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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벽에 맞은 '삶의 비평'

1.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이를 따지며 찾아오는 건 아닐 것이다. 아직은 젊은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맞이한다. (내 마음이 강인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한 해가 저물어갈 때나 여자 친구랑 심하게 다퉜을 때가 그렇다. 이건 예전의 일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영화의 제목은 . 콩가루 집안의 지극히 불행한 모습을 담은 영화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우리 집안이 영화 속의 가족과 비슷해서가 아니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 공기 좋은 산 속에서 심호흡을 하여 산소를 폐 속으로 흠뻑 빨아들인 것처럼, 영화의 메시지가 내 몸 속 깊숙이 들어찬 느낌이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사람이 좋으면서 혼자이고 싶다

창경궁 돈화문 건너편에는 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 값이 다소 비싼데도 정갈하고 예쁘게 나오는 차림을 보고서 매료된 곳입니다. 생맥주에 곁들여 마른 안주를 차려놓은 모양새, 와인에 과일을 절여 만든 음료의 예쁜 빛깔 등 주문했던 모든 메뉴가 제 값에 걸맞는 위용을 뽐내었습니다. 지난 주, '서양문학사'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과 함께 에 갔습니다. '세계사' 수업도 들으셨던 분들이고, 와우도 있어서 제겐 무척 편안한 자리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지금 여기에 혼자 있으면 참 좋겠다.' 말없이 가만히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신뢰해 주는 분들이라 그윽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요.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였습니..

봄바람과 함께한 문학 수업

1. GLA 강좌를 수강하는 이들과 함께 봄 나들이를 떠났다. 봄꽃도 구경하고 수업도 진행하는 세나절 동안의 여행이었다. 출발지는 안국역 1번 출구 앞 스타벅스. 우리는 다섯 동네(순서대로 안국동, 소격동, 삼청동, 가회동, 계동까지의 동네)를 거닐었다. 윤보선길을 따라 정독도서관까지(삼청동), 정독도서관 맞은 편에 있는 아트선재(소격동), 정독도서관 좌측 골목길에서 삼청동 카페 골목 가는 길(삼청동), 삼청동 주민센터로 맞은 편 골목 사이로 난 오르막을 올라 북촌 한옥마을(가회동)을 걸어다녔다. 마무리는 서울중앙고등학교 정문 앞 계동길(계동). 2. 인사동, 삼청동, 계동에는 볼거리와 맛집이 많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명소다. 추천하는 맛집을 꼽아 두자면, 백년이 넘는 전통의 '이문설렁탕'(인사동네거..

몽테뉴를 읽기 위한 실마리들

1.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술가, 정치인, 사상가가 위대한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완벽이란 너무 높은 수준의 단어다. 그러니 첫 문장은 바꿔 쓰는 게 낫겠다. 엄청난 업적을 지닌 인물들도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뤘지만 사회적 관계가 엉망이거나, 정신적인 힘은 강하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감각은 엉터리이거나. (이 글의 주인공 몽테뉴는 후자의 경우다.) 2. 몽테뉴(1533~1592)는 종교전쟁의 격랑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16세기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광신적인 다툼이 일어났던 시기다. 가톨릭은 종교개혁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기반으로 생겨난 개신교를 탄압했고, 세력이 강해진 개신교 역시 가톨릭의 비이성적인 탄압에 무력으로 대응했다. ..

경기도 여주의 명소와 맛집들

어제, 여주 신륵사에 갔었다. wow4ever(4기 와우팀)들과 다녀온지 6년 만이다. 그간 여주에 두어번 다녀왔는데, 여주 명소 이곳저곳을 여행한 소감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1. 여주를 가로지르는 남한강 514km를 흐르는 한강은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에 이어 우리 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태백시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평창강, 주천강 등과 합치며 동에서 서로 흐른다.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룬다. (북한강과 남한강, 두 개의 강물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는 양평군의 명소다.) 서울을 관통한 한강은 서해를 만나며 500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마친다. (남)한강을 굽어 볼 수 있는 명소는 서울 응봉산과 아차산, 양평군 두물머리, 여주 신륵사, 충주호와 청풍문화재단지, 단양의..

