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정답

[짧은 소설] 여자 셋이 동네 카페에 모였다. 명품 빵과 맛난 커피로 유명한 이 곳은 Breakfast Time이란 메뉴가 있다. 6,500원만 내면 세 가지 종류의 빵과 세 가지 치즈 그리고 우유, 주스, 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 "드실 만큼만 맛있게 드시고 남기지 말아 주세요." 작은 안내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세 명의 여자는 시끄럽게 입장했다. 한 명이 팔을 들어 창밖을 가리키며 "주차는 저기 도로에 하면 돼요?" 라고 물었다. 필요 이상의 큰 목소리였다. 커피를 마시던 외국인 남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고객님, 카페 뒷쪽 주자창에 하시면 됩니다." 다시 주차하고 들어온 그녀는, 먼저 자리잡은 동행들과 합류했다. 두 명은 이미 빵 한 접시씩 들고오는 중이었다. 그때 젊은 여자 점원이 다..

내 호흡이 멈춘 그 날엔

막스 리히터의 '봄'을 들었다. 세상엔 듣자마자 빠져드는 음악들이 존재한다. 리히터의 ‘봄’은 단박에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듣고 또 들었다. 내리 한 시간을 이 음악에 바쳤다. 이후엔 눈을 감고 들었다. 조금 피곤하던 터였지만, 이 비범한 선율을 멈출 순 없었다. 외출 시각이 다가와 스피커 전원을 끌 때까지 두 시간 남짓 한 곡만 들었다.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처음 들었을 때는 감격했고, 네다섯 번 들을 때는 전율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하늘로 활짝 뻗었다.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깊게 호흡했다. 세상의 맑은 기운과 대지의 든든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다시 앉아 리히터가 빚어낸 예술을 듣고 있으려니 '이대로 잠이 들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

봄이 들린다

봄 - 막스 리히터의 을 듣고 대지가 호흡한다 하늘이 열리고 따사로운 기운이 선녀처럼 내려온다 봄이 자연을 등에 업고 다가온다 달팽이처럼 산골짜기에는 시냇물 졸졸 남녁에서 날아든 새들 찍찍 봄이 들린다 초목들의 미소 파스텔톤 세상 봄이 보인다 잎을 틔운 새싹이 방긋 마음 속 얼음은 사르르 플로라 여신의 지휘에 맞춰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훨훨

위대한 하루 프로젝트

하루는 작은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날마다 보내는 하루하루를 점점 닮아간다. 삶은 오늘의 축적이다. 하루하루를 잘 보내지 못하고서 멋진 인생을 창조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하루는 작지만 중요한 인생이다. 변화와 도약을 꿈꾼다면 하루경영에 초점을 맞추어 잘 보낸 하루, 만족스러운 하루를 쌓아가야 한다. ‘인생’은 사유하거나 컨트롤하기에 큰 대상이다. ‘멋진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하루’는 사유하거나 노력하기에 그나마 만만한 대상이다. 손에 잡히는 목표물이다. ‘잘 보낸 하루는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답하기란 비교적 수월하다. ‘위대한 하루 세미나’에서 만난 일곱 사람들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잠자리에서 만족감과 평안을 느끼는 하루,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가장 아름다운 선물

1. 일이 많아질 조짐을 느낀 하루였다. 낮에는 학습조직에 관한 워크숍 진행을 제안 받아 관련 미팅을 했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2박 3일짜리 워크숍을 서너 차례 할 수 있게 됐다. 최소한 두 차례를 진행하고픈 생각이다. 오랜만에 워크숍을 하면서 퍼실리테이터로서의 감각을 느끼고 싶기에. 저녁에는 '팔로워십'을 주제로 한 특강 의뢰를 받았다. 강연을 즐기긴 해도, 두 가지 모두 놀이가 아닌 '일'이다. 준비해야 하고 진행하는 데에도 시간을 써야 하는 일. (주제와 대상이 내게 맞춤한 강연은 내게 놀이다. 이번 강연은 새롭게 준비하고 개발해야 하는 영역이 많아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은 부담이다.) 3월의 일은 이 즈음에서 그만 받아야겠다. 공부와 놀이, 휴식도 중요하니깐. 2. "진다고..

