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 118

부유한 여행이 시작되다

"배낭여행은 저렴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 근거를 알 수 없는 명제가 지금까지의 여행을 지배해 왔다. 물론, 나는 인내심이 강하지 못하고 절제력도 없어 처절한 배낭여행의 근처에도 못 간다. 그러나, 보다 저렴한 비용을 위해 노력은 했다. 베를린에서는 13유로짜리 8인실 도미토리에 묵고 있고, (내일은 16인실 10유로 60센트짜리로 옮길까 고민 중이다.) 30분 전에는 코카콜라가 그리도 먹고 싶었는데, 50센트 저렴한 '카카오'라는 이름의 음료를 구입했다. 그러다 보니 최초 예산보다 비용을 절감했다. 저렴한 배낭여행은 좋은데, 위의 명제를 지키려다 보니 종종 자유가 구속당한다. 콜라를 먹고 싶은 자유, 맛있는 빵을 먹고 싶은 자유 말이다. 오늘부터 비용보다 자유를 우위에 두기로 결정했다. 사실, 대부분..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

in Hambrug 8월 26일 오후 7시 35분 도착 8월 28일 오후 9시 21분 떠남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 Dammtor 역에서 내렸다. 동물원으로 가려면 조금 더 가야하지만, 트램의 바깥쪽으로 보이는 함부르크 대학의 이정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Dammtor 역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여행책자에 함부르크 대학에 대한 안내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 가야할 이유를 가졌다. 세상에 가볼 만한 여행 장소를 추천하는 정보는 넘쳐나지만, 꼭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오늘 나의 여행은 즐겁다. 나는 드러커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함부르크에 왔다. 그가 다녔던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갈 것이다. 이 하나의 이유로 방문한 함부르크다. 역에서 나온 나는 캠퍼스가 있을..

숙소

in Hambrug 8월 26일 오후 7시 35분 도착 8월 28일 오후 9시 21분 떠남 숙소 샹첸슈테른 게스트하우스 Schanzenstern Gasthaus. 함부르크의 중앙역에서 S 트램을 타면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Sternschanze 역이 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샹첸슈테른이 있다. 나는 아직도 역과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헷갈린다. 허나, 호스텔에 대한 이미지만큼은 잊지 못한다. 다른 호스텔과 헷갈리지도 않는다. 베테랑 여행자들은 숙소 정하기에 대한 나름의 원칙이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도심 한가운데로 정하여 시간과 교통비를 절약하는 이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잠만 자는 곳이니 무조건 저렴한 곳으로 정하는 이들, 안전과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도미토리보다는 3성급 이상의 호텔로 정..

일 년 동안의 배낭여행이라구요?

여행 친구들 이야기 (2) 일 년 동안의 배낭여행이라구요? 베토벤 동상 앞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한 여인이 여러 각도에서 동상 사진을 찍더니 내 옆의 벤치에 와서 앉았다. 곧바로 다른 명소로 이동하지 않고 말이다. 내가 베토벤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더니 활짝 웃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베토벤 음악을 들어보길 권하며 MP3를 건넸다. 그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놀랍게도 많은 얘기를, 다소 깊이 있게(?) 나눴다. 영어권 나라의 사람이 아니어서 좋았다. 쏼라쏼라 좌악 쏟아내지 않고 나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말해 주었으니. ^^ 그녀(이하 E)는 24살의 일본 청년이다. 지금은 배낭여행 중인데, 무려 일년 동안의 일정이라..

베토벤 동상 평균관람 시간

- 8월 16일 (주일) 오후 베토벤 동상을 바라보며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작은 터에 세워진 동상 하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은 많지는 않았지만 끊이지도 않았다. 두 명, 세 명 등의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일단의 그룹이 온 적은 없었으니 아마도 가이드는 이 곳이 변변찮음을 알고 있으리라. 동상 앞에서 몇 십 분을 앉아 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이들의 평균 관람 시간은 3분이었다. 이들은 이 곳에 와서 잠시 동상을 바라보고 난 후 (혹은 이것도 생략하고) 동상 앞에 서서 사진을 두 어장 찍는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머물다 가서 몇 팀의 시간을 재었더니 3분이었다. 5분을 넘기는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다. 베토벤 동상은 오른쪽으로 고개..

