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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경외심을 회복시키는 기예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가장 감동했던 대목은 1) 허무주의 시대에 대한 처방을 문학 작품 속에서 건져 올렸다는 사실과 2) 테크놀로지 시대에 대항하여 의미 심장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기예를 연마하라는 제안이었다. 3) 책의 주제에 줄곧 현상학적 방식으로 접근한 것도 이 책을 신뢰하게 했다. 나는 불가능에 가까운 '최선의 추구'라면 보다 현실적인 '최악의 제거'를 선호한다. 4) 참된 확신은 내면에서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 이끌리듯 경험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인상 깊었다. 5) 서로 다른 양극단의 가치, 인간 삶에 필요한 배타적인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저자들의 지성도 빛났다. 저자들이 이야기한 '기예'는 장인적 기술을 말한다. 기예는 작은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갖게 한다. ..

어느 봄날의 오후

나는 뜻밖의 개인 시간을 사랑한다. 어느 봄날, 오후 일정 하나가 갑작스럽게 취소되어 내게 덩어리 시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나가던 행인이 내게 불쑥 5만원을 쥐어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약속한 이와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지만, 뜻밖의 자유 시간을 누리는 맛은 무척 달콤하다. 내 마음엔 두 개의 방이 존재한다. 아쉬움은 이곳, 설렘은 저곳, 이렇게 서로 다른 감정을 담아두기에 좋다. 하나의 병 속에 든 물과 기름처럼, 마음 속 두 감정을 모두 느끼면서도, 서로 다른 방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 하나다. 여느 때 같으면 불쑥 주어진 시간에 연구실로 돌아가거나 인근 카페에 앉아서 일에 빠져든다.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포근한 봄 햇살과 알싸한 꽃내음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향..

에피쿠로스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는 신이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지혜라고 일컫는 삶의 법칙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자신이 정립한 학문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숱한 폭풍과 암흑으로부터 끌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과 빛의 세계 속에 정착시켰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루크레티우스(BC 99~55)가 한 말이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불안과 두려움은 필연적인 감정이 아니다. 생각과 인식을 바꾸면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자신의 스승이야말로 불필요한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우리에게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다. 루크레티우스처럼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긴 이들이 많았다. 두려움, 불안, 삶의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었으니 신의 구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에피쿠로스..

1사분기의 내 삶은 어떠했나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벚꽃은 벌써 피었고요. 어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여 잠시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른 벚꽃이 핀 3월의 휴일에 느낀 단상을 포스팅하고서(yesmydream.net/2018), 오후엔 종로 낙산공원에 갔습니다. 나트막한 동산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모두 피었더군요. 1/4분기 나의 3대 뉴스를 작성하러 갔다가 꽃 구경만 하고 왔네요. (아직 봄나들이를 못하셨다면, 4월의 첫째 주말이 벚꽃의 절정이랍니다. 서울시는 주요 벚꽃길을 선정하여 홍보하고 있네요.) 2014년의 1/4이 지났습니다. 남은 해를 잘 살기 위한 노력으로, 요즘 무얼 하며 지내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말하자면, 3개월짜리 나의 3대 뉴스 쯤이 되겠습니다. 1. 『어떻게 자기답게 사는가』(가제)를 탈..

3월의 서울에도 벚꽃이 핀다

1. 또 한달이 저문다. '매월 삶을 성찰하진 못해도, 분기를 건너뛰지는 말자.' 이것이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삶은 주인이 사는 대로 만들어진다. 나는 삶의 주인의식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것은 나무같은 삶이다. 태어난 땅(숙명)을 원망치 않으면서도 하늘(꿈)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는 것, 부단히 성장하여 결국엔 꽃과 과실을 맺어, 세상의 아름다움에 나답게 공헌하는 나무같은 삶! 내 삶의 마당에 누가 오물을 던지고 달아난다면, 나는 그 죽일 놈을 뒤쫓아가서 왜 그랬냐고 따지기보다는 오물을 걷어내면서 삶을 이해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싶다. 사람은 모든 행위, 모든 사건 속에서도 배울 수 있는 존재니까. 모순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삶이지만, 언제나 배울 수 있고 어디에서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