유쾌한 아침, 독서계획, 변경연 여행

1. 기분 좋은 아침이다. 무엇 때문일까.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것, 간단하게나마 보일러실을 정돈한 것 그리고 와우들의 GLA (인문 강좌) 독서 과제를 읽은 것이 유쾌한 아침을 만들었다.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룬 덕분이지만, 특히나 수강생의 독서 과제가 준 즐거움이 컸다. 기한을 놓친 이들도 있지만, 제출한 과제들이 충실했다. 학생들의 성실한 학습 태도는 선생의 기쁨이다. 4월의 과제 주제는 르네상스 문학이다. 수강생들은 4주 동안 셰익스피어의 희곡 3편과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야 한다. 지난 주엔 『햄릿』을 읽었다. 저마다의 독서 리뷰를 읽으며 즐거웠던 것은 질문이 살아있는 리뷰가 많았고 특히나 한 분은 수업 내용 중 특정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회의하는 태도야말로 인..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1. 낚시질 마종기 낚시질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中年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2. 시인은 찌에 지렁이를 끼우며 그 찌를 집어삼킬 물고기를 생각하며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물었으리라. 당신이 시인의 곁에 있었더라면, 그가 직접 묻진 않더라도 (수줍은 일이니) 당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3. "먼저 자신에게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 이야기하십시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 에픽테토스 세네카와..

인문학 첫 공부를 돕는 책들

1. 모티머 J.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은 제대로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 특히 공부와 연구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매우 요긴한 책이다. (독서를 처음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권했을 때의 대체적인 반응은 너무 디테일하고,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참고하시라.) 지금까지 읽은 독서법에 관한 책을 두 권만 읽으라면,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과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다. 전자는 내 독서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후자는 나의 첫 책을 개정판으로 다듬어 보완하기 위해서다. 둘 다 내게 필요한 일이니 죽기 전엔 해내겠지. 2. 모티머 J. 애들러의 새로운 책, 『평생공부 가이드』가 번역되었다. (공부와 독서라는 주제로 새로운 책들을 많이 출간해주어 고마운 유유출판사의 책이다.) 독서법의..

자유로운 삶에 관한 7가지 단상

1. 나는 정신적인 자유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진정한 자유는 드문 가치다. 한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어놓은 마음의 한계를 이겨내야 할 뿐만 아니라, 환경과 상황의 구속에서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2.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자유를 구현할 힘을 깨닫게 하고 강화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사람에게 맞서 삶의 자유를 늘려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로마의 노예로 태어나 자유민이 되었던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 16세기 종교전쟁의 광풍 속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지켜냈던 몽테뉴. 3.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이 슬로건으로 삼을 만한 문구다. "아무것도 바라..

가슴이 섬뜩했던 날의 깨달음

"KU 시네마파크에서 롯데시네마 거리가 가깝나요?" 친하게 지내는 지인 K로부터 카톡이 왔다. KU 시네마파크에선 이, 롯데시네마에선 이 상영되던 날이었다. 며칠 전에 추천드렸던 영화들이다. 상영관까지 알려 드렸더니, 직접 관람하러 가시려나 싶었다. "두 편 다 보고 싶어서 시간을 확인했는데, 가능하겠더라고요." 그 분의 말에, 두 상영관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려 드렸다. (하나는 건국대 안에, 하나는 건대 바로 앞에 위한 영화관들이다.) 이틀이 지나, 어제 K를 만났다. 늘 만나는 J와 함께 셋이서 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K에게 물었다. "영화 보셨어요?" 웃으면서 말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어제도 J를 만났어요. 오랫만에 명동을 구경하고 집에 들어와 집안 정리를 좀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