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97

와우팀원에게 문상 가는 길

먼 길을 나섰다. 부산까지 가야하는 여정이다. 열두 시 어간에는 부산의료원에 도착하기 위해 오전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늦잠을 잤다. 어젯밤 글쓰기 수업을 해서인지 7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오늘 일정이 2개지만, 각각 부산과 서울이라 이동거리가 멀다. 저녁엔 종로에서 독서 강연이 있다. 오늘은 화요일, 조르바 원고를 보내는 날이다. 조르바 원고를 쓸 책, 열차에서 사용할 노트북, 그리고 강연을 위한 독서노트로 가방이 두툼해졌다. 아침식사를 잘 챙겨먹는 편이지만 오늘은 걸렀다. 간헐적 단식이 좋다는데 오늘 오전에 단식이나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주방 선반에 꺼내두었던 파프리카 샐러드를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먹으려면 최소한 5분은 걸릴 텐데 열차 시각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

저, 아침식사 잘 챙겨먹어요.

아침식사에 대한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내가 아침을 잘 챙겨먹는다는 걸 자랑하기 위함도 작은 이유지만, 그보다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피하고 싶어서다. 대화는 혼자 사는 이에게 흔히 물을 수 있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아침 드셨어요?" "네. 먹었어요. 전 혼자 사는 것 치고는 잘 챙겨 먹어요." 상대방의 사정을 좀 아는 경우엔 한 마디를 덧붙이기도 한다. "어쩌면 제가 더 잘 챙겨먹을 걸요." 상대방이 결혼한 남성이든, 가정주부든 나의 아침식사가 더 푸짐하고 건강식에 더 가까운 경우도 많다. 장을 볼때 과일과 야채를 잔뜩 사두어 아침마다 정성껏 차려 먹으니까. '정성껏'은 엄마의 손길은 아니다. 귀찮음을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의 다른 표현일 뿐. 샐러드를 좋아한다. 과일은 건강을 위해 ..

아쉬운 순간도 학습의 재료다

어제는 유니컨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인문학 수업은 준비하는 과정도 수업 후의 결과도 내게 기쁨이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낭만주의 문학을 강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했을 테지만, 어젯밤엔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래야 하는 밤이었다. 하지만 나는 '21시 이후 취식금지'라는 나만의 건강지침도 깨뜨리고 말았다. 스트레스는 자기경영을 이런 식으로도 방해하는구나 싶었다. 사정은 이랬다. 유니컨 수업은 내게 제1의 우선순위였다. 허나 하필이면 유니컨 수업이 있는 날에 변화경영연구소 살롱9의 프로그램 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잡혔다. 나는 토론회를 포기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상반기 프..

릴케, 부담감 그리고 채식

1. 릴케의 를 군데군데 다시 읽었다. '책을 이야기하는 남자'의 원고로 다루기 위해서다. 이참에 유명한 '하이데거의 릴케론'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영이 이 논문의 일어판을 달달 외웠다는데, 나는 그럴 생각은 없다. 비록 얄팍하더라도 정확한 지식을 갖추기 위한 공부일 뿐이다. 릴케 시선집 정도는 읽을 만큼의 열정은 있다. 이것은 성실함이기도 하리라. 독서리뷰를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를 하려는 열심이니까. 2. 7월은 약간의 부담감으로 시작했다. 6월의 마지막 주말에 한달을 성찰하고 다가올 달에 대한 계획을 세우다가 생긴 부담감이다. 7월에 해야 할 일이 넘쳐났던 것이다. 8월에 와우들과 함께 떠날 20일 간의 호주 여행이 주는 필연적인 결과다. 업무의 공백을 7월에 미리..

안분지족의 행복이 깃든 아침

아침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첫 차례대로 읽은 게 아니고 밑줄이 그어진 대목을 이곳저곳 뒤적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럴 만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운동을 하고 왔으니까. 어젯밤에 계획한 대로 하루를 열었다는 사실과 숙제 같은 운동을 끝냈다는 점이 기분을 좋게 했다. 아침 식사는 푸짐한 과일과 달걀 후라이 그리고 견과류로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충분히 행복할 만했다. 현재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다. 대개의 경우, 행복은 과거를 추억하는 형태로 뒤늦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나의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네 엄마와 이모들 키울 때 정신없이 바쁘고 생활도 빠듯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게 행복이더라." 할머니는 그렇..

