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 29

다이애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영화 를 보러 가는 기대감의 정체는 호기심이었다. 화려하게 보였던 그녀의 삶 그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녀의 죽음! 그렇다. 무엇보다 그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궁금했다. 영화는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지만, 호기심 충족이 아닌 다른 것으로 기대감을 채웠다. 영화 의 관심은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다. 다이애나가 어떤 여자였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서 다이애나라는 사람의 일면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감독의 의도였으리라. 나의 리뷰도 영화를 통해 이해한 다이애나에 대한 단상들이다. '당신은 다이애나를 아는가?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1. 다이애나는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전략이나 전술은 그녀의 단어가 아니다...

어느 서른 살에게 보내는 편지 (2)

전문성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사회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을 땐 그 어려움을 얕보기 쉽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회의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거 없이도 낙관하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의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두고 볼 일이지만, 아마도 너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너도 그리 생각한다면,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게다.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환영회장에서 사장님이 강연하셨을 때의 일이다. 사장님은 시시한 훈화 말씀이 아닌 사회 생활에 요긴하게 쓰일 멋진 강연을 하셨다. 내용 중의 일부를 전한다. (내 언어로 각색됐지만 요지는 그대로다.) "여러분, 저는 한 신입사원의 말을 듣고서 매우 흐뭇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의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열정적으로 일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

여운이 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3관왕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감독 장 마크 발레)을 보았다. 에이즈 감염으로 30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를 받은 한 남자의 실화다. 감동과 성찰을 안기는 실화! 그는 불합리한 이익 집단(미국 식품의약국)에 맞서며 7년을 더 살았다. 그 과정에서 금지된 약물을 판매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에이즈 환자들을 생명을 연장시켰다. 영화의 여운은 진했다. 1. 주인공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거친 사내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섹스를 즐기고, 로데오 경기에서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식이다. '도무지 나랑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겠군' 영화 초반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 나는 론에게 빠져버렸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금지된 법..

어느 서른 살에게 보내는 편지 (1)

1. 꼰대 같은 어른들이 있다. 유연한 사고를 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의 어른들 말이다. 나도 머잖아 40대가 될 텐데, 훌륭한 어른이 되지는 못해도 골치 아픈 어른만큼은 피하고 싶다. 서른 일곱의 내가, 마흔의 나에게 건네는 당부의 말이다. 헤이 마흔아, 꼰대가 되지는 마시게. 한편,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도 있다. 나이에 걸맞는 독립심을 갖추지 못하면 어른스러움과도 멀어진다. 그러니 그대 서른아, 한껏 독립적인 사람이 되시게. 무엇이 독립적인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무엇보다 책임감을 꼽고 싶다. 책임의식의 차이가 곧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라 믿는다. (회사에서도 (능력이 아닌) 책임감의 차이가 부하와 상사의 가장 큰 구별점이라고 생각한다.) 2. 독립하면, 지금까지는 엄마가 해 주..

<인문학 길라잡이>에 오신 분들께

1. 어제 유인물에 제대로 인쇄되지 않았던 표는 위와 같습니다. 인문정신이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답변들의 목록입니다. 합리성, 감수성, 자유, 비판은 제 견해고요. 하나의 편견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편견을 만나 점점 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앞서 말한 네 가지가 보편적 인문정신이라면,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답변들은 개인적 인문정신이 될 것입니다. 보편적, 개인적 인문정신을 찾아가는 것이 곧 인문학 공부의 유익이고, 목적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인문정신은 뭘까?' 이 화두를 품고서 문사철 식견과 예술적 감성을 키워가는 것이 곧 인문학 공부이고요. ^^ 2. 지식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정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저자로 '강신주' 선생을 추천..

나의 초상 (6)

1. 메일의 내용을 다 쓰고 나면 곤혹스러운 일이 남는다. '어떻게 끝맺어야 하나?' 항상 건강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강이나 행복을 기원할 때에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더욱 건강하세요, 혹은 자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불교 경전 에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는 말이 나온다.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고 탐욕이 빠지면 도에서 멀어지기 까닭이란다. 내가 인삿말을 신중히 고르는 것은 도에서 멀어질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실제로 인생살이에 병 없이 사는 사람이 없고, 좋은 일만 벌어지는 인생은 없는데, 그걸 뚜렷히 목격하면서도 "좋은 일만 생기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허망하기 때문이다. 2. 나는 언제 책을 읽는가? 잠..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밤

1. 고향 후배들이 연구실에 오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서 설레였고 기다려졌다. 수년만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서둘러 일정을 마무리하고 연구실로 향했다. 사실 마무리가 아니라 도주였다. 오늘 난 강연회에 참석했었고, 자리를 뜰 때엔 박원순 서울시장님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강연자는 하버드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해피어』, 『완벽에의 추구』 등의 저자 탈 벤 샤하르였다. 서둘러 오기엔 조금은 아까운 기회들이었다. 강연회를 모두 듣고 와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먹을 거리와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고 싶었다. (외국 강사의 통역 강의는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결정에 한 몫을 했다.) 나는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어떤 와인을 딸까? 와인을..

몰입은 성찰의 재료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발견하라. 그러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니체의 말이다. 자기 발견의 여정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몰입과 성찰이다. 수학과를 다니는 어느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수학과를 지원하긴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공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내가 물었다. 한 학기 정도 전공 공부에 몰입한 적이 있느냐고.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부탁의 말을 건넸다. “용기를 내면 전과는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의 진로 변경은 빠른 축에 속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전공을 바꾸려는 이유를 발견하는 겁니다. 단지 수학이 싫어서라는 이유만으로 전공을 바꾸는 것은 아쉽네요. ..

전남대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2014년 3월 14일, 전남대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보냅니다. 이곳을 찾아주었으니 그날 강연에서 크고 작은 떨림을 느낀 학생들이겠지요. 경청해 준 덕분에 저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하루였기를 바랍니다. 그날 여러분들의 사진 한 장을 담지 못한 게 아쉽네요. 포스팅에 사진이 있으면 추억하기 좋을 텐데 말이죠. 여러분, 전혀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세요. 조바심을 내려놓고 과정을 즐기며 좋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꿈은 소중합니다. 나는 그 꿈을 응원합니다. 인생예술가로서 여러분의 하나 뿐인 인생을 멋지게 조각하세요. 아래의 글들이 여러분께 위로와 열정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보의 드림레터 www..

'아직은 아니야 증후군'에 대하여

1. '아직은 아니야 증후군'에 걸려 항상 준비만 하느라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공식 병명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기 일쑤고, 완벽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자신이 마치 200년이라도 사는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야 진작에 실행했어야 함을, 실력은 준비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시행착오의 여정에서도 쌓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증상은 후천적이기보다는 기질로 타고나는 성향이다.) 나도 저 고약한 증후군을 36년 동안 달고 살았다. 요즘엔 조금씩 기질적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한다. 비평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것이 내 바람 중 하나인데, 지금까지는 이런 식이었다. '공부를 좀 더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