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길... 하루를 마감하며 우린 종종 통화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집에 안 가냐?
방금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원에서 강연이 늦게 끝나서 이제 막 들어왔어.

이번 주에 베트남엔 안 가냐? 장사가 안 된다.
야!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장사가 참 잘 되었다며 다시 베트남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도 마구 웃었는데 이 녀석이 오늘 나를 또 웃긴다. 슬쩍 덧붙이는 그 녀석의 멘트에 나.. 쓰러진다.

올 여름 휴가는 베트남으로 갔다 오지.

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장사는 안 하고 개그 연구만 했나 보다. 웃다가 어찌하다보니 얘기가 배수경 선생님 이야기로 흘렀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아 글도 못 쓰고 있다. 전해드지리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내 책상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살짝 울컥해지려는 찰나, 이 놈의 멘트...

이제 그만 잊어라. 안 그러면 너까지 죽을지도 모르잖아.
너 죽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까지 죽고...
내가 죽으면 OO(자기 와이프)이도 죽고... 그럼 우리 모두 끝이다.


나 또 미치는 줄 알았다. 웃겼다. 무지 웃었다. 정말 나까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우리의 감정적 교감과 친밀함이 뜬금없는 유머를 무례함에서 건져 주었고
그 녀석은 나의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슬펐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즈음에 전화로 만나 감정을 나누었고 몇 가지 일상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워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슬픈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지는 않지만 하루라는 시간의 그릇 안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함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슬픔의 크기가 크다면 시간의 그릇도 더욱 커져야 할 테지만 말이다.

친구야... 나 이렇게 산다. 너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도 이겨내면서 말야.
너에게 음악 한 곡 실어 보낸다. 'Only Love'라는 제목이 내 마음이다. 호호.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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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냈니? 나는 오랜만에 짧은 자유 시간을 가졌다. 오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된 교육이 끝나니, 저녁에는 이것을 할 수도, 저것을 할 수도 있는 나만의 자유 시간이 생겼어. 네가 알다시피 이번 주는 현대경제연구원 촬영 원고를 작성하느라 약간의 부담감을 안은 채 지냈잖우. 긴장이 풀려서인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내게 주어진 몇 시간의 자유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초여름의 햇살이 나를 반겼다. 내 곁에 그 사람이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어쩌니. 지금은 없는 걸.

와우팀원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몇 마디를 나누고 끊었다. 일찍 귀가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햇살이 나를 어딘가로 부르는 것 같더라. 그런데 그다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었어. 좋아하는 파리바게트의 소보루빵을 사려고 했는데, 다 팔려 모카빵과 치즈가 들어간 빵을 사서 집으로 향했지. 6시가 살짝 넘은 시각에 집에 도착! 혼자 누리는 자유가 나를 반겼다. 이런 시간을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잘 즐기는 편인데, 가끔씩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찾아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오늘이 그랬다.

 

세 시간 동안 뭐 했나 싶어 저녁 시간을 되돌아보려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나네. 오늘 같은 날, 너와 밤데이트를 하고 나면 싹 풀릴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보고 싶다. 친구야. 오늘 프로야구는 보았는지 궁금하고, 와이프는 서울에서 돌아왔는지 궁금하고 그리고... 네 목소리가 궁금하다. 어제 통화했는데, 나 왜 이러니? ^^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9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잠깐 나갔다 오려 한다. 우리 집 앞에 던킨도너츠가 하나 더 생겼는데 분위가 좋더라고. 거기서 5월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말야. 너랑 함께 하면 참 좋을 텐데...


얼마 전, 메가박스 코엑스점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함께 차 마셨던 거 기억나니? 그 때, 너랑 친구로 살아온 게 고마워서 눈물 날 뻔 했잖우. 네 존재 자체가 어찌 그리도 고마운지! 나의 10대를, 20대를 함께 해 준 친구야... 참 고맙다. 친구 덕분에 나는 지난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의 30대도 함께 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많아지길 희망해 본다. 소박한 바람인데도, 서울과 대구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예전처럼 자주 만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 괜히 벌써부터 아쉽다.

