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 1466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화분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이병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p. 125, 문학동네 *소망하여 만나자 했으면서도만남 이후 겪을 격정적 슬픔이 두려운 그 날.그런데도 만남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인연집을 나서면서도 만나지 않길 바라는 슬..

노래 한 곡 들었을 뿐인데

왜 이리 기분이 좋지? 노래 한 곡 들었을 뿐인데…. 첫 소절의 기타 연주만으로도 사람을 홀리더니 연주하는 내내, 노래하는 줄곧, 전율을 안긴다. 당장 기타를 안고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저이처럼 부르고 연주할 순 없으니,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본다. 황홀이다! 심사위원들은 뭐라 평했을까, 궁금하지만 훌륭한 예술은 비평 없이도 우뚝 존재한다. 신들린 한 소녀가 글망을 불러일으킨다. * 글망 = 글을 잘 쓰고픈 열망! ^^

핸드폰에게 빼앗겨 온 것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섰다. 핸드폰은 책상 위에 놓아둔 채였다. 주말이니 전화 올 일도 없었다(기실 들고다닌다고 해도 놓치기 일쑤인데 뭘). 저녁 약속이 하나 있었으니, 확인차 사전 연락을 주고받을 가능성만이 존재했다. 이것도 걱정할 바가 아니다. 아직 시간이 넉넉한 때였다. 부재중 메시지가 있으니, 다녀와서 연락해도 될 터였다. 사소한 의사소통의 실수가 서운함이나 오해로 번질 염려도 없는 친한 관계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왔다. 간간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눈을 지그시 감았던 걸 제외하면, 책의 내용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내용이 가슴과 영혼을 울렸던 탓이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핸드폰이 없었다는 사실도 꽤나 도움이 된 것 같다. 돌아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한 시간 사이에 나를 찾은..

엄마에게 이야기하다

오랜 친구가 내 글 몇 편을 보더니, 내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나는 조금 놀랐다. 다음 주 만남을 기약했다가 나는 급히 제안했다. "오늘도 가능하면 일 끝나고 오늘 볼래?" 나에게도 조금 놀랐다. 생각하고서 얼른 실행으로 옮겼던 것! (당장 실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괜찮았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을 못하는 그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 채 못 되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친구는 아이들과 잠깐 영상통화를 했다. 초반에는 그녀가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아, 오늘은 니 얘길 들으러 왔는데..." "괜찮아, 서로 주고 받는 거지 뭐" 라는 대화가 두어 번 오고 갔다. 20분 즈음 지났으려나? 나는 혼자 와인잔을 비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들어준..

나는 골치 아프게 산다

아침에 메일을 확인하던 중 '심리상담사/ 바리스타 자격증 무료 교육'이란 제목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발신인은 '평생교육원'이다. 수년 전이면(30대 중반까지는) 필요한 정보면 쌓아뒀는데, 요즘에는 지금 읽거나 아니면 바로 삭제한다. 자격증 안내 메일의 경우는 바로 삭제에 해당된다. 나에게 자격증이란, (소수의 자격증을 제외하면) 어떤 역할을 해내는데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실력을 검증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상했다. 나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자는 마음과 이른 아침의 메일들을 미루지 말고 하나씩 처리하자는 마음에 따라 자격증 무료 교육을 홍보하는 메일을 클릭했다. 오늘이 새로운 달의 첫날이었던 탓이 컸지만, 지난 크레타 여행에서 결심한 목록에 '커피추출법 배우기'가 있기도 했다. 결심을 조..

공감을 방해하는 4가지 태도

* 공감을 배우고 싶거나 공감 때문에 괴로움을 느꼈던 분들에게 공감에 대한 최고의 현자를 소개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20대 초반의 제게 '공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래 글과 영상으로 '공감'에 대한 코비의 지혜에 접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상에서는 코비 박사가 공감이 잘 이뤄진 베스트 사례를 시연하는데, 공감에 대한 개념과 워스트 사례부터 접하고 난 뒤에 보시면 시청 효과가 더욱 크실 겁니다. 1. 코비는 기막힌 비유로 '공감'의 의미와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한 고객이 안경을 깨뜨려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주인은 고객의 이야기를 간단히 듣고 시력 검진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쓰던 안경을 건넸습니다. "자, 이걸 껴 보..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오해 맘에 없는 말들로 서로 힘들게 해 (너를 너무 사랑해) 대화가 필요해." - 자두 中 1.나는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여섯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에 대한 서로의 느낌을 공유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이를 테면 섹스와 같은 주제나 서로에 대한 아쉬운 점 등)에 관해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나 역시 의견이 다르면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하면서 편안하게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내가 최근에 쓴 글을 읽은 후 그에 대한 느낌을 공유할 때에는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화 도중 간간이 진심 어린 조언이 오갔다. 우리는 손을 붙잡고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2.이처럼 대화는 사람을 마주..

서른은 불청객처럼 왔지만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시인의 시 의 도입부다. 어느새 나는 '서른 살' 대신 '마흔 살'을 넣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최 시인의 감수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존재할 것이다. 누구나 서른 살을 맞지만, 아무나 서른 살을 소재로 울림을 주는 시를 짓지는 못한다. 시인의 존재 이유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물론 우리에게도 존재 이유가 있다. 시는 쓰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면 앞으로도 그리 살아가면 될 것이다. 지금의 삶이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면? 그때는 자기 가슴에서 호연지기를 끌어내어 글 짓는 시작(詩作) 대신 새로운 인생을 시작(始作)해야 하리라. 비타 노바의 첫걸음은 작금의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것이라 믿는..

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아들 : 아버지, 우리 집은 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 (아들을 째려보다가) 밥 묵자.잠시 후, 아버지 : 니 얘기 잘 했다. (아내를 보며) 말 나온 김에, 당신 동민이 교육 우째 시키고 있노? 내 며칠 동안 쭉 지켜봤는데, 오늘만 해도 그래. 해뜨기 전에 뽀로로 기어나가가 하루종일 싸돌아 댕기다가 지 배고프면 기 들어와가 밥만 처 묵고! 야 이거 하루 종일 밖에 나가가 뭐하노?어머니 : 지도 모르겠습니더. 지도 야 땜에 미치겠습니더. 아버지 : 동민! 니 솔직히 얘기 해. 니 하루종일 밖에 나가가 뭐 했노?아들 : 학교 갔다 왔는데여. 는 2000년대 후반 개그콘서트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저녁 식사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코드로 공감적 유머를 자아냈다.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가족..

책을 읽으면 덜 아프거든요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문학비평가 이명원 선생의 책 제목이다. 마음이 엄청 짜다는 말인가, 무슨 의미지? 도서관과는 어떤 관계고? 의문은 이라는 글을 읽으며 풀렸다. 두 페이지짜리 짧은 글(책에 실린 상당수의 글이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안심'이라는 단어와 글의 말미에 "마음이 소금밭"인데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고통으로 속이 꽉 찬 개그맨이 사람을 웃겨야 된다는 아이러니"에 빗댄 걸 보면, 고통스러운 내면을 뜻하는 것 같다. 그리고서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 안의 소금밭을 부지런히 갈기 위해서라도, 그 짜디짠 인생에 정직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