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547

어떤 언어를 잘하고 싶나?

1. 칸트냐, 헤겔이냐? 오래 묵은 질문이다. 사유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사숙하고 싶은 철학자들이 있다. 니체는 다른 철학자와 사상적으로 양립할 수 있다. 칸트를 택하든, 헤겔을 택하든 니체는 계속 읽어갈 것이다. 칸트와 헤겔은 선택을 강요한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저들을 알지 못하니 선택할 수 없다. 이제 칸트와 헤겔을 공부할 때가 왔다. 피상적이나마 철학사를 살폈고, 스스로 끌어올린 화두도 품었으니. 2. 젊은 날에 어학 공부를 해 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앞으로도 종종 아쉬워할 것이다. 그만큼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아직 내가 젊다는 사실도 안다. 심정으로는 이십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더욱 눈길이 가지만, 이성으로는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을 때가 지금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십년 ..

자기돌봄이 진실한 섬김을 낳는다

1. 일주일 만에 집에 왔다. 전국(全國)까진 아니어도 나라의 반(半)은 돌아다닌 느낌이다. 쏘다닌 거리도 만만찮지만, 그보다는 이곳저곳을 잇달아 다닌 탓이다. 교육과 병문안이 뒤섞인 일정이었다. 즐거운 여행만으로 채워진 일주일이면 얼마나 좋았으랴. 지금 나는, 평범한 날들이 어찌나 그리운지! 가족과 친구들 중 아픈 이들이 없고, 큰 성취가 없더라도 큰 상실이나 실패도 없는 보통의 날들! 내 몸 아프지도 않고 마음이 어지럽지도 않은 날들! 시간은 흐른다. 머잖아 다시 그런 날이 찾아들면 힘껏 안아줘야지. 2. 짬날 때마다 이병주 선생의 소설 『정도전』을 읽었다. (선생은 『정도전』『정몽주』『허균』 등의 역사소설을 남겼다.) 틈나는 시간에 밀린 일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에너지는 없었다. 독서는 에너..

심란한 날을 사는 법

1. 동대구행 열차에 앉아 있으려니 눈물이 난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힘겨움이 있을 터, 나도 마찬가지다. 자기 힘겨움을 넘어설 노하우를 갖지 못한 이의 삶은 고달파진다. 나의 위로자는 글쓰기다. 글을 써야만 넘어설 정도의 아픔은 아닐지라도, 오늘은 열차 안에서 노트북을 열어야 했다. 몸이 피곤했지만, 뭐라도 써야 했다. 2. 힘듦을 토로할지라도 도와달라는 뜻은 아니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글쓰기’라는 치유자에게 손길을 내민 것뿐이다. 글을 시작할 때에는 복잡하던 심경이 글을 맺을 때에는 한결 나아질 때가 많으니, ‘심경복잡’을 두고 나를 걱정할 일도 아니다. 살다가 잠시 힘들었음을 기록하고 싶을 뿐. 3. 좋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말벗이 되는 이들이 있기에 인생이라는 여행이 ..

인생 무상의 세 가지 결말

4월에 스무 명 남짓 되는 지인들과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섯 대의 차량에 삼삼오오 나눠 탑승했더니 오가는 길에서도 즐거운 대화가 가득하더군요. 제가 운전한 차에는 이십대 청년 셋이 탔습니다. 안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이 묻더군요. 어떻게 하면 그리 멋지게 살아갈 수 있냐고 말이죠. 쑥쓰럽지만, 제가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누구나 다른 이의 일면만을 볼 뿐이고, 젊음은 종종 사람을 서둘러 판단하기도 하지요. 여튼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인생을 각성 상태로 사는 것 같습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깨어있음의 상태라고 할까요. 저는 인생이 정말 좋고, 한날 한시가 정말 소중하여 시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어요. 치열하게 살려는 마음이 가득한 겁니다. 각박한 삶..

편안함을 지양하려는 이유

글쓰기를 주제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세요. 어렸을 적에 작가가 되는 게 꿈이셨대요.”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지금은 어떠신지 물었다. “그렇잖아도 저도 글을 좀 쓰시라고 권했거든요. 블로그 같은 것도 운영하시면 재밌을 거라고. 근데 싫으시데요.”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 아등바등 살기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편하게 지내고 싶으시데요.” 자당의 말씀은 십분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도 요즘 부쩍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하는데, 연배가 스무 살이나 많으신 중년 부인이야 오죽하랴. 나도 많이 달라졌다. 이상을 품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몸과 마음 편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며 안주하거나 현실과 타협할 때가 많다. 나만 그러..