우연히 5년 전쯤 너에게 쓴 편지글을 발견했다. 너에게 전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아래에 옮겨 볼테니 한 번 읽어보렴.
 편지는 하나가 더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얘기가 많아 너에게 직접 건네야겠다. 조만간 고향으로 한 번 내려가마. 그 최고의 발마사지 샵에도 함께 가자. ^^

*

요즘 아무런 걱정도 없고, 그럭 저럭 일도 잘 풀린다.

그래서 그게 걱정이다.

내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지 않기에,

그저 어제처럼 살고 있기에...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저 푸른 초원 위에]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최수종(차태웅 역)이 여자 친구 어머니에게 엄청난 인격적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도적으로 반응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참고 최선의 반응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말이 우습지만, 뭔가 나에게 치욕과 고통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도 했다.

그런 치열함이 있을 때 더욱 성숙하고 보다 처절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차태웅은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함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나태함 속에서 보낸다는 것은 정말 싫다.

그래서 그런 나태함은 그저 생각만으로 끝내려고 한다.

절대 그런 일이 나의 삶 속에 실현되는 것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힘차게 뛴다.


치열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인으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려면

200%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치열함을 사랑한다.


길을 걷다가 "일병 이희석" 이라고 외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끓어오른다.

내 안에 군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군 생각만 하면 걸음이 빨라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이왕이면 내일은 이렇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소 지으며 반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 아니겠는가!

힘찬 걸음으로 담대하게 내일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면

다소 쓰라린 실패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배움을 건질 용기 정도는 가진 자가 아니겠는가!


나 그렇게 살 거다.

좀 더 치열하게... 좀 더 신실하게... 좀 더 치열하게...

좀 더 고생하며, 좀 더 열심으로 살아갈 거다.

내 생이 다하는 그 순간에는 내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되길 바라며~


어제는 코엑스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생각을 하다가,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금 내가 헛된 일로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느끼며

일초라도 더 아끼고 싶었다. 이런 열정으로 일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에게 전화하여

"우리 정말 정직하고 열심히, 성실한 자세로 살자"라고 했다.


오늘은 열정과 흥분으로 잠자리에 드니

정말 꿈나라에 다녀올 것만 같다.
환상적인 그 나라로 나 지금 떠나려 한다.


안녕!

2003년 3월, 친구 석이가


*

나, 저 때 왜 저렇게 비장하대니? 하하하. 편지를 읽다 보니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방금 전화를 했다. 10분 넘게 우리는 수다를 떨었고 유쾌해했다. 너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잖아도 화창한 오늘 햇살을 보며 내 생각을 했다는 얘기, 대학교 시절 함께 수업 듣고 혹은 함께 땡땡이 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얘기. 그리고 지난 해 하루 일을 마치고서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 새벽 2시에 서울에 나타났던 얘기. 이것 모두가 언제 이야기해도 즐거운 우리들의 추억이구나. 
사실, 너에게 전화할 때부터 그냥 모든 것 제쳐 두고 확 내려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일 오전부터 있을 교육을 생각하며 부드럽게 만류한 네 속 깊은 마음이 고맙다. 그리고 보고 싶다.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와 프로야구를 보았고, 내일 있을 와우모임을 위해 방정리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났다. 이제 2008년 5월이 3시간 남은 셈이다. 한 달이 지나가는 이 시간에, 너는 뭐 하고 있니? 하루 매출을 돌아보는 시각이지만, 월말이니 한달을 돌아보며 월 매출을 헤아리고 있겠구나. 헤아리는 손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네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으면 좋겠다. 혹 원했던 만큼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방식을 통하여 너의 꿈을 이뤄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졸립기 전에 나도 어서 나의 한 달을 돌아보련다. 

오늘 글은 옮겨 쓴 내용도 있어서 지금 쓴 글은 많지도 않은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런 저런 네 생각을 하며 쓰느라 그랬나보다. 에공. 던킨도너츠에는 못 가겠네. 한 달 돌아보기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삶이 우정에 의해서도 충만해질 수 있음을 너로 인해 느꼈기 때문이다. 시드니 스미스라는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의 말로 글을 맺는다.

