경의 노부부가 등장하는 다큐를 나는 왜 극장까지 가서 보는 걸까?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에 머리를 스쳐지나간 질문이었다. 영화는 제목과 포스터가 스포일러다. 사별의 고통이 주요한 서사임을 대놓고 드러낸다. 타격은 아닐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서사가 아니라, 리얼리티일 테니까. 이 영화를 찾은 이유를 생각하니 세 가지였다. 죽음의 리얼리티를 기대했고, 다정한 노부부가 죽음을 맞는 모습이 어떠할지 궁금했고, 할머니의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나의 애도 현황을 성찰한다면 보너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