2014년 6월 4일에 해야 할 일

1. 오늘자 신문을 보니 서울시장 후보들을 대상으로 100문 100답이 실렸다. (중앙일보 3월 29일자) 조선시대에는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관직을 '한성판윤'이라 불렀단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1133명의 한성판윤 중 우리가 아는 분들도 많다. 황희 정승, 오성과 한음의 한음 이덕형, 암행어사 박문수 등이 한성판윤을 거쳐갔다 한다. (거쳐갔다는 표현을 쓴 것은 한성판윤의 평균 재직기간이 5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들어가는 서울시장은, 국방과 외교권만 없는 소통령이 비유된단다. 대권 후보로 가는 발판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 중요한 서울시장을 올해 뽑는다. 서울시장 및 지방선거일은 6월 4일이다. (법정공휴일임을 확인하며 기뻐한 것이 나의 정치의식 수..

오해받고 있어 억울한 당신께

우리는 서로 다르다. 우리의 다름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을 무시한 사유는 엉터리다. 다르기에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은 막하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이다.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다. 오해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성도 사라진다. 완전한 동일성끼리는 오해가 없다. 동일성끼리는 소통이 필요없다. 두 사람이 있다면 소통이 필요해진다. 완전히 동일한 두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오해는 만연하기에 소통은 항상 필요하다. 오해는 차이성에서 발생한다. 사람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간의 오해는 불가피하다. 소통은 차이성끼리의 우정에 필수품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슴이 답답하다면, 그것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차이가 이해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오해 때문이지, 애정의 유무 때문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을 제외하면,..

<폼페이>를 통해 얻은 생각들

는 역사를 복원한 영화다. 무엇을 복원했는가? 그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 화석은 사실인가? 나는 영화가 ‘역사’가 아님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영화 를 두고 왜 역사와 다르냐고 따지진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다룬 이 영화가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1. 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당시 로마의 배경을 살펴보자. 영화가 다룬 시간적 배경은 로마 제국의 시대다. 정확하게는 서기 79년인데, 이때는 어떠한 시대였나? 전후의 역사적 흐름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8세기 중엽에 세워진 로마는 510년에 공화정을 거쳐 기원전 27년에 제정 시대를 열었다. (제정은 황제가 광대한 영토의 제국을 다스리는 정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로마가 초강대국의 길로 ..

나의 초상 (7)

1. 내 책상 바로 뒤에는 책장이 있다. 앉은 자리에서 뒤로 손을 뻗으면 어느 책이나 뽑아들 수 있는 거리다. 나는 방금 고개를 돌려 가까운 곳에 꽂혔던 세 권의 책을 뽑았다. 자꾸 손이 가지만, 와우를 10기까지 하고서, 유니컨들의 독립을 조금이라도 돕고서 읽을 책들이다. (사실, 한 권 반을 읽었다.) 허균의 『한정록』 김원우의 『숨어 사는 즐거움』 이나미 리츠코의 『중국의 은자들』 독서를 훗날로 미루려는 까닭은 아직은 숨어 사는 즐거움보다는 함께 사는 의미와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숨어 사는 즐거움은 태어날 때부터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기질을 존중하지만, 기질의 약점을 뛰어넘으며 살고 싶다. 2.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이 말만이 진리라고 생각하..

몽테뉴가 페이스북을 한다면?

인생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입니다. 나는 이 말이 좋습니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인생에도 우리가 노력할 영역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서요. 위대한 심리학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메타 주의력, 이것이 집중력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1세기 전에 주의력과 집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자기경영의 선구자입니다. 최초의 선구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현재를 살라고 설파했습니다. 로마의 극작가 세네카도 권합니다. "지금 당신 눈앞에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라." 한두 줄의 명제로 주의를 기울이는 삶을 강조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으로 그러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