"삶은 우정에 의해서 풍성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건 살아가는 최대의 행복이다."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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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식물쓰레기통에 비닐 봉지까지 버리는 사람들

며칠 전 쉰 김치를 버릴 때, 음식물쓰레기통에 김칫국물이 흘러들어갈까 봐 뜰채에다 꽉 짜서 버렸다. 이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면 혹여나 물기가 남아 있거나 이물질이 들어갈까 주의하여 버리곤 한다. 그렇게 신경 써서 버리는데, 음식물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순간, 화가 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비닐봉지까지 버려 둔 것이다. 나는 지저분한 것을 싫어한다.(^^) 지저분한 것을 만지는 것은 더욱 싫어한다. 어찌할 수 없이 비닐봉지를 꺼내야 하는 이런 상황도 싫다. 봉지를 끄집어내 별도로 분리하고 나면, 집에 들어와 두세번 손을 닦는다. 음식물쓰레기통에 비닐 봉지까지 버리는 사람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한 것은 내 방은 늘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부끄부끄 ^^ )

#2. 음식물쓰레기통에 비닐 봉지를 걸쳐 두는 사람들

음식물을 담아 온 비닐봉지를 되가져가지 않고 뚜껑에 닫을 때 뚜껑 사이에 끼워 두는 사람들도 있다. 첫번째 유형보다 조금 덜 화가 나긴 하지만 이들도 반갑지는 않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한 그들의 호의에 고마울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들의 조금 더 나은 뒷처리를 기대한다. 방금 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는데, 오늘은 유난히 걸쳐져 있는 비닐봉지가 많았다. 내가 가져간 비닐 봉지에 모두 담았더니 5~6개가 되는 것 같다. 에공! 이럴 수가 있나! 화난다. 그래도 치워야 한다. 6개의 비닐 봉지 중에는 평소에는 그러지 않다가 다른 이들이 여러 개의 비닐 봉지를 남겨 두었으니, 자신도 슬쩍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원칙이 지키기 힘든 이유는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3. 대책

- "비닐봉지를 되가져 갑시다"라는 얘기를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써 붙여 보자. 저 문장 그대로 쓰면 전혀 호소력이 없을 것 같다.
- 다시 한 번 비닐 수거용 임시 쓰레기통을 만들어보자. 지난 번 시도시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나의 사후관리가 지속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 오늘처럼 군소리 없이 내가 비닐봉지를 걷어내는 것이다. 묵묵히 하다 보면, 변화될까? 이 대책이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 강남구청에 의뢰해 보자. 발로 뚜껑을 여는 쓰레기통과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비닐봉지를 버리는 쓰레기통을 설치해 달라고 말이다.


*

열받고 와서 이 시각에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참 웃긴다. 이럴 땐 꼭 주부가 된 것 같다. 분리수거에 각별한 애정(^^)이 가는 것을 어쩌랴!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면 남자가 정말 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호호호. 괜찮다. 이게 나인걸.
정말 괜찮다. 다른 부분에서는 남자다운 모습도 있다고 생각하니깐. 하하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며 안철수의 원칙론이 떠올랐다. 그는 리더십의 핵심으로 원칙과 일관성을 들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가슴을 쳤던 말이다. 

"매사가 순조롭고 편안할 때 원칙은 누구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칙을 원칙이게 만드는 힘은 어려운 상황,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것을 지킬 때 생겨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한두 번 원칙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진정한 원칙이 아닙니다."

모든 탁월한 일이 그렇듯이 원칙을 지키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음식물쓰레기통에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훌륭한 시작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작은 일도 원칙을 지켜 훌륭히 처리하는 것!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지켜가는 것. 이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것이다.
(나 혼자 신났다. 음식물쓰레기통에 대한 얘기가 아름다운 세상으로까지 커져버리다니. 주책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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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댓글에 대한 긴 답변을 작성했습니다.
등록 버튼을 눌렀더니 제가 쓴 글이 그냥 날아가 버렸습니다.
ctrl+z를 눌러도 복구가 안 되었습니다.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다시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을 끝내고 다시 등록을 눌렀는데 또 날아갔습니다. 허걱!

