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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동상 평균관람 시간

- 8월 16일 (주일) 오후 베토벤 동상을 바라보며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작은 터에 세워진 동상 하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은 많지는 않았지만 끊이지도 않았다. 두 명, 세 명 등의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일단의 그룹이 온 적은 없었으니 아마도 가이드는 이 곳이 변변찮음을 알고 있으리라. 동상 앞에서 몇 십 분을 앉아 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이들의 평균 관람 시간은 3분이었다. 이들은 이 곳에 와서 잠시 동상을 바라보고 난 후 (혹은 이것도 생략하고) 동상 앞에 서서 사진을 두 어장 찍는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머물다 가서 몇 팀의 시간을 재었더니 3분이었다. 5분을 넘기는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다. 베토벤 동상은 오른쪽으로 고개..

멋진 외모, 부드러운 매너남 J

여행 친구들 이야기 (1) 멋진 외모, 부드러운 매너남 J 8월 14일 금요일 오후 6시, 빈에 도착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기차역에 있을 I(information)에서 숙소 리스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호객꾼들 몇 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가방이 무겁다는 것만이 골칫거리였다. 허나, 나는 두 시간 넘게 숙소를 찾느라 고생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I에서 얻은 호스텔 리스트는 지도에 표기된 리스트가 아니라 그냥 사진과 주소만 나와 있어서 찾기 힘들었고, 기차역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다가오는 호객꾼들이 없다. 결국 기차역 근처를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보기로 했다. 역시 가방 3개가 꽤 무겁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근처에 있는 호스텔을 알지 못했다. 결국, I에..

사랑을 희망하다

-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이정석의 노래 '사랑하기에'가 시작되었다. 여행 단상을 정리 하던 나는 노랫말이 나오자마자 얼어 버렸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 '얼음'이 되어 버린 것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의 푸르른 싱그러움이 빗물로 인해 더욱 진해졌다. 이것은 창밖의 풍광이 보일 때다. 내 곁에 머물던 그녀를 생각한다. 어쩌면 나를 좋아했는지도 모를 그녀를. 나를 초대해 준 그녀의 마음이 고와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뻐서 때로는 손을 잡아 보고 싶었고 때로는 꼬옥 안아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었고 그녀를 아껴주고 싶었던 게..

정리 정돈에 대한 단상

- 여행 둘째날. 8월 14일(금) 류블랴나에서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정리는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남은 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오늘은 정리 정돈에 대한 생각이 정리 정돈되었다. 1. 일행과 헤어지면서 가방이 두 개 더 생겨났다. 몸을 힘들게 할 만큼 짐이 무거워졌다. 더해진 가방 안에 든 것들은 먹을거리 혹은 소모품이기에 며칠만 고생하자는 생각으로 들고 다니는 중이다. 짐을 하루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류블랴나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였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디면 그만이지만, (꽤 힘들긴 했다) 무게를 감당하느라 풍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이 뻐근한 어깨보다 더욱 속상했다. 류블랴나 역으로 10여 분 동안 걸으면서 본 것은 신호등과 멀리 보이는 기차역 ..

구루가 알려주는 평생 학습 노하우

저술 활동과 강의 등 일 외에 나는 매년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여 3개월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2004년에는 명나라 시대의 중국 미술에 몰두했다. 일본에 관해서는 수묵화를 소장할 정도로 잘 알면서도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중국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3년마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천천히 주의깊게 다시 읽는 것' 같은 일이다. 이는 몇 년 전에 끝마친 일인데, 나는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발자크의 대표작인 시리즈에 몰두했다.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p.13 강연을 하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직업에 천함과 귀함은 없습니다. 강사와 작가는 십여 년 전부터 꿈꾸던 직..

Live 여행이 시작되다

- 여덟째날 (8월 13일 목요일) 홀로 남겨진 류블랴나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내렸다. 아마도 스탕코(운전기사)가 다운타운에 내려 주었으리라. 그러니 시내 중심 어딘가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도로에는 BUS 전용 차로를 알리는 글자가 쓰여 있다. 알 수 있는 문자라서 반갑다. 건물에 쓰인, 이정표에 쓰인 다른 모든 글자는 낯설다. 'Ljubljana(류블랴나)'라는 글자만이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텍스트다. 건물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매혹적이고 고독하다. 매혹과 고독은 내 여행을 설명하는 좋은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혹은 일상의 여행자들에게는 나의 유럽 여행은 매혹적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많은 부분 매혹적이다. 허나, 그것이..

한가로운 여유 만큼이나 좋은 것들

"한가한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네. 내 경우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책을 읽지.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집중적으로 말이야."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p.16 마음이 급해진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오늘 둘러보아야 할 명소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역사와 번영의 자취가 남아 있는 '호프부르크'이다. 나는 3~4시간 동안 넉넉하게 둘러보고 싶었기에 오늘 하루를 아주 일찍 시작하려 했다. 호프부르크와 카푸치너 교회, 쇤부른 궁전까지 둘러보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허나, 이 계획은 변경되었다. 나는 어젯밤을 빈의 어느 '호이리게'에서 만난 Halek 부부의 집에서 묵었고, Kerin Halek과 이야기하느라 오전을 몽땅 보냈기 때문이다. (호이리게 : 자체 소유의 포..

일행들과 헤어지다

일행들이 한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 10시. 일급(!) 호텔에서 나와 잠시 서성였다. 이제 몇 분 후면, 일행은 떠나고 나는 남을 것이다. 묘한 기분이다. 내일부터는 저렴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덤덤한 기분이다. 아마도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한국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예상이 다 빗나가는 날이 더욱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여행자니까. 낯선 이곳에서 느끼고 성장할 테지만, 9일 동안 함께 했던 이들이 가면 한동안 허전할 것 같다. 처음 나의 생각은 호텔에서 헤어지는 것이었다. 공항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건 조금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나 한 사람 빠지는 것이니 일행들과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싶었다. 머리 속에는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서 만났던 가이드..

옛사랑을 추억하다

오파티야에서의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호텔 레스토랑에서 When a man loves a woman이 흘러나왔다. 영화 의 테마곡이었던 노래. 잔잔히 깊어지는 러브 스토리가 참 아름다웠던, 그래서 눈물 한 방울 툭 떨어뜨리며 보았던 영화. 나에게도 맥 라이언과 같은 귀여운 그녀가 있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그녀와는 2년 동안 사귀었다. 다투기도, 추억도, 즐거움, 배움도 많았다. 그녀는 나의 걸음걸이를 보면 신이 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자신감에 넘치는 걸음걸이라고. 여행의 닷새 째 저녁에는 이렇게 옛사랑이 생각났다. 오빠티야에서의 밤은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며 홀로 해변 상점가를 걸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기에 또 한 번 뒤늦게 아파한다.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을 추억하며 잠시 슬픔을 느껴..

나만의 여행 스타일 만들기

여행이 성숙한 자아의 형성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 살 정도면 여행이 가능한가? 한 마디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추론과 사고의 정도가 일정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판단력이 형성되고 머리 속에는 그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나이가 되어야만 보다 효과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한다면 그 여행에서 별다른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수많은 실수와 잘못 해석한 악습 같은 것만을 흉내 내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 격이 될 뿐이다. - 이진홍, 『여행이야기』 p.62 책은 좋은 것이지만, 여행 역시 좋은 것입니다. 그것 자체로도 좋지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책과 여행은..