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오늘 나는 아르키메데스다

1. 나는 배움을 즐긴다. 즐길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주, 많이, 부지런히 배운다. 배움은 나의 일상이다. 신형철은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썼다. 그 말을 부러움이나 절망감 없이 멋지다고 여겨왔다. 정말 그의 삶이 부럽지는 않았다. 읽고 쓰는 즐거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는 여행, 만남, 와인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철의 푯대를 향한 듯한 헌신적 모습을 갈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오롯히 하나의 우물을 파는 느낌이라면, 나는 산만하게 들쑤시고 다닌다. 2. 엊그제 (2014년 1월 5일자) 신문을 읽다가 '울리히 벡'의 부음 기사를 읽었다. 『위험사회』라는 저서로 유명한 사회학의 거장 벡은(1944~2015)은 산업사회를 성찰..

애호가로 산다는 것

나는 애호가다. 애호가와 전문가는 다르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애호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호가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다. 지식은 위대한 애호가가 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보통 수준 이상의 애호가가 되는 데에는 좋아하는 열렬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대체 무엇을 만나는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듯하나 실제로는 숱한 사물과 풍경을 만난다. 사전의 정의로도 만남은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눈앞에 대하다’는 뜻도 가졌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안경부터 만난다. 이후엔 방안의 풍경을 만나고, 곧이어 한 잔의 컵과 그 속에 든 물을 만난다. 곧이어 음식을 만난다. 출근하기 위해 옷을 만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다큐멘터리 영화다. 주인공은 에도 출연했던 노부부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는 영화 관람이지, 다큐멘터리 시청은 아닐 것이다. 대자연을 찍은 다큐멘터리라면 모를까 TV 시청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 시골 배경의 노부부가 등장하는 다큐를 나는 왜 극장까지 가서 보는 걸까?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에 머리를 스쳐지나간 질문이었다. 영화는 제목과 포스터가 스포일러다. 사별의 고통이 주요한 서사임을 대놓고 드러낸다. 타격은 아닐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서사가 아니라, 리얼리티일 테니까. 이 영화를 찾은 이유를 생각하니 세 가지였다. 죽음의 리얼리티를 기대했고, 다정한 노부부가 죽음을 맞는 모습이 어떠할지 궁금했고, 할머니의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나의 애도 현황을 성찰한다면 보너스고...

2015년을 향한 포부와 결심

어제 식사를 건강하게 먹고 밤새 잘 잔 덕분인지, 새해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했다. 몸은 가벼웠고 기분이 좋았다. 새해에 가장 먼저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식사를 살뜰하게 챙겨 먹었다. 희망찬 기운을 품고 한 해의 소원도 계획했다. 책상 정돈을 하면서 기분이 더욱 맑아졌다. 아프지 않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산뜻하게 시작한 오늘 하루가 며칠 동안 노력한 결실이라 생각하니, 은근히 기뻤다. 『잠의 사생활』은 수면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문헌을 탐구하고 전문가를 취재한 결과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내가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배운 가장 귀한 교훈은 잠을 잘 자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결론이지만, 어디 잠만 그런가. 건강, 행복, 친밀함, 사랑 ..

새벽에 문득 애도 한 움큼

1. 새벽 한 시가 넘었으니, 이성이 쫑알거리기 시작한다. '어서 자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일 헤르페스 각막염이 재발할지 몰라.' 머리가 마음을 두드렸지만 마음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머릿 속 자야 한다는 생각은 오른쪽 눈에 느껴지는 옅은 이물감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성의 목소리보다 감성의 끌림에 나의 밤을 맡겼다. 넬, 허각, 에픽하이가 내 방에 선율을 채워 주고 있다. 오늘 배송된 책 하나를 펼쳤다. 『소설이 필요할 때』. 표지에는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라는 문구가 적혔다. 목차가 간단하다.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목차가 하나 뿐이다. "세상 모든 증상에 대한 소설치료법 A to Z". 삶의 상황별로, 무려 751권의 소설을 화끈하게, 제안하는 책이다. 이런 식이다. - ..