이상했습니다. 시험삼아 한 줄을 작성하여 등록해 보니 또 날아가버리더군요.
정말 이상하다 싶어 블로그 전체를 새로고침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만 해도 있던 당신의 댓글이 사라졌습니다.
아하!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저와 같은 시각에 저는 당신의 댓글에 답글을 썼고,
당신은 며칠 전 당신의 댓글을 읽으며 지워버렸던 것이지요. 제가 맞죠?
(제가 무슨 추리소설 쓰는 작가도 아니고, 사건 수사하는 형사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

"화가 난 것은 스스로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읽고 당신은 숨이 멎을 만큼 무언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사실에 직면하였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하셨지요.

당신의 그 댓글을 읽고 나도 뭔가 생각을 좀 한 후에 댓글을 달아야지, 하였답니다.
오늘 그 댓글을 달았고, 여러 번 지워졌습니다.
두 번 지워졌던 댓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 썼던 그 글맛은 아니지만, 혹여나 도움될지도 몰라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사랑을 거두라고 권면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은 당신도 아실 테지요.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대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한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한 번도 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파트너십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겠지요.

하지만, 사랑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힘겨운 날들이 이어진다면 떠나야 할 것입니다.
사랑을 거두고 떠나지는 마세요. 용서하고 축복하며 떠나시는 겁니다.
그러면 슬프면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분명 기쁨과 함께하는 감정이지만, 슬픔이나 고독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더군요.
참 많이 슬플 것입니다. 그 슬픔에 직면하고,새로운 날들에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어떠한 순간에도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향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나의 목표이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줍잖은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혹여나 저의 염려하고 위하는 마음이 왜곡되어 당신에게 폐가 되진 않을지 모르겠군요.
그럴 때에는 부디 저의 순수한 마음만 받아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혹, 당신의 댓글을 읽고 제가 부담스러워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셨지요?
오히려, 당신의 댓글에 보다 신중히 답변을 달고자 살짝 연기해 둔 것이랍니다.

보보 Dream

[PS] 
알듯 모를듯한 이 글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나, 라고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저의 블로그는 '표현'이 아닌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저의 생각을 표현하는 곳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고
누군가의 머리와 교류하는 '소통'이 없다면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글은 '소통'이 나에게 중요함을 드러낸 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

Posted by 보보

두 손 가득 짐이 많았다. 두 개의 무거운 쇼핑백과 가방 하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도착역에 왔다 싶어 얼른 짐을 챙겨 들고 내렸다.
아뿔사. 잘못 내렸다. 선릉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역삼역이다.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했는데.
걸어갈까, 하다가 짐이 많아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의자에 앉았다.

5분여 후, 다음 열차가 왔다. 짐을 챙기는데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의자 주변을 살펴봐도 없다. 으악! 지하철 짐칸 위에 두고 내렸나 보다.
헉! 들고 내렸는지, 두고 내렸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 저기 주변을 살펴 봐도 없으니 두고 내렸음이 분명하다.

순간 아찔했지만, 반갑게도 지갑이 재킷 안 주머니에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가방에 든 물건들을 떠올리며 잃어버려도 상관없지만 찾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와우팀원 한 명이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2호선은 순환선이기에 80여 분 뒤에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지하철에서 다시 찾았다는 일화다.

그 일화가 나의 희망이 되었고, 잠시 후에는 확신이 되었다. "그래 반드시 찾을 거야."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지하철에서 내린 지점을 확인하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질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것은 과거이니 어찌할 수 없다.
아쉬움을 느끼거나 화를 내봐야 '지금'이라는 시간에 대한 실례다.

나는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하여 점잖게 굴었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오늘처럼 이렇게 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걸어오며 지난 날 나의 실수와 실패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고
앞으로의 삶에 집중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잠깐, 기도를 했다.
가방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가방을 찾든, 찾지 못하든 이렇게 다급한 순간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그 분께 영광돌리고 싶었다.
기도하는 순간에 나의 내면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기도 응답보다 중요하니까.
이런 위기(?) 상황 뿐만 아니라, 내가 잘 되고 기쁠 때에도 하나님을 찾는 내가 되기를.

