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 118

일행들과 헤어지다

일행들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 10시. 일급(!) 호텔에서 나와 잠시 서성였다. 이제 몇 분 후면, 일행은 떠나고 나는 남을 것이다. 묘한 기분이다. 내일부터는 저렴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덤덤한 기분이다. 아마도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한국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예상이 다 빗나가는 날이 더욱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여행자니까. 낯선 이곳에서 느끼고 성장할 테지만, 9일 동안 함께 했던 이들이 가면 한동안 허전할 것 같다. 처음 나의 생각은 호텔에서 헤어지는 것이었다. 공항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건 조금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나 한 사람 빠지는 것이니 일행들과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싶었다. 머리 속에는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서 만났던 가이드..

옛사랑을 추억하다

오파티야에서의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호텔 레스토랑에서 When a man loves a woman이 흘러나왔다. 영화 의 테마곡이었던 노래. 잔잔히 깊어지는 러브 스토리가 참 아름다웠던, 그래서 눈물 한 방울 툭 떨어뜨리며 보았던 영화. 나에게도 맥 라이언과 같은 귀여운 그녀가 있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그녀와는 2년 동안 사귀었다. 다투기도, 추억도, 즐거움, 배움도 많았다. 그녀는 나의 걸음걸이를 보면 신이 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자신감에 넘치는 걸음걸이라고. 여행의 닷새 째 저녁에는 이렇게 옛사랑이 생각났다. 오빠티야에서의 밤은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며 홀로 해변 상점가를 걸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기에 또 한 번 뒤늦게 아파한다.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을 추억하며 잠시 슬픔을 느껴..

모자 세탁하기

어젯밤 세탁한 모자는 밤 사이 불어 준 바람 덕분에 잘 말랐다. 깨끗한 모자를 보니, 그 모자를 쓰고 여행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은 이른 새벽이 아니라 전날 밤부터 시작된다. 잠들기 전의 시간이 중요한 까닭은 새 날을 열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은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무리이지만, 시작 없이는 마무리도 없기에 그렇다.) 어젯밤 모자를 세탁한 것은 오늘 즐거운 여행을 위한 좋은 준비였다. 잠들기 전, 누군가를 향한 분노나 세상의 어두운 면을 향한 우울함을 떨쳐 내고 잠드는 것은 새로운 하루를 맞기 위한 좋은 준비다. 분노나 나쁜 생각을 품은 채 잠들어서는 안 된다. 다시 생각하자. 다르게 생각하자. 그리하여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자. 밝은 면을 보..

삶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 넷째 날이 되니 빨랫감이 하나 둘 생겼다. 볼(BOL) 해수욕장에서 입어 소금에 절은 수영복을 얼른 빨아야 했다. 게다가 수영 가방 안에 들었던 맥주캔이 찢어지는 바람에 수영복과 수건 등이 몽땅 맥주에 젖기도 했다. 조금 피곤했지만, 호텔 욕실에서 빨래를 했다. 여행은 관광과는 다르다. 해야 할 일이 생겨나고 스스로 해내야 한다. 4박 5일 정도의 짧은 일정이라면 집으로 돌아가서 빨래해도 될 테지만, 50일이 넘는 긴 여행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빨래를 해야 쾌적한 여행을 지속할 수 있다.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삶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기에, 짧지 않은 여행이기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꼭 해야 하는 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생의 지혜다. 어떤..

스승과 함께 수영하다

여행 넷째 날 새벽 여섯시 삼십 분. 아드리아의 해변에서 책을 읽고 싶어 책 한 권, 노트 하나를 들고 나갔다. 바다의 고요한 아침은 책 읽고 사색하기에 최적이었다. 햇살이 뜨겁기 전의 해변이라 시원하기까지 했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유명한 '디오크레시아'의 궁전이 있는 곳이다. 로마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렇게 오후에 방문할 곳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중, 선생님이 오셨다. "굿 모닝! 너 여기 계속 있을 거지?" 나의 짧은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옷을 하나 둘 벗으셨다. 잠시 후, 선생님은 아드리아 해를 가르며 바다로 향했다. 나도 선생님을 따라 함께 수영을 하고 싶어졌다. 또 샤워를 해야 하고, 젖은 옷을 세척해야 하는 수고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수영을..