멋진 외모, 부드러운 매너남 J

여행 친구들 이야기 (1) 멋진 외모, 부드러운 매너남 J 8월 14일 금요일 오후 6시, 빈에 도착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기차역에 있을 I(information)에서 숙소 리스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호객꾼들 몇 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가방이 무겁다는 것만이 골칫거리였다. 허나, 나는 두 시간 넘게 숙소를 찾느라 고생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I에서 얻은 호스텔 리스트는 지도에 표기된 리스트가 아니라 그냥 사진과 주소만 나와 있어서 찾기 힘들었고, 기차역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다가오는 호객꾼들이 없다. 결국 기차역 근처를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보기로 했다. 역시 가방 3개가 꽤 무겁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근처에 있는 호스텔을 알지 못했다. 결국, I에..

사랑을 희망하다

-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이정석의 노래 '사랑하기에'가 시작되었다. 여행 단상을 정리 하던 나는 노랫말이 나오자마자 얼어 버렸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 '얼음'이 되어 버린 것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의 푸르른 싱그러움이 빗물로 인해 더욱 진해졌다. 이것은 창밖의 풍광이 보일 때다. 내 곁에 머물던 그녀를 생각한다. 어쩌면 나를 좋아했는지도 모를 그녀를. 나를 초대해 준 그녀의 마음이 고와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뻐서 때로는 손을 잡아 보고 싶었고 때로는 꼬옥 안아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었고 그녀를 아껴주고 싶었던 게..

정리 정돈에 대한 단상

- 여행 둘째날. 8월 14일(금) 류블랴나에서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정리는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남은 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오늘은 정리 정돈에 대한 생각이 정리 정돈되었다. 1. 일행과 헤어지면서 가방이 두 개 더 생겨났다. 몸을 힘들게 할 만큼 짐이 무거워졌다. 더해진 가방 안에 든 것들은 먹을거리 혹은 소모품이기에 며칠만 고생하자는 생각으로 들고 다니는 중이다. 짐을 하루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류블랴나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였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디면 그만이지만, (꽤 힘들긴 했다) 무게를 감당하느라 풍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이 뻐근한 어깨보다 더욱 속상했다. 류블랴나 역으로 10여 분 동안 걸으면서 본 것은 신호등과 멀리 보이는 기차역 ..

Live 여행이 시작되다

- 여덟째날 (8월 13일 목요일) 홀로 남겨진 류블랴나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내렸다. 아마도 스탕코(운전기사)가 다운타운에 내려 주었으리라. 그러니 시내 중심 어딘가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도로에는 BUS 전용 차로를 알리는 글자가 쓰여 있다. 알 수 있는 문자라서 반갑다. 건물에 쓰인, 이정표에 쓰인 다른 모든 글자는 낯설다. 'Ljubljana(류블랴나)'라는 글자만이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텍스트다. 건물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매혹적이고 고독하다. 매혹과 고독은 내 여행을 설명하는 좋은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혹은 일상의 여행자들에게는 나의 유럽 여행은 매혹적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많은 부분 매혹적이다. 허나, 그것이..

한가로운 여유 만큼이나 좋은 것들

"한가한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네. 내 경우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책을 읽지.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집중적으로 말이야."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p.16 마음이 급해진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오늘 둘러보아야 할 명소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역사와 번영의 자취가 남아 있는 '호프부르크'이다. 나는 3~4시간 동안 넉넉하게 둘러보고 싶었기에 오늘 하루를 아주 일찍 시작하려 했다. 호프부르크와 카푸치너 교회, 쇤부른 궁전까지 둘러보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허나, 이 계획은 변경되었다. 나는 어젯밤을 빈의 어느 '호이리게'에서 만난 Halek 부부의 집에서 묵었고, Kerin Halek과 이야기하느라 오전을 몽땅 보냈기 때문이다. (호이리게 : 자체 소유의 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