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눈이 밝아지고 깨어 있다면

지난 주 수요일 이후(10.26)부터 오늘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한 뉴스 시청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내 일상을 잠식했다. 날마다 놀랐고, 밤마다 내일을 희망했다. 희망은 번번히 깨졌다. 검찰은 귀국한 최순실에게 31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고, 청와대는 사태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늘(11.04)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담화(전문 클릭)는 허망함의 백미를 장식했다. 취임 하시기 전부터 이미 대통령의 인식 능력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오늘 담화는 나의 낮은 기대마저 박살냈고, 주도적이지 못한 화법은 복장을 터지게 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

해결

[짧은 소설] K는 중고 믹서기를 2만원에 팔았다. 물건을 건네며 K가 말했다. “날이 여전히 날카로워서 어떤 과일이나 채소도 곱게 잘 갈려요.”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자신의 기대만큼 날이 날카롭지는 않음을, 이튿날 당근을 갈면서 알았다. 갈리긴 갈렸고, 불편하진 않았다. 아쉬움이 찾아든 것은 뚜껑이었다. 흘림 방지용 고무패킹이 조금 헐거웠다. 믹서기 용기를 거꾸로 뒤집으니 내용물의 수분이 약간씩 새어나왔다. 믹서기를 뒤집어 사용할 일은 없지만, 조금은 불만족스러웠다. 환불을 요구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하고 정확한 공지의 중요성을 느꼈다. 다른 중고 매매자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로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거나 갈등이 일어날 만한 일은 모..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다면

“두목 당신은 말이오.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만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 『그리스인 조르바』(p.100) 조르바가 자기다움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까마귀가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렸다”에서 중요한 대목은 ‘거들먹거림’이 아니다. 거..

나이만 먹은 어른들

스무 살을 넘겼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어른들도 정서적, 사회적, 정신적 성장이 없다면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천 번을 흔들려도’ 어른이 되지 않는가 하면, ‘열 번의 흔들림’으로도 단단해지기도 한다. 해마다 똑같이 나이를 먹지만, 성숙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는 무엇으로 어른이 될까? 얼마 전, 친구와 그의 30개월 된 아들과 함께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 아이는 상황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 먹을 때에는 조용했고, 만화를 볼 때에는 즐거워했지만, 원하는 상황이 아니면 참지 못했다. 아이는 참을성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점잖다가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짜증을 내고 절제력을 잃는 어른들이 많다. 귀여운 아들 녀석이 빵을 먹다가 크림을..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부제 : 성과와 행복을 높이는 비결 1.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가능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책을 읽기는 불가능하다. 멀티태스킹은 신체적 활동과 정신의 작용 사이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의력을 요구하는 두 가지 일은 동시에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업무는 정신적 사고나 주의력을 요한다. 지식근로자들이 자신의 업무를 멀티태스킹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컴퓨터의 멀티태스킹 기능도 여러 창을 띄워 놓은 것에 불과하다. 작업을 하려면 해당 창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때 다른 창은 비활성화된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스위칭(재빠른 바꾸기)이라 불러야 한다. 나는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을 때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멀티태스킹이든 스위칭이든, 세 가지를 놓치기 ..

정말, 괴테처럼 살고 싶다

블랑은 커피 맛이 준수하다. 빵도 맛나다. 오늘도 마늘빵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빵 접시는 비워졌고, 커피는 남았다. 식어도 맛난 커피다. 아껴마시던 중 날파리 한 마리가 커피 잔 안으로 날아들어갔다. 얼른 잔을 들었지만, 날파리가 커피에 빠졌다. 이미 젖은 날개의 안간힘으로 작은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이 처량하기도 괘씸하기도 했다. 이런...!! 커피는 포기해야 했다. 아쉬움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책 한 자라도 더 읽거나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 하루를 오롯이 생산적으로 살지는 못하지만, 카페에 앉아 일하는 시간만큼은 불처럼 일하는 나다. 집중하여 일하다가 나도 모르게 커피를 마셨다. 두 모금째 마시다가 불현듯 날파리가 떠올랐다. '으악 날파리!' 나는 두 모금째 마셔 입 안..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1. 어디에도 삶의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가장 편하고 친했던 친구는 그리움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세상을 떠나셨고, 37살의 친구는 췌장암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말았다. 존경하던 스승은 폐암으로 예순이 되기 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움이 나를 외면한 느낌이 드는 내 삶의 실존들이다. 고통은 그치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내게 글쓰기는 일상이다. 메모와 기록은 습관이다. ‘노트북 데이터 유실’은 엄청난 불운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일이 내게 벌어졌다. 어제까지 쓰던 자기경영 일지와 십년 동안 기록해 왔던 와우스토리랩 수업 노트가 없어졌다. 스무 살 이후 매일같이 써 왔던,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었던 글들도 나를 떠났..

한가위 연휴를 어떻게 보냈나

1. 영화 를 보려고 극장에 갔다. 표를 사서 밥을 먹고 왔더니, 대기실에 90년대 가수 K가 앉아 있었다. (K가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일 확률이 높다.) 영화 입장을 알리는 안내를 따라, 그도 나도 함께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K와 나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곁에 앉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는 곧장 나갔고, 나도 따라갔다. “저기 가수 K 씨 아니세요? 제가 지금도 이 세 곡을 가사를 외워 끝까지 부릅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이렇게 할 말을 생각해 두었지만,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극장을 나와 교정을 걸어가는데, K의 자동차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는 차창을 열어 창턱에 왼팔을 걸친 채로 내게서 4~5m 떨어진 곳을 느린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

저를 도와주세요, 엄마

1.어제는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오후엔 더 많은 비가 올지 모르니 일찌감치 엄마 묘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식구들을 아침잠에 빠져 있었다. TV를 보시는 할머니를 넌지시 채근했다. 할머니 엄마에게 언제 출발할까요? 니 시간될 때 가자. '저는 지금 당장 가고 싶어요'라는 말은 못했다. 잠시 뒤, "전 아침을 안 먹어도 돼요. 어젯밤에 너무 많이 먹어서 한끼를 건너 뛰려고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나 혼자 먹으면 되나?"고 받으셨다. 할머니는 밥 생각이 없으시다며 라면을 끓여드셨고, 나는 송편 3개를 먹었다. 2.할머니와 나를 태운 자동차가 보슬비를 맞으며 출발했다. 아침 8시 남짓한 시각이었다. "할머니, 일단 한 번 가 봐요.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많이 오면 산에 올라가지 못하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2008년 개봉작 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이다.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평론가들도 있다. 추석 연휴 첫날, 히로카즈 감독의 세계를 음미하기 위해 홀로 KU시네마테크를 찾았다. 는 가족 드라마다. 특히 부모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부모 사랑 간의 온도차가 크게 다가왔다. 영화는 울림을 주었다. 가슴에 돌맹이 하나를 얹은 마냥 묵직한 먹먹함과 쓸쓸함을 안고 건대 교정을 거닐었다. 하늘은 흐렸다. 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영화의 여운은 내면에 고스란히 쌓였다. 1. 줄거리 15년 전에 죽은 장남의 기일에 온 가족이 모였다. (장남은 물에 빠진 아이 '요시오'를 구하다 목숨을 잃었다.) 제삿상에 모인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 큰 딸 가족 그리고 막내아들(차남) 가족이다. 딸네 식구는 저녁을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