류현진, 개츠비 그리고 피드백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끌려 오늘 하루만 써 보는 것 뿐이다. 아침에 류현진을 부러워했고 오후에는 개츠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내게 글쓰기를 배우는 이에게 이번 주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했다. 마음에 드는 하루였다. 1. 류현진은 6월 30일 7승에 재도전한다. 6승 이후 네 번의 도전이 있었지만 호투에도 불구하도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이번 맞상대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 '클리프 리'다. 리는 사이영 상을 수상한, 완벽에 가까운 제구력을 지닌 특급 좌완이다. 류가 한국에 있던 시절부터 존경하던 선수다. 나는 류가 부럽다. 존경하던 모델과 같은 무대에서 실력을 겨루는 류는 이제 나의 역할 모델이다. 마인드와 실력 면에서. 사실 류를 좋아하기 시작한..

소크라테스는 다소 가혹했지만

종각에서 을지로를 향해 100m 남짓 걸으면 청계천을 만난다. 청계천로에서 좌회전하는 길을 따라 커피스미스, 커핀그루나루, 카페베네, 스타벅스, 할리스커피 등의 카페가 늘어서 있다. 나는 단연 커피스미스가 마음에 든다. 2, 3층 창가에서 내다보이는 청계천 풍광이 멋지고, 커피스미스 고유의 모던한 인테리어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매월 종로에서 강연을 해서 종종 들른다. 어느 초여름 날, 커피스미스 3층 창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단상에 잠기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으로 넘어가는 오후라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3층까지 넘실거리며 올라왔다. 바람이 그네들의 미소마저 실어온 마냥 웃음소리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산새의 지저귐보다 기분 좋은 소리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

나는 또 '삶은 여행'을 듣는다

삶은 여행 - 이상은 의미를 모를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걸 아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 했을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

4월의 마지막날을 보낸 기분

목이 칼칼했기 때문일까. 선생님이 떠나신 이후로 조금 우울해진 탓일까. 기운 없음으로 오늘을 보냈다. 편도선이 조금 부은 것은, 어제 당일치기 강화도 여행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올 무렵부터 느낀 증상이다. 그로 인해 오늘 저녁 독서수업을 진행할 때에는 걸걸한 목소리로 낮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했다. 그렇잖아도 발음이 좋은 편도 아닌데. 쩝. "인생무상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하는 게 요즘 제 고민이예요." 어제 강화도 여행을 하던 중 동행했던 연구원 형에게 건넨 말이다. "그거지 뭐." 그도 허망하고 허전하여 4월을 정신없이 보냈다고 했다. 남편의 마음을 헤아린 형수는 나랑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권했단다. 형수님의 여행 권유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장례식장에서였다. 그때 형에게 말했었다. 4월 중에 한..

나비처럼 훨훨 벚꽃처럼 가볍게

"나비처럼 훨훨 벚꽃처럼 가볍게" - 장 도미니크 보비의 를 회상하며 * 책을 소개하는 대목이 있기는 하나, 내 일상을 담은 글이지 서평은 아님. 내 삶이 꿈처럼 흐릿하게 혹은 멍하게 흘러가기 시작한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신이 내게 허락한 삶의 시간을 어떤 일에 주어야 하는지, 이런 먹먹한 질문들이 나를 찾아드는 요즘이네요. 대답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방문한 손님을 현관문 앞에 세워 둔 채로 넋 놓고 바라보는 주인처럼 질문을 받아들고만 있습니다. 내 삶은 그렇게 주인의 무위(無爲)로 멈춰서 있네요. 삶은 언제나 자신의 주인을 닮아갑니다. 지난 4월 13일부터 제 삶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질병이라는 암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