[5월의 3대 뉴스] 아, 정도전!

1. 드라마 을 사랑하다 한 달 새 서른다섯 편의 드라마를 시청했다. 최고의 정통역사 드라마 !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빠른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갈등 그리고 역사인물의 생생한 부활, 작가와 연출자는 이 모든 요소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듯했다. 매우 재밌게 역사공부를 한 느낌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고증이 약해진 느낌인데, 정말 그러한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드라마 은 50부 예정이란다. 드라마는 끝나지만, 드라마의 영향은 내 일상에 남을 것이다. 요즘 틈나는 대로 조선사를 공부 중이다. 조선사 전체를 훑을 생각이나, 여의치 않더라도 개국과 조선 전기까지는 정리해 두고 싶다. 정몽주, 정도전, 이성계를 공부하며 삶의 교훈을 얻을 생각이다. 드라마의 전반부를 지배했던 이인임의 명언..

배려는 감수성의 발현이다

지인이 부모님과 함께 제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모님께 드린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배려의 힘겨움과 중요성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그녀가 쓴 여행기를 요약해 봅니다. "첫날은 여행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지만, 계획했던 여러가지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인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내 기준에서 좋은 것들은 부모님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첫 식사는 비빔밥집 였다. 지난 와우투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맛났던 메뉴이고 정성껏 차려졌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하지만 엄마는 추어탕만 맛나게 드시고 비빔밥은 거의 드시지 않았다. 원래 비빔밥을 좋아하시지 않았던 것. 저녁메뉴는 계획을 바꿔 엄마가 원하시는 메뉴로 갈치조림을 선택했는데 두 분 모두 국..

좋아하는 시간대가 언제입니까?

하루 중에서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시간대가 있을 겁니다. 나는 점심식사를 마친 후의 한 두 시간을 싫어합니다. 나른해져서 활기가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대책은 두 가지. 1) 점심식사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 (가능하다면 점심 약속을 13시에 잡는 편입니다.) 2) 짧은 낮잠을 취하는 것. (저는 15~20분짜리 오침을 즐기는 편인데, 낮잠이 주는 신체적 회복에 자주 놀라곤 합니다.) 23시 이후의 밤 시간대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던데, 저는 야밤이 조금 부담스럽더군요. 얼른 잠자리에 들어 이튿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약간의 죄책감이 듭니다. 죄책감까지 들 필요는 없는데, 아마도 도덕적이고 의지력을 강조하는 청교도적인 자기경영을 추구했던 때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사소한 습관은 없다!

1.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을 때였다. 샤워를 하겠다던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 나왔다.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틀어 놓았기에, 물음을 던졌다. "물은 왜 틀어놨어?" "그러면 따뜻해지거든." 공기가 더워지면 옷을 벗어도 춥지 않다는 이유였다. 친구에겐 절수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3~4분 동안 뜨거운 물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나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추운 날, 내게 일어난 일이다. 샤워를 하려는데, 화장실 공기가 서늘하여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서 샤워 문을 닫고 나왔던 것! 거실에 나와서야 무얼 했는지 인식하며 기겁했다. 얼른 들어가 물을 끄고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맞으며..

사람이 좋으면서 혼자이고 싶다

창경궁 돈화문 건너편에는 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 값이 다소 비싼데도 정갈하고 예쁘게 나오는 차림을 보고서 매료된 곳입니다. 생맥주에 곁들여 마른 안주를 차려놓은 모양새, 와인에 과일을 절여 만든 음료의 예쁜 빛깔 등 주문했던 모든 메뉴가 제 값에 걸맞는 위용을 뽐내었습니다. 지난 주, '서양문학사'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과 함께 에 갔습니다. '세계사' 수업도 들으셨던 분들이고, 와우도 있어서 제겐 무척 편안한 자리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지금 여기에 혼자 있으면 참 좋겠다.' 말없이 가만히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신뢰해 주는 분들이라 그윽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요.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였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