뛰어난 학습자가 되는 길

수잔 손택은 제게, 비평이 얼마나 멋진 작업이고 에세이가 얼마나 지적이고 유려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를 읽으며 명료함에 감탄했고, 『우울한 열정』에 실린 롤랑 바르트 추모글에 무릎을 쳤습니다. 그녀가 ‘존 굿맨’을 사모했던 에세이는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감수성과 지성을 겸비한 탁월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손택의 사망 3주년 기념 평론집 『문학은 자유다』 프롤로그에서,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를 이리 표현했습니다. “어머니는 찬미에 뛰어났다. 숭배는 어머니의 제2의 천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숭배의 달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존 굿맨’에 관한 글에는, 오랫동안 한 작가(굿맨)의 모든 글을 읽어 온 충실한 독자(손택)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숭배한다는 것은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

나의 초상 (9)

1. 사랑하는 후배의 아내가 어제 첫 아이를 출산했다. 소식이 담긴 카톡창에 아가의 사진이 올라왔다. '왜 모든 태아는 못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증발했고, 나는 그 사진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책상에서 일어나 작업실을 서성이며 울었다. 기쁨과 처연함의 눈물이었다.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잘난 녀석이니, 당연히 처자식 잘 챙기고 가장 역할을 잘 해낼 텐데, 나는 그 당연한 일이 천금처럼 감사했다. 순간적이지만 정말 천금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왜 울까? 기쁨만은 아닌 것 같아, 이유가 궁금하여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눈물을 머금은 사내가 보였다. 태아처럼 못 생긴 얼굴, 낯설다. 눈물이 기쁨 뿐만 아니라, 처연함으로부터도 온 것이란 것을 알았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구나,..

자기다움을 위한 마지막 부탁

여전히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기다움은 소원과 의무를 조화시켜가는 노력에서 발견되는 과정일 뿐 완성은 없다.” 자기다워지려면 마음 속 '소원'과 관계 속 '의무'를 생각하고 실천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용기’를 내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사랑’을 발휘하여 해야 하는 일을 완수하다 보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하나씩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시도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성찰, 실천, 공부입니다. 1) 올해가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성찰’하세요. 2) 성찰꺼리를 하나씩 ‘실천’하세요. 이것이 자기다움의 여정입니다. 3) 자기다움에 필요한 가치, 용기와 사랑을 ‘공부’하세요. 용기는 주체적 자아를, 사랑은 관계적 자아를 완성하..

봄꽃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

어제 받은 두 통의 메일이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금 울먹이기도 했다. 전자우편을 보내신 분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셨지만, 메일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이틀 전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친구 잃은 상실감을 담은 글을 썼다. 두 분은 나의 상실감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셨다. 비결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셨다. 한 분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내 친구"를 사고로 떠나보냈다. 다른 한 분 역시 "마음에 늘 첫째였고 유일함이었던, 많이 사랑했던 친구"와 어느 날 갑자기 사별하셨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사람은 두 문장을 읽고서 울컥하거나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우정의 상실이 얼마나 크고 어떠한 고통인지 잘 알기에. (지..

어떤 기록은 나를 경영한다

요란한 날씨로 시작된 12월이다. 아침에는 눈이 제법 내리더니 정오 무렵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오후에는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는데, 화창한 하늘 사이로 가는 눈이 내렸다. 추위는 이 모든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종일 위력을 떨쳤다. 날씨처럼 하루 동안의 내 마음도 요동쳤다. 마음편지를 보내고서는 기분이 좋았고, 그 편지에 대한 회신을 받고서는 눈물을 글썽였다. 와우팀원의 블로그 컨설팅 후에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예비 와우의 마음 아픈 일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일 만날 이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가도, 바쁜 주간임을 알려주는 이번 주 스케줄 표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사사건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을 적어본다. 느긋하게 내 일상을 만지고 다듬기 위해. 내게, 기록은 만병통치약이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