첫인상 in 자그레브

시차 때문인지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 둔 덕분인지 새벽 4시 30분에 깼다. 좀 더 잘까 하다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책과 노트북을 들고 호텔 로비에 나갔다. 책을 읽고 싶었고, 혹 뭔가 정리해 둘 것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동유럽에 관한 책에서 크로아티아에 대한 부분만 찢어 온 부분을 읽었다. 열장 남짓 되는 페이지를 읽었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 크로아티아. 이것이 책이 말하는 요지였다. 5시 30분, 호텔 밖으로 나왔다. 자그레브 시의 새벽 거리는 조용했다. 아직은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이 어떠할지 상상할 수도 없고, 자그레브 시의 새벽 거리를 걸으면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크로아티아는 1996년까지 격렬한 내전을 겪은 나라다. 유고 연방이었다가 종교와 인종 갈등으로 1991년 독립을 선언했다. 독..

여행은 자세히 보는 것이다

비행기는 독일 영공을 날아간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바라본 독일은 대한민국의 그것과 똑.같.았.다. 빛나는 태양, 두둥실 떠 있는 구름. 프랑크푸르트에 가까워지자 비행기의 고도가 좀 더 낮아졌다. 2.5Km의 하늘에서 바라본 독일은 대한민국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넓은 논밭, 그리고 숲과 들. 착륙하게 될 공항에 가까워지자 집이며 자동차며 도로가 장난감처럼 보였다. 이것 역시 대한민국과 비.슷.했.다. 현실감은 없었고, 세심히 바라볼 수도 없었다. 공항에 내려 사람들을 보니 이제야 현실감이 느껴지고 대한민국과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된.다. 사람들의 눈동자 색깔이 다르고 공항의 이정표가 다르다. 이정표에 쓰인 언어도 확연히 다르다. EXIT 라는 문자 위에는 'Ausgang'이라는 독일어..

보보, 유럽에 왜 가나?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오스트리아 - 체코 - 독일 - 프랑스 보보는 8월 6일, 유럽여행을 떠난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을 남부럽지 않게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이번 기회로 인해 서양에 관한 지식을 좀 쌓고자 하는 포부를 안고서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일 것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될 이번 여행이기에 나는 마음을 비웠다. 유럽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으니 마음을 비워야 했고, 비우고 나니 그나마 떠나는 마음이 가볍다. 준비한 것이 없으니 아마도 가방도 가벼울 게다. 아이고야. 내일 떠나는데 가방도 안 쌌네. ^^ 이것이 보보 스타일인가 보다.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다. 따라 하기에는 너무 즉흥적이고, 여행 준비라고 할 게 없을 만큼 불성실하기에. 즉흥적이고 불성실한 ..

또 하나의 실험

덜컥. 한 달 반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의 유럽 항공권을 끊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륙이라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얼마의 비용이 들지, 어떤 곳을 여행할지는 전혀 생각치 않았었다. 요즈음 그 여행에 대하여 비용을 헤아려보고 여행 루트를 결정하는 중이다. 나의 성향에 따라(^^), 아주 엉성한 계획이고 대충 잡은 계산이다. 덜컥. 대충 어림잡은 계산만으로도 겁이 났다.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 모든 비용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다. 사고를 친 느낌이었다. 여행 일정을 너무 길게 잡았다는 생각, 뭔가를 좀 알아보고 움직이지 못함에 대한 후회 등이 나를 방문했다. 나는 그 손님들을 정중히 모셨다. 나 자신과 상황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후회'라는 손님을 모셨지만 나..

여행은 생각의 산파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83) [글을 읽기 위한 도움말] 보보는 중국의 항저우로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항저우 : 중국 상하이 근처의 유명 관광도시. 중국 최대의 인공호수 서호(西湖)로 유명. 소제춘효(蘇堤春曉) : 서호 10경 중 제1경. 서호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