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278

[주간 행복일지] 넉넉함과 편안함이 가득했던 주

행복했던 일, 감사했던 일을 떠올리며 한 주를 되돌아 본다. 긍정적인 추억은 행복을 증진시킨다. 감사를 표현함도 마찬가지다. 발전과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감사함을 늘려가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신뢰하는 심리학 교수 소냐 류보머스키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긍정적인 추억을 한 결과, 29퍼센트의 응답자가 현재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자기 통찰을 얻었다고 답했으며 19퍼센트는 긍정적인 정서를 느꼈다고 대답했으며, 18퍼센트는 현재로부터 도피하는 체험을 했다고 말했고, 2퍼센트만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고한 연구 결과가 있다." 과천 서울대공원 저녁으로 먹을 빵과 음료를 사들고 서울대공원을 향했다. 퇴근하고 가는 길이라 대부분의 가족들은 대공원을 빠져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우..

힘겨워하는 20대에게 보내는 편지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중에서 김 군아.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지. 형은 1%의 특별한 사람이니까 해낸 것이라고. 나는 갈 수 없는 길인데, 형 때문에 바람이 든 것이라고. 한 동안 너의 푸념 섞인 그 말이 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이 특별한지에 대해서. 무엇이 한 사람을 초조하게 낙심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하면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이 깊지 못하여 그저 떠오른 것들을 너와 나눈다..

2009년 봄 Na들이 계획

2009년 3월의 봄날은 바람이 차가웠지요. 쌀쌀한 바람이 봄 나들이를 떠나려는 제 발목을 잡곤 했네요. 4월, 5월엔 짧은 여행을 여러 번 계획해 두었답니다. ^^ 그 첫번째로 4월 3일에 경주 벚꽃 여행을 다녀왔지요. '여행'에 대한 탁월한 글쟁이의 책 『여행할 권리』를 읽으며 나의 삶에도 '여행 그리고 성장'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 먼 나라들에 대한 글 모음이지만, 뭐, 꼭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던가요? ^^ 또 어디 근사한 곳에서만 봄을 느낄 수 있던가요? 화창한 마음으로 잠시 따뜻한 봄 바람을 맞을 수 있다면 그만이지요~ 삶의 여유를 위해 일상을 조금 더 치열히 살 것을 다짐하며 2009년 보보의 봄 Na들이 계획을 정리해 봅니다. - 여의도 나들이 (벚꽃 필 무렵으로 맞출 수 있으려나?..

행복의 기술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대지 위를 걷는 일이다. 대지는 너무도 아름답다. 우리 또한 아름답다. 우리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어머니 대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친구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하고 기원할 필요가 없다. 평화는 이미 그들과 함께 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매 순간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주기만 하면 된다." - 틱낫한 2002년도에 이 글을 읽은 후, 매 순간은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평화를 누렸다. 그 중 하나는 2008년 6월 충북 음성에서 2박 3일짜리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서의 일이다. 어둠이 내린 시골의 차도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나는 맨발로 땅을 밟아보고 싶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양손에 쥐었다. 동..

일상을 담는 사진가들을 위한 11가지 지침

김주원 사진가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oowon77/51051976) 에서 퍼온 글입니다. 글을 퍼 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관심은 있고) 제가 쓸 수 없는 내용인 경우가 생겼네요. ^^ '사진 잘 찍기'는 제게 '관심은 있고 시도나 노력은 하지 않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입니다. ('관심은 있고 시도나 노력은 하지 않는' 또 다른 분야로는 연애, 골프와 수영, 운전 등이지요.) 알듯 모를 듯한 직관적인 언어로 표현한 김주원 사진가의 지침들이 마음에 드네요. 한번쯤 그의 강연을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럼, 을 옮겨 봅니다. 1. 그냥 바라본다. 그것에 의미를 먼저 찾기 전, 실체나 형체 이상의 본질과 진실에 접근한다. 그 순간 셔터는 터지고 순간은 영원이 된다...