지혜에 대하여

1. 양극적 사유야말로 지혜의 정점이다. 서로 상반되는 가치를 모두 알고 때, 장소, 사람, 상황에 따라 필요한 가치를 꺼내드는 힘! 계획과 즉흥의 장점들을 모두 담아야 좋은 여행이 탄생하고,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뤄야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 2. 양극적 사유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1) 하나의 가치가 좋다면 그것의 반대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사유해야 한다. (이를 테면 계획의 반대 가치로 즉흥을 떠올리는 것이다.) 2) 반대가치의 장점을 사유한다. 즉흥의 단점만 떠오른다면 다른 사람들 의견을 물어야 한다. 반대가치에도 반드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3) 계획과 즉흥의 장단점을 각각 파악한다. 이때, 즉흥성의 단점은 계획성으로, 계획성의 단점은 즉흥성으로 보완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3) 최종적으로는 지금..

원수

[짧은 소설] 성경공부를 진행하는 진수는 K를 미워했다. 말이 길고 많았다. 분위기 파악도 못했다. K로 인해 다른 멤버들의 발언 기회가 줄거나 마쳐야 하는 시간을 넘기곤 했다. 진수는 열 받으면서도 K의 발언을 적절하게 제어하지는 못했다. K의 말이 끝나면 얼른 끼어들어 다른 멤버들에게 발언권을 넘기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진수는 K만 없으면 더욱 분위기 좋은 성경공부 소그룹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K는 가장 높은 출석율을 자랑했다.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던 진수에게 문자가 왔다. "진수오빠, 제가 이번 주 성경공부 참석을 못할 것 같아요. 저희 언니 결혼식이라 고향에 내려가야 해서요. 아쉽지만 다음 주에 뵐게요." 진수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이번 주는 최고의 성경공부 시간이 되겠구나.' 진..

감수성

[짧은 소설] 여자는 남편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알아 차렸다. 아이의 말투를 읽을 줄도 알았다. 때때로 달빛에 홀려 추억에 물들고 빗소리에 젖어 음악에 취했다. 여자는 홀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시원한 풍광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한다고 여겼다. 자신의 생각을 알고 세상살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말수가 줄었다. 그들을 이해하기에 바빠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상황을 헤아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발동되었다. 이해하기에 능숙해진 이들도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것도 섬세하고 정확하게 이해받기를 원한다. 정확한 이해는 드물었다. 여자는 외로워졌다. 그녀는 소통을 위해 바늘을, 상대는 두툼한 몽둥이를 내밀었다. 접점이 있었지만 교감은 충분치 못했다...

교보문고를 애용하는 이유

"금요일 저녁에 시간 되나? 안 봤으면 초대 티켓 하나 남았는데 같이 가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초대' 티켓이라는 말이 부담 되었다. 무료니까 어떤 행사가 덧붙여질 가능성이 있으리라. 위안부 실화를 담은 영화이니 공익 행사나 기부 순서가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시간 내고 돈 낼 바에는 내 돈 들여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친구 지인들도 함께하는 자리라고 하니, 더욱 꺼려졌다. 나는 확인 문자를 보냈다. "영화만 딱 보고 오는 건가? 끝나고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정해진 게 없으니 너 편한 대로 하면 될 듯." 그다운 대답이었다. 나처럼 까탈스럽게 사전행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달리 나는 초대에 응했다. "영화 보고 ..

젊은 할머니

[짧은 소설] 진숙은 골프 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액정에 "내딸"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이내 미소가 맴돌았다. "엄마,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예원이 잠깐 봐 줄 수 있어?" 딸은 언제나 '잠깐'이라고 말했지만 언제나 잠깐이 아니었다. "몇 시간이야, 구체적으로 말해." 반가운 투정이었다. 회갑을 넘긴 동네 언니들은 자꾸 봐 주기 시작하면 발목 잡힌다며 신중하라고 조언했지만, 진숙은 손녀딸을 잠시 봐 주는 게 싫지 않았다. 할미가 된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손녀딸을 보고 있으면 다시 젊은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알았어. 엄마가 2시에는 나가야 하니까 그 전에만 와." 연습장에 도착한 진숙은 몇 차례 스윙을 휘두르다가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