가방을 잃어버려도 기분이 괜찮은 오후다.
지하철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이 쪽으로 오는 시각은
친구 수범이와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과 비슷하다.
나는 친구와 함께 가방을 찾을 것이고, 신기하다며 함께 담소를 나눌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게다.

누구나 살아가다가 자신이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할 수 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그 일은 당황케 할 수도, 슬프게 할 수도, 화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반응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매 순간마다 승리의 가능성, 행복의 가능성을 가지는 지점이다.
나의 목표는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오늘 그 목표를 살짝 이룬 것 같아 기쁘다. 날씨만큼이나 괜찮은 일요일 오후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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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3일 동안은 하루에 두 번 씩의 강연이 있어서 조금은 부담스러운 주간입니다.
강연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여유로운 일정을 좋아하는 제 성향에 비추어
다소 빡빡한 스케쥴이어서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래도, 강연을 마치고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하는 그 긴장감이 싫지는 않습니다.
마치 내가 유명인이라도 된 듯한 순간적인 느낌도 즐겁습니다.
물론 이것은 느낌에 불과하지만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착각이니 슬쩍 허락합니다.

오전에는 삼전복지관에서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강연했지요.
40대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참가자 분들이 40대든, 60대든 참 편안해졌습니다.
오히려 60대 분들 앞에 서면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 분들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노력이나 열정 없이 강연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와 그 분들은 인생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에 서로 만난 것이니
그 만남의 지점에서 순간적 최선을 다합니다.
내가 배울 것이 있다면 힘껏 받아들이고
전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겸손하게, 정성껏 내어 놓습니다.
예쁘게 봐 주시는 어른들 앞에서 저는 마음껏 재롱을 부려 봅니다.
실수까지도 따뜻하게 감싸 주시는 그 분들이기에 참 편안하게 한 바탕 놀고 오는 것이지요.

오후에는 넥슨SD라는 회사에서 시간관리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24명의 신입사원이 대상이었고,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그들의 열정과 열심을 건네 받아 신나게 강연했지요.
이들은 무엇인가 배우고자 하는 열의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가르치기에 미친 사람이 되고, 저들은 배우기에 미친 사람이 됩니다.
서로 미쳤으니 많은 것을 주고 받습니다.
우리는 모두 젊고 욕심이 많습니다. 나는 삶을 향한 그들의 선한 욕심을 반깁니다.
그리고 욕심만큼 살아내 주기를 바랍니다.
쉬는 시간, 교육 담당자가 사다 준 아이스티가 참 시원했습니다.
그의 작은 매너에 기분 좋아지고, 웃고 즐겨 주는 참가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강연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사뿐사뿐 행복을 밟고 오는 귀가길이지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지어 참 즐겁고 행복합니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전화를 걸지 않는지, 왜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오해를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웃음과 이해,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주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배신하는 것 입니다.


-『인생수업』 p.44 -


*


"무조건적"이라는 말에 눈길이 많이 가는 요즘입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그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을 깊이 묵상하는 요즘입니다.


돌아보면, 나는 얼마나 조건적인 사람이었는지요.

그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얼마나 왈가왈부하는 사람이었는지요.

그대의 존재에 조건을 다는 순간,

그대는 내 조건에 의해 평가받는 1차원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을....


나는 오늘도 소원합니다.

목마른 나의 영혼이 그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기를,

그대가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사사로운 감정을 내려놓고

오로지 그대가 살아있음에 감사해 할 줄 아는 여인이 되기를.

- 2기 와우팀원, 이연주 씀


*

[인생수업]을 읽으며 저 역시 위의 문장에다가 밑줄을 쳐 두었습니다.
밑줄을 친 문장이 어디 저 문장 하나 뿐이겠냐마는
★★, 이렇게 두 개의 별표까지 표시해 두었으니 특별한 울림을 준 문장이었죠.
와우팀원 한 명이 저 문장을 옮겨 두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단상을 적어놓았네요.
같은 문장으로 저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했지요.

