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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치는 허벅지 근육 감상기

1. 휴일 오전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을 때였다. 나는 글을 쓰던 중이었고, 시계바늘은 오전 9시 45분을 가리켰다. 차창 밖 잠실대로에서 호각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매주 휴일이면 잠실 롯데마트, 키즈니아 등으로 진입하는 차량들로 뒤범벅이 되는 곳이다. 교통경찰들의 호각이려니 했지만, 그것은 오후에나 벌어지는 일이다. '아직 차가 막힐 시간이 아닌데...' 하는 호기심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다. 잠실대로가 한산했다. 잠실역에서 갤러리아팰리스에 이르는 도로를 통제하는 교통결찰이 보였다. '와! 마라톤이 있는가 보네.' 서울국제마라톤대회는 동아마라톤대회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를 표시하는 골드라벨로 승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1년 개최된 국제마라톤대회 중에서 골드라벨 대회는 16개..

다시 책을 쓰기 시작하다

1. 글을 쓰는 공간은 공장이기보다는 창작소다. 시간이 주어지면 물건을 팡팡 찍어내는 공장처럼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창작의 소산이다. 창작이란 말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이 묻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을 특정인만의 영역으로 성역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가 힘겹다는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모든 인생에는 책 한 권 즈음이 될만한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영감이 떠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을 포함하여) 날마다 기계적으로 글쓰기에 임하는 사람이 직업 작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쉽지 않은 '글쓰기'를 날마다 해야 한다는 점이 작..

왜 책을 사고 책을 읽는가?

1. "겨울자켓 하나 사세요." 며칠 전 와우연구원이 내게 한 말이다. 내겐 겨울용 자켓이 없다. 겨울 끝자락이 되어 겨울 옷 이월상품이 나오면 그걸 사서 내년 겨울에 입자, 라는 생각이었다. 두 개의 가을 자켓을 입고 다니며 겨울을 보냈고, 겨울자켓 구입을 차일피일 미루던 터에 저 말을 들은 것이다. 저런 말을 할 정도로 친해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뭔가 들켰다라는 느낌이 들어 쑥스럽기도 했다. 사실, 겨울 내내 장갑 한 번 끼지 않고 보냈으니(장갑 살 돈이 아까웠다), 옷을 사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돈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돈을 안 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관리가 허술하여 돈이 술술 새긴 한다. 안 쓰고 있는 갤럭시탭, 보지도 않는 쿡TV 등등) 분명한 건 내가 휴지, 샴푸 ..

뜻밖의 시간이 준 행복

1. 독서강연을 시작하며 양해를 구했다. 급하신 일이 아니시면 20분 늦게 끝마쳐도 괜찮으시냐고. 이왕 오신 김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청중의 반응을 영민하게 알아차리는 편이라 여러분들이 강연을 시원찮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알아서 정시에 마치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띌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2. 강연은 양해를 구한 대로 예정된 시각보다 20분을 더하여 9시 50분에 끝났다. 한 두 분이 강연장을 빠져나가셨다. 그리고 뜻밖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자리에 앉아계신 열 두 분이 번갈아가며 내게 질문을 하셨고, 나는 질문들에 정성껏 답변 드렸다. 다행하게도(^^)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질문하셨다. 강연 때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 이를테면..

김영하 읽기를 시작했다

1. 김영하 제.대.로. 읽기를 시작했다. 2010년 쏠비치에서의 여유로운 휴가는 김영하 소설로 인해 풍성했다. 아니, 그의 소설이 준 감탄만 떠오를 정도다. 「크리스마스 캐럴」, 「보물선」,「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 나를 열광케 한 작품들. 2. 내게 있어 제대로 읽기란, 차분한 전작주의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흥분했으니 차분해져야 한다. 그래야 서두름에서 오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을 마구 읽어대는 남독 습관을 제어하여 나름의 순서대로 생각하며 읽어나가려면 차분함이 필요하다. 그의 전작을 읽되, 마음에 꽂히는 순서가 아니라 출간된 순서대로 읽기로 했다. 사실 그가 작품을 썼던 순서대로 읽고 싶지만 단편의 경우는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여 출간되기에 단편 하나하나를 ..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특징

1.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먼 곳에서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용산역으로, 전라도 광주역으로, 다시 전남대학교로 이동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이런 강연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다행스러운 것은 이동하는 열차는 좋은 업무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KTX 안에서 글을 쓰려던 계획이었지만, 교육 담당자가 새로운 주제의 강연을 부탁했기에 슬라이드의 구성을 살펴보는 데에 시간을 쏟아야 했다. 두 번의 강연은 잘 마쳤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고 슬쩍 훑어본 피드백도 만족스러웠다. 교육 담당자와의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온 지금은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또 하루가 지난 셈이다. 글을 쓰지 못한 채 지나가는 시간들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 쌓인 것들이 많아지면 조바심이 된다. 꿈을 ..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요!

1.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핸드폰을 켰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글, "제 특기가 뭘까요?" 회사 지원에 필요한 이력서를 쓰던 지인의 문자메시지였다. 응시원서의 '특기'라고 쓰인 공란에 퍽이나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그의 특기에 대해 당사자가 아닌 내가 답한다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그걸 제가 어찌 알까요?"라고 보낼 수도 없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약간의 지식을 짜내어 회신을 보냈다. "사회 보는 일(진행)과 연기가 아닐까요?" 답변이 바로 날아왔다. "그걸 특기라고 하긴 좀 그래요. 특기까지는 아닌 듯 해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매우 높은 기준을 가진 그다.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기 일쑤인 사람.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기준을 낮추세요. 충분히 특기가 될 만합니다." 회신이 왔다. 결정타였다...

매혹적인 조르바

1.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프란츠 카프카의 말.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정말 그래야만 한다. 인생은 짧고 명저는 많으니까. 자신의 삶이 매혹적인 것들로 가득차기를 바란다면 카프카의 말에서 '책' 대신 다른 것들을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은 도끼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영화를 본다면, 그 영화 역시 도끼여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책을 읽어야 하고, 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 도처에는 멋진 일들이 널렸고, 사람은 저마다 제각각이니까. 2..

인생은 여성같다고 생각한 소년

소년은 많이 울었다. 오늘처럼 운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침대에 엎드려 울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집에 있는 게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다.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집을 나서고 싶었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봄 오후에 내리는 가랑비였다. 소년의 마음은 가는 빗줄기처럼 약해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약해지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년은 곧 다른 생각을 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친한 사람들은 소년을 두고,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 소년은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소년의 외할머니는,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고 힘겨워도 내색하지 않는 소년을 섭섭해 했었다. 소년을 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면...

1.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답변들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이란,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본질이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이다.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것들의 총합이 나의 정체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나답게'와 '총합'이다. 나답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정체성과는 관계가 없고, 나답게 만드는 것이 '단 하나'가 아니란 말이다. 2 무엇이 나다운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도 쉽지 않고, 하나의 답변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알기에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의 글을 읽는 이들은 가끔씩 이런 말씀을 한다. 내가 진솔하게 글을 쓴다고 혹은 내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 말들을 들었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