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 23

의미와 경외심을 회복시키는 기예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가장 감동했던 대목은 1) 허무주의 시대에 대한 처방을 문학 작품 속에서 건져 올렸다는 사실과 2) 테크놀로지 시대에 대항하여 의미 심장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기예를 연마하라는 제안이었다. 3) 책의 주제에 줄곧 현상학적 방식으로 접근한 것도 이 책을 신뢰하게 했다. 나는 불가능에 가까운 '최선의 추구'라면 보다 현실적인 '최악의 제거'를 선호한다. 4) 참된 확신은 내면에서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 이끌리듯 경험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인상 깊었다. 5) 서로 다른 양극단의 가치, 인간 삶에 필요한 배타적인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저자들의 지성도 빛났다. 저자들이 이야기한 '기예'는 장인적 기술을 말한다. 기예는 작은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갖게 한다. ..

어느 봄날의 오후

나는 뜻밖의 개인 시간을 사랑한다. 어느 봄날, 오후 일정 하나가 갑작스럽게 취소되어 내게 덩어리 시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내게 불쑥 5만원을 쥐어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약속한 이와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지만, 뜻밖의 자유 시간을 누리는 맛은 무척 달콤하다. 내 마음엔 두 개의 방이 존재한다. 아쉬움은 이곳, 설렘은 저곳, 이렇게 서로 다른 감정을 담아두기에 좋다. 하나의 병 속에 든 물과 기름처럼, 마음 속 두 감정을 모두 느끼면서도, 서로 다른 방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 하나다. 여느 때 같으면 불쑥 주어진 시간에 연구실로 돌아가거나 인근 카페에 앉아서 일에 빠져든다.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포근한 봄 햇살과 알싸한 꽃내음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향..

에피쿠로스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는 신이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지혜라고 일컫는 삶의 법칙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자신이 정립한 학문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숱한 폭풍과 암흑으로부터 끌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과 빛의 세계 속에 정착시켰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루크레티우스(BC 99~55)가 한 말이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불안과 두려움은 필연적인 감정이 아니다. 생각과 인식을 바꾸면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자신의 스승이야말로 불필요한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우리에게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다. 루크레티우스처럼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긴 이들이 많았다. 두려움, 불안, 삶의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었으니 신의 구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에피쿠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