참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힘이 든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에 대하여 준비한 말을 쏟아내는 데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정말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이럴 때에는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 실례까지 범하곤 합니다.
"야, 너 정말 너무 하는구나." (실제로는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기도 하지요.)
"됐어. 할 말 없어. 그냥 전화 끊어." (할 말을 다 하고 난 후에야 내뱉는 말이지요.)

자신의 할 말을 전하고 난 후, 들을 귀를 닫아 버립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 사람의 형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깊은 상처와 마음의 외로움을 서로 주고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지니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주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화가 난 것이 상대방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화가 난 것은 스스로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실수한다고 해서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뭔가 하나를 잘 해내었다고 해서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 와우팀장 씀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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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수목원에서 찍은 예쁜 청보리


언제부턴가 자연이 좋아졌습니다. 싱그러운 초록잎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아주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기쁨이지요. 예전의 여자 친구는 초록색 나무가 많은 곳에 가면 그네들을 '초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가 감탄하며 보는 광경을, 나는 심드렁하게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의 나는 그랬습니다. 아름다운 건물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절경이 아닌 그냥 그대로의 자연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초록이들이 참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네요. 여느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나무들이 모여 있어도 그렇게 예뻐 보일수가 없습니다. 초록이들을 예찬한 그녀의 시각을 내게 이식이라도 한 것처럼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요즘입니다. 사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저 초록이들을 보면 아름다워서 또 보고 싶고, 다시 보고 싶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은 것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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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친구 주동이

5월 1일, 저녁해가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에 양재천에 갔습니다. 양재천은 도심 속에 있는 작은 자연입니다. 청계천이 주지 못하는 자연스러움이 양재천에 있기에 요즘 자주 양재천에 갑니다. 걷다가 앉을 만한 곳에 풀썩 앉아 초록이들을 바라 봅니다. 사진에 담아보고 싶지만, 느낌과 기분마저 담을 수는 없어서 그냥 가슴판에 찍어 두곤 하지요.

5월 4일,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지만 양재 환승주차장 뒷편의 말죽거리 동산에 올랐습니다. 정상까지의 산길이 600여미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산입니다. 바로 곁에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고, 강남대로를 지나는 수많은 자동차가 있지만 이 동산 안에는 자연의 내음과 색깔이 그것들을 잊게 합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그 특유의 새소리도 있고, 비가 사뿐히 내리어 풀내음이 더욱 진하게 풍겨난 날이었습니다. 이 날도 양재천을 따라 개포동까지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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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조형물 구경

5월 5일, 청계천에 들렀습니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 있기도 하였기에 막역한 친구와 동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청계천을 즐기었습니다. 인공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자연미가 덜하지만, 그래도 청계천의 자연은 그 여러 가지 조형물에 가리워지지 않고 그들만의 소리와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시냇물 소리가 들렸고, 시냇물 가장자리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좋은 까닭은 사람들이 휴일을 좋아하는 까닭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휴일을 좋아하는 것은 그 때에야 비로소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조셉 캠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은 나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무언가를 꾸며 댈 필요가 없습니다. 말하고 싶을 때 말을 하면 됩니다. 가만히 오감에 집중할 수 있고, 느낌에 따라 걷고 멈추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딩 숲 사이로 내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저는 사랑합니다. 그 빛은 제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너의 자연스러운 모양을 발견하여 누리렴." 이 것은 햇님의 따뜻한 격려입니다. 큰 길가에 우뚝 솟아있는 가로수가 반갑습니다. 빛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나무들처럼 제 안에도 희망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니까요.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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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에 시작된 와우 프로젝트!


어느 덧 4기 와우팀원을 맞아들이고 있네요.

17명이 4기 와우팀의 문을 똑똑 두드렸고,

12명에게 독서과제를 제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골치아픈(^^) 지원서를 성실히 작성하여 1차 관문을 통과한 이들입니다.


12명 중 한 명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직 지원서를 제출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참으로 간절하여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면 남들보다 기회는 한 번 더 얻을 수 있나 봅니다.

하지만, 일을 이루어내는 것은 소원보다는 성실한 노력이겠지요.


오늘이 첫번째 독서과제를 제출하는 날입니다.

