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 24

어느 자격지심자의 고백

- 2015년 11월 07일 나는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이다.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달성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의 목표를 모조리 공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달성 못할까 부끄러웠고(걱정을 사서 하다니!), 나의 사적 영역을 남겨 두고 싶기도 했다(대단한 것도 없는데!). 목표는 내게 자극을 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자기경영을 추동하는 글에서 목표를 여러 밝히긴 했지만, 일부의 것을 숨겼다. 날것 그대로가 아니었다. 글을 공개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쓴 글을 A, B, C로 구분하여, 주로 B급을 공개한다. 포스팅과 마음편지 용의 글들이다. A급은 집필용이다. 처음부터 세상에 내 놓을 요량으로 썼거나, 쓰고 나니 매우 마음에 드는 글이 된 경우다. A급은 ‘언젠가’ 책..

이해가 찬탄을 부른다

이해가 찬탄을 부른다 - 『그리스인 조르바』 독법 하나 순진한 이상주의자는 어두운 현실을 곧잘 외면한다. 꿈을 추구하다가도 현실적인 문제가 나오면 절망하거나 힘들어한다. 이상성을 실현하지 못한 채로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 이상성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지혜로운 이상주의자는 진흙투성이 현실 속에서 이상의 꽃을 피워낸다. 경멸스러운 현실이더라도 직면하여 그 속에서 삶을 일군다. 조르바는 자신의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이상주의자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는 사람 볼 줄을 알기에, 조르바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매료된다. 사람을 믿어야 하는가. 조르바와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나'는 자신에게 고용된 인부들을 이해하고 애정하려고 애썼다. 갈탄광이 성공하면 그들과 형제처럼 지내려는 계획도 세..

성찰과 피드백

[짧은 소설]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불성실하게 준비한 학생과 열심히 노력한 학생의 점수 차가 크지 않았다. 선생은 ‘불성실’에게는 훈계를, ‘노력’에는 칭찬을 전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험 문제의 변별도가 떨어진데다가 불성실한 학생과 노력한 학생들로 구분되기보다는 한 학생에게 불성실과 노력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생은 한 명 한 명에게 칭찬과 훈계를 모두 주었다. 스스로를 성찰하여 노력했던 대목은 기뻐하고 부족했던 점은 반성하기를 바랐다. “성찰할 때 성실한 대목마저 싸잡아 자격지심의 재료로 삼지 마세요.” 선생의 의도와는 달리, 학생들은 타고난 기질대로 칭찬과 훈계 둘 중 하나만 받아들었다. 시험 준비에 불성실했던 학생, 자격지심을 주된 정서로 느끼는 학생, 어렸을 때부터 잘했다..

욕망이 소멸되는 시간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찢긴 구름은 천천히 대지 위를 달리며 그림자를 대지 위에 부드럽게 드리우고 있었다. 한 떼의 구름이 하늘 저쪽에서 일어났다. 태양이 구름 뒤로 들어갔다 나옴에 따라 대지의 표정은 살아 있는 얼굴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했다.”(p.39)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만난 구절이 1박 2일 영주로 다녀왔던 가을 여행을 상기시켰다. ‘아! 이번 여행에서는 가을 하늘 한번 쳐다보지 못했구나.’ 나는 15명이 함께 떠난 여행의 가이드였다. 후속 일정을 생각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사람들을 챙기는데 관심을 두느라 홀로 느긋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쉬움이 아니다. 나의 정열의 부산물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다르다. 홀로 떠난 여행은 사유할 시간을 듬뿍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