『법구경』으로 한껏 웃기

『법구경』 "의미 없는 천 마디의 말보다 마음에 평화를 부르는 한 마디 말이기를. 현란한 천 편의 시보다 영혼의 잠을 깨우는 단 한 줄의 시이기를. 귓가를 스쳐가는 천 곡의 노래보다 심금을 울리는 한 곡의 노래이기를."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 책 마지막 장에서 읽은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나의 글과 강연이 저 구절들처럼 평화와 깨어있음, 심금을 울리는 영혼에 닿아 있기를 늘, 바라왔다. 내 바람과는 달리 내 삶은 늘 말이 많았고, 현란하고 어지러웠으며, 심금을 울리기는커녕 종종 아픔을 주어 정말 누군가를 울리곤 했다. 좀 더 성장하면 달라지겠지. 성장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쌓이고 쌓이면 나도 깊어지겠지. 눈 내리는 겨울의 어느 날, 장독대 위 눈이 어느새 소복이 쌓이듯이. 그렇게 깊어지고..

내 삶을 일으켜 주었던 말들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은 가진 것이 없었다. 이로 인해 힘든 건 '내'가 아니라 '어머니'셨으리라. 나는 책임을 진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시던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15살 때부터는 '나'도 가끔씩 힘들어했다. 엄마가 그리웠고,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야 했다. 나를 키워주신 삼촌, 숙모께서 정성껏 나를 보살펴 주셨지만, 그 분들의 애정과 엄마가 안 계신다는 사실은 별개였다. 두 분의 은혜 내게 축복이라는 사실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지워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청소년기의 나는 방에서 혼자 울기도 하고. 괜히 밝은 척 애쓰기도 했다. 지금은 힘들지 않다. 자주 행복감을 느끼고, 감사한 일이 많다. 이제 더 이상 애써 밝은 척 하지도 않는다. 거짓 미소를 지어야 할 만큼 ..

정현욱 : 운이 좋거나 갑자기 뜬 선수가 아니다!

(멋진 편집과 글이 담긴 위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본 것인데.. 결국 출처를 못 찾았네요. ^^) WBC 일본과의 한판 승부에서 1:0 완봉승을 거두었을 때, 정현욱의 2이닝은 정말 빛나는 피칭이었다. 봉중근 - 정현욱 - 임창용으로 이어지는 투수진은 완벽한 경기를 보여 주었다. ^^ 지난 해, 정현욱은 삼성 마운드의 보석이었다. 아마도 다른 구단의 팬들에겐 아직은 낯선 이름인가! 참 감동스럽게 만든 위의 이미지에는 몇 가지 그릇된 정보가 있다. (물론, 정현욱을 향한 작성자의 마음과 글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WBC 경기만을 다룬다면 대체로 옳은 얘기다. 허나, 한국의 프로야구에서까지 생각해 볼 때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정현욱이 불펜투수인 것은 맞지만, 이기는 게임, 지는 게임에 모두 출전하는 투수는..

Wow~! My Home ^^

아, 집이다. 나만의 공간. 자유로움이 있는 곳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성장이 일어나고 쉬고 싶을 때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나의 아지트. '아 좋다. 이제 내 세상이다. 이 것이 자유구나.' 오늘 두 시간 정도의 외출 후에 집으로 들어오며 문득 느낀 감정이다. 너무나도 포근한 느낌이었다. 이런 행복감은 나의 쉴 곳, 다시 말해 물리적인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생긴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선물해 준 것이리라. 그리하여 평범한 내 공간이 이리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오랜 해외 여행 후에 집에 왔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분명, 해외 여행 덕분에 집의 포근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설 때의 이 기분 좋음..

천국을 사는 비결, 감사

내가 학생 시절부터 다녔던 교회에는 몸이 불편한 형이 한 명 있었다. 뇌성마비로 인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어” 하는 소리 뿐이었다. 휠체어를 타지는 않지만, 그가 걷는 모습은 한 쪽 팔로 허공을 내저어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참 신기한 것은 나는 그 형이 찡그리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늘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기며 꼭 안아 주었고, 기도할 때에는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를 하던 형이었다. 물론 기도할 때에도 “어어” 하는 소리뿐이었지만 말이다. 한 번은 학교 앞에서(형의 집이 우리 학교 근처였다) 형을 만난 적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던 형은 함께 있던 여자 분을 형수님이라고 나에게 소개했다. 나는 아무개라고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