제가 떨리고 긴장되어 이렇게 짧은 글로 떨림음 달래고 있습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하기 전에 제출한 넉넉한 이들도 있고

마감 한 시간 전인 지금쯤 열나게 마무리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테지요.


혹, 미리 시작하지 못하여 부족한 과제로 머리 쥐어뜯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일단 끝까지, 최후의 1분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선발 과정 중에 이렇게 격려 비슷한 말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어찌하지 못하고 하나의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도전과 희망을 이뤄내는 것은 결국, 실천입니다.

실천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들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함을 지닌 이들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능보다는 성실함이 더욱 빛을 발할 테니까요.


성실한 훈련이 재능을 능력으로 빚어갑니다.

오늘 12명 중의 9명이 과제를 제출하여 자신의 성실을 보여 줄 것입니다.

2명은 해외에 있기에 책을 구하기 쉽지 않아 일주일의 여유를 주었고,

한 명은 조모상으로 인해 정신이 없는 지경이어서 며칠 더 시간을 주었습니다.


오늘 9명이 모두 제출할까요? 지켜봐야지요. ^^

Posted by 보보

 스승님께


십여 년 전, 저는 오른팔로 왼팔의 팔꿈치를 받친 채 왼손의 검지와 엄지로 턱을 살짝 꼬집는 버릇이 있었지요. 이것은 당시 제가 참 믿고 따랐던 성경공부 리더의 습관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따르니 그의 버릇까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20대 초반의 제 신앙의 모델은 바로 그 사람이었고,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그만큼 따랐던 사람은 없었지요.


몇 주 전부터, 저에게는 또 하나의 버릇이 생겼습니다. 오른손을 살짝 굽혀 허공에다 공을 만지듯이 두어 바퀴 돌리는 모양인데, 전화를 할 때에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에도 자주 이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저는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연구원 수업 때에야 알았습니다. 바로 스승님이 자주 취하는 포즈였으니까요. ^^

30대 초반인 지금, 저는 10년 만에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스승이 생겨났습니다. 전심으로 신뢰하니 누군가의 포즈를 버릇으로 삼는 일을 10년 만에 다시 맞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퍽 기쁜 일입니다.


제 책의 원고가 너무 길다는 출판사의 요청을 두고 선생님께 의논 드렸던 기억이 나시는지요? 선생님께서는 덜어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 한 마디에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분량 줄이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스스로에게 참 놀랐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음을 진하게 확인하였던 순간이었지요. 믿고 따르는 분을 마음  속에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요. 이제껏 모르고 지낸 순간이 아쉽네요.


지난 일 년을 돌아보니 살갑게 다가서지 못하는 제 성정 때문에 스승님과 더욱 어울려 뛰놀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더욱 많이 남은 앞날을 내다보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쫓아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게는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마다 참고 견디는 못난 모습이 있더군요. 한 여인을 그리워하면서도 말 한 마디 못한 채 일 년을 지냈고,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표현 한 번 못하고 십 육년을 보내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에도 그냥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곤 했네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말씀 오늘에서야 올려 드립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을 선생님께 참 많이 배웠기에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제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저는 “최악의 제자는 스승을 영원토록 빛나게 만드는 제자다”라는 니체의 말을 강연 때 자주 언급합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을 제가 먼저 스승님 앞에서 실천하여 최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과 행복을 만끽하시는 삶으로 우리들 앞에 서 주세요.

훌륭한 스승, 구본형 선생님께 당신의 빛나는 삶을 감축 드리옵나이다!


2008년 5월 3일

제자 현운 Dream


편지를 쓰기 전,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싶어 이발을 하고 왔습니다. 선생님 앞에 예쁘게 차려 입고 싶어서 셔츠와 넥타이를 사러 갔다가 예쁜 넥타이 두 장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샤워를 하고 나서야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단숨에 쓸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십여 분이 걸렸습니다. 그저 내 마음을 쏟아내면 되었으니까요.


어제 선생님 앞에서 이 편지글을 읽어 드렸습니다. 가슴이 찡해졌고, 읽고 난 후 선생님은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픈 